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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이라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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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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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돔에 대한 심판을 통보받고 소돔을 살려달라고 매달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간청을 거절하시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아브라함은 어제 하나님과 만났던 곳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소돔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나이 99세의 노인은 조카가 살고 있는 소돔성이 고모라와 함께 불타고 있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앞에 전개된 소돔과 고모라는 불가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두려운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한이 없으신 분이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지만 죄에 대하여서는 아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기사는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돔 사람들의 견딜 수 없다는 부르짖음, 심판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이유, 아브라함의 소돔 성을 위한 애끓는 간청, 소돔 성 사람들의 괴악한 실상, 응답되지 않았지만 또 한 편 응답된 아브라함의기도 등을 통해 우리는 소돔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이방인으로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나 자신입니다.

소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성 가까이에는 소금 광산이 있습니다. 거기서 나는 소금으로 소돔 성 사람들은 쉽게 부를 축척하였습니다. 힘들이지 않고 부를 축척하게 되면 그 부는 재앙이 될 위험이 큽니다. 사람들은 넘치는 돈으로 사치와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고, 결국은 정상적인 것으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어 비정상적인 것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동성애와 폭력과 불법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런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파괴적인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어 울부짖게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풍부한 재물 때문에 망했습니다.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부요한 것이 망하게 된 요인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것은 돈 자체가 좋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편리를 얻을 수도 있고, 돈으로 안락을 얻을 수도 있고, 존으로 권력을 얻을 수도 있고, 돈으로 사람을 부릴 수도 있고, 돈으로 쾌락을 살 수도 있습니다.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은 돈의 부족으로 아쉬움을 느끼지만 돈의 위력은 잘 알지 못하여 위험은 덜 할 수 있습니다. 돈의 위력은 돈이 많은 사람에게 더욱 매력적입니다.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은 돈을 우습게 여길 수도 있지만 돈이 많은 사람은 결단 돈을 우습게 여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도 부자가 되면 믿음에서 좀 떠나더라도 부자 되는 쪽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돈은 내가 원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원치 않는 것도 가져다줍니다. 돈은 그것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이 점을 계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들의 미련 때문입니다.

부와 쾌락을 추구했던 소돔 성 사람들은 나름대로 부와 쾌락을 얻어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소돔성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불만이 가득하여 서로를 탓하며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서 부르짖음이란 불법적 사회 관습과 일상사가 되어버린 폭력적 행위로 인하여 견딜 수가 없어서 호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두가 피해자요 또한 모두가 가해자입니다.

서로가 속이고 서로가 속습니다. 지도자와 백성, 관리와 백성, 재판관과 범죄인, 부자와 가난한 자, 학자와 무식한자, 심지어 종교지도자들까지 누가 먼저냐 할 것도 없고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이냐 할 것 없이 모두가 모두에게 불친절하고, 경우가 없고, 야비하고, 교활하고, 폭력적입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입니다. 법이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법입니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 복수의 칼을 품고 있는 사람, 복수를 당하지 않으려고 먼저 자기를 해하려는 사람을 죽이는 사람.... 이정도 되면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알아보시려고 하실 만도 합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표현이지만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너무 이해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직접 보시고 확인하셔야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말로만 들어서는 도무지 사실 같지가 않은 불평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할 정도이고, 상식적으로는 상상도 안 되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돔 성에 있는 롯을 방문한 천사들에게 소돔 성 사람들이 행한 악행을 통하여 그 성이 얼마나 괴악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져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롯은 날마다 소돔 사람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였다고 했지만, 성을 떠나라는 천사의 경고를 받고도 미적거리는 롯을 천사가 강제로 손목을 잡고 끌어내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롯이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롯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소돔이라는 거울에 비친 괴악하고 끔직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찔림을 받고 경계를 삼고 그릇 된 길에서 돌아서기를 원하고 나아가서는 우리 모두가 소돔을 거울삼았으면 합니다. 우리 개인이나, 우리 가정이나, 우리 사회나, 우리 교회 안에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고,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먼저 교인들의 비정상적인 태도를 고발하려고 합니다. 지금 뉴욕과 뉴저지의 큰 교회들 중에 교인들이 목사와 교회를 검찰에 고발한 교회들이 있고, 그 외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물론 목사가 잘못 하여 문제가 발생한 경우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골프 모임이나 기도회나 성경공부 모임이 옛 군사독재 시절의 군대 내의 하나회 같은 사조직으로 실세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장로와 집사들이 골프를 치고 식사하는 자리에 맥주가 들어오고, 거하게 취한 상태에서 목사를 비난하고, 그런 자들이 모여 교회를 개혁해야한다고 패거리를 지어 몰려다니고, 목사가 마음에 안 들면 헌금 안하고, 온갖 거짓말로 목사를 비난하고, 목사를 중상모략 하는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내고, 목사와 교회를 비난하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어 근거가 없거나 침소봉대 된 온갖 비방의 글들을 올리고, 가관인 것은 자기들도 그것이 악하고 나쁜 짓인 줄 알면서 한다는 사실입니다.

