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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부러워해서는 안 될 높은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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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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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가 가장 행복한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조사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다르지만 영국 레스터(Leicester) 대학의 심리학자인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178개국에 대한 자료와 유엔 및 세계보건기구 등의 100건의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평균 수명과 1인당 국내총생산, 교육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작성한 바에 따르면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 국가로 랭크됐으며, 그 다음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아이슬랜드, 바하마, 핀란드, 스웨덴, 부탄, 브루나이, 캐나다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미국은 23위, 영국은 41위, 독일은 35위였으며, 아시아권에서 중국은 82위, 일본은 90위였고, 한국은 10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조사는 물론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체감지수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냅니다.

몇 년 전에는 세계에서 행복체감지수 1위가 방글라데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객관적 평가 기준으로 한다면 하위권이겠지만 행복체감지수로는 방글라데시가 몇 년에 걸쳐 세계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의 SB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탄이 1위를 기록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인구의 89.7%가 회교이고 부탄은 인구의 75%가 불교도입니다. 회교도들은 사람의 모든 것은 알라신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기 때문에 “신의 뜻대로”, “나는 행운을 가지고 있다.”등으로 표현되는 종교적 숙명론이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 체감하는 행복지수는 다분히 종교적 숙명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모든 것을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복을 받든 저주를 받든 그것은 숙명입니다. 회교와 불교의 공통된 인생관은 숙명론입니다. 일반적인 숙명론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만 숙명론이 종교적인 신앙의 형태를 취하면 낙관적이 되게 합니다. 종교적 숙명론은 자기가 믿는 신앙에 따라 사람을 안전하게 하고 편안하게 합니다. 숙명론에 따르면 개인의 결정과 행동에 따라 무엇이 달라질 가능성이 없으니까 더 나은 질의 삶을 위하여 노력할 필요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방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빈국에 속하지만 행복체감지수는 세계 1위권에 속합니다. 현대인들 중에는 객관적 평가의 기준에 따른 행복지수보다 행복체감지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이러한 행복체감지수에 분별없이 공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행복지수에 대하여 성경적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숙명론은 아주 이기적입니다. 그것도 숙명론이 종교적 신앙의 형태를 취하면 더욱 이기적이 됩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무엇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또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지나친 낙관론이 위험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이 무엇을 개선하고 개혁하려는 것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숙명론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과 행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높은 행복체감지수를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한국불교에서 그렇게도 존경하는 성철 스님을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그는 부모와 처자식을 두고 출가를 하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맏아들인 성철의 출가 사실을 알고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 이 안 되면 내가 죽을 팔자"라고 어머니와 아내를 위협했다고 합니다. 그 후 금강산으로 들어갔을 때 모친이 그를 찾아 금강산을 오르면 그는 산 위로 올라가 “후레자식”처럼 모친에게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1984년 어떤 인터뷰에서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한 것은 이기심 때문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고 “출가란 조그만 가정과 사회를 버리고 큰 가족인 국가와 사회를 위해 사는 게야.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일체를 위해서 사는 데 있지. 이것이불교의 참사상이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자기를 따르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우선순위를 말씀하신 것이지 목회나 선교를 위해 부모나 처자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철 스님은 대를 위해 소를 버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하였지만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지극히 작은 일 하나를 소홀히 하고 결코 큰일을 이룰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가족이나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을 고려하지 않고 나 혼자서 느끼는 높은 체감행복지수는 신자가 부러워 할 행복이 아닙니다. 기독신자는 자기 행복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5: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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