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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지식은 믿음의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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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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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오류에 빠질 것을 두려워하여 어떤 진리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진리가 진리가 아니라는 확실한 인식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혹시라도 오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하는 것을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은 자기의 인식과 지식에 스스로 속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를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자신의 주관적 인상(印象)은 확신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진리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관적 인상이 덫이 되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요한복음 주석에서 “이해는 믿음의 보상이다. 그러므로 믿기 위해 이해하기를 구하지 말고, 이해하기 위해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믿음을 이해의 토대로 보았습니다. 그의 자기 인식론을 나타내는“크레도 우트 인텔리감”(credo ut intelligam,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이라는 간결한 모토는 정통 기독교의 인식론 세계에서 명언이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모토를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에게서 얻었습니다. 이사야는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7:9)고 하였는데, 여기서 “굳게 서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후에 이해하게 될 것을 먼저 믿습니다. 이성이 하는 일은 이미 믿음으로 믿은 것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계시된 진리나 믿음을 이성적 지식의 출발점으로 삼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주관적 인상의 덫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믿음 없는 자들은 자신의 주관적 인상의 덫이 스스로의 믿음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이해와 지식은 그가 믿음으로 믿는 것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계시된 진리와 그 진리를 믿는 믿음에서 이해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객관적 진리를 믿을 수 없다는 믿음에서 이해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의 이해와 지식은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지만 불신자들의 이해와 지식은 회의와 거부와 비판으로 불신에 더욱 깊이 빠지게 하고 결국은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이성적으로 해석될 수 없는 맹목적인 믿음에 근거를 둔 것은 아닙니다. 어거스틴을 비롯한 정통 기독교 신학자들은 다만 이성을 계시에 부속시켰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의 전제 조건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은혜로 구속하신 절대주권적인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의 모든 사고 활동에 있어서 이해의 출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고 지식의 원리와 감정의 법칙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이성적 지식이든 감각적 지식이든 모든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원천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존재의 의미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증거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같은 인식과 이해가 이성의 작용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믿음의 보상입니다. 믿음 없이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믿음의 보상으로 얻은 지식은 가장 고상하고 고급한 지식입니다. 믿음 밖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이런 고급한 지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과 교회에서 듣고 배우는 이 고급한 지식의 가치를 너무나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음을 나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고급한 사상과 가치를 신자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나는 별로 이름 없는 목사이지만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의 이론을 비판합니다. 종교학 교수의 이론을 비판합니다. 어떤 석학의 철학과 사상과 가르침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비판합니다. 내가 비록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경제학을 비판할 수 있고, 사회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사회학을 비판할 수 있고, 환경문제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떤 환경론자들보다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대안적 원리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면 누구라도 이러한 고급한 이해와 지식을 가질 수 있고,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믿음의 보상으로서의 고급한 지식을 더 풍성히 갖도록 마땅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와 지식은 아무리 깊고 풍성해도 그것이 모두 믿음의 보상이기 때문에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보상으로서의 이해와 지식이쌓여갈수록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인하여 겸손을 배우며, 진리를 더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 롬 1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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