주일이면 그럴듯하게 차려 입고 교회에 나가 천사 표 미소를 지으며 순진한 교인들의 마음을 훔쳐 자기보다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들고, 그들의 아비 사단을 따라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기도회와 예배를 패거리 모임의 결속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근거고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말로 공갈을 일삼아 사람들을 근심하게 하며, 뒷골목 깡패들도 안하는 유치하고 무식하고 무모한 짓들을 교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말만 들어서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일들이 소위 교회 안의 중직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악의(惡意)가 가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수렁에 빠진 사람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져들듯이 거짓된 일에는 단합을 도모할수록 바벨탑처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와해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진실 된 교인들도 많지만 형편없는 못된 교인들도 많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일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이런 지적과 고발이 나만은 그렇지 않고 의롭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임을 모두가 직시하여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어쩌면 예방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에서 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그 다음은 이미 드러나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목사들의 범죄 사건들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냥 들어서는 설마 그럴 리야 라고 할 일들이 연일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신문에 보도된 목사들의 엽기적 범죄 사건만도 그 수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그런 신문 기사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현주소가 소돔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위해 신문에 보도된 기사제목만 몇 가지 나열해보겠습니다.

국고보조금 횡령한 목사 등 2명 영장, 교수·목사 등이 억대 환치기, 교회 보수비용 마련하려 절도, 대통령 인척 빙자 사기 목사 징역 2년형, 귀가하는 부녀자 성폭행한 목사 영장, 부녀자 유인, 강도.강간 일삼은 신학대생 영장, 친딸 강간한 인면수심 40대 목사 검거, 10대 성폭행한 목사 체포, 입양소녀 구타, 폭행, 강간, 인면수심의 기독인 부부, 목사가 스와핑사이트에 가입, 상습 강도, 강간 행각을 벌인 40대 교회 목사, 교회재산 횡령 목사·장로 검거, 한의사 자격증 위조해 치료한 목사 덜미. 성폭행 혐의, 거액 횡령 선교원장 구속영장, 유치원생 성추행한 50대 목사 검거, 여신도 성관계 테이프 협박 목사 영장, 아파트 사기분양 현직목사 영장, 목사 병원장 가짜입원서로 5억 사취, 아내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목사 영장, 목사·주부 농약 마시고 동반자살, 성추행하려던 목사가 여장로에게 흉기로 찔려, 윤락 알선 목사 구속, 억대 뜯은 70대 목사 영장, 30대 목사 부인·딸 살해한 뒤 자살, 안수기도 빙자 3년 여간 성폭행, 고아소녀 상습 성폭행 목사 영장, 신도 성폭행하려한 목사 구속, 부녀자 성폭행한 목사 긴급체포, 여대생 신도 성폭행한 목사 영장, 정신지체장애 미성년자 성폭행혐의, 교회목사 영장, 목사가 미성년 딸 친구 수차례 성폭행, 불륜 폭로하겠다 여신도 상습성폭행, 10대여성 상습성폭행 목사 구속, 집유기간에 또 청소년 성매매 `색마 전도사`, 목사가 비리폭로 협박, 돈 챙겨, 목사가 121차례 화풀이 방화, 불치병 특효약, 목사가 사기판매, 강제추행 실형 받은 목사 다시 교단 서, 신학과 출신 가짜심사위원 누드모델 미끼 여대생 성폭행, 목사가 여자화장실 `몰카` 촬영, 살인 방조 무허가 사설기도원장 구속, 10대 여학생 상습폭행 전도사 중형, 그 외 실명으로 나온 기사는 뺐습니다.

목사가 일반신도보다 질이 나빠서 이럴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목사가 일반 신도들보다는 신앙적으로나 윤리 도덕적인 면에서 약간은 낫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좀 너그럽게 보아 주어서 그래도 목사가 교인들보다는 낫겠지 라고 생각을 하는 것으로 가정을 한다면 오늘날 교인들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의 범죄는 유별나게 눈에 띄지만 일반교인들의 범죄는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사람들의 관심거리도 되지 못합니다.

교인들의 범죄가 비단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미 초대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런 문제로 지적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 교회 안에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은 성전 안에서 제사하러 온 여자들을 욕보이고 제물을 갈취하였습니다. 성가대 대장, 성가대 지휘자, 성가대원, 전도사, 교사, 심지어 선교사, 겉으로 보기엔 거룩한 직책을 맞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면 쉽게 믿어지지가 않을 것입니다. 바람이 나서 집안을 풍지박살 내는 여자도 있습니다. 바람은 남자에게만 부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적 낭비벽의 사람들도 많습니다. 낭비도 죄입니다. 입지도 않을 옷을 사들이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이 잔뜩 있는데도 새것을 사들이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냉장고에 가득 찬 음식, 먹어보지도 않고 변해서 버리는 음식이 많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비싼 것만을 선호하는 공주병자들이 많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씩 사우나에 가고, 미장원에 가고, 비싼 외식을 즐기면서 남에게 베풀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인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 자랑, 돈 자랑, 자동차 자랑, 비즈니스 자랑, 자식 자랑, 아내 자랑, 학벌 자랑, 교회 자랑, 온갖 자랑은 하면서 남에게는 인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자신에게는 인색해도 남에게는 넉넉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술버릇 고약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술만 들어가면 개가 되는 남자들이 많습니다. 아니, 개만도 못합니다. 개가 들으면 화를 낼 일입니다. 평소에 하는 것을 보아서는 도무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습관적으로 도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일을 벌이고 수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직장을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거짓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교회를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조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에서 불신앙으로 나가는 첫 걸음은 하나님 만나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이고 영적이고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이 싫어집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저 멀리 구약 시대에나 있었던 도시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나 자신이 소돔 사람이고, 우리 가정이 소돔 고모라이고, 우리 교회가 소돔 고모라인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을 의아하게 하고, 놀라게 하고, 의심하게 하는 일들을 우리들이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설마 그럴 리가?”라고 하실 만큼 상상이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는 일을 우리들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어서 소돔을 심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려고 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그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신 직 후에 심판 받을 소돔과 고모라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이 성을 심판하여 멸하려고 하는 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성 사람들이 얼마나 괴악한가를 잘 압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사악한 소돔 성 사람들을 살려보려고 애끓는 간청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일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하시는 사건입니다. 도무지 납득이 안 되고, 용서가 안 되는 사람들을 우리 앞에 제시하십니다. 벌 받아 마땅하고, 저주를 받아야 속이 후련할 사람들, 상상도 할 수 없이 나쁜 짓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우리 앞에 제시하십니다. 이 사람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우리에게 물어 오십니다. “나는 이들을 심판하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으십니다. 미운 사람이 망하면 속이 후련한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꼭 그런 사람을 우리 앞에 제시하십니다.

요나에게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 성에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합니다. 땅도 밟기 싫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라고 하십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일을 위해, 해도해도 성과가 없는 일을 위해 일하라고 하십니다. 결과를 위해 일하지 말고 그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소돔 성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도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텐데, 그것은 곧 천하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이 이루어지는데 믿음으로 참여하도록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는 소돔 성 사람들도 그를 인하여 복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은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어제 저녁 하나님과 헤어지고 난 후 뜬 눈으로 밤을 샜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아침 일찍이 하나님과 헤어졌던 장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다실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고 옹기점 같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소돔 성을 보았습니다. 화덕 같이 불구덩이로 변한 소돔 성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시거나, 사람들이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였지만 아브라함의 뜻대로 응답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요구대로 응답되지는 않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릴 수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결과에 연연할 것이 없습니다. 일을 이루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뜻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소원과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일의 결과가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실패로 끝나도 믿음에서는 승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지고 추구해야 할 가치관이며 삶의 목표입니다. 불타는 소돔 성을 바라보면서 나를 인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할 이들이 그 속에 있음을 생각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 자신이 그 속에 있음도 발견한다면 아브라함처럼 소돔 성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고, 원수를 위해 복을 빌 수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베드로후서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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