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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적 요인 강조와 윤리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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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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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육심리학 교수가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상대로 강의를 하면서 오늘날의 교육학에서는 교육에 있어서 유전적 요인을 6으로, 교육을 4로 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한 교육심리학 교수의 주장이 아니라 의학 분야에서도 상당히 강조되고 있는 주장입니다.

요즘은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진찰 할 때 가족 중에 같은 병을 앓은 사람이 있었는가를 묻습니다. 그것은 병이 후천적 요인에서보다 유전적 요인에서 발생할 확률이 더 높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이 유전적 요인에서 발생했다고 하면 근본 치료는 유전자를 다스리는 길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현대의학은 인간 유전자의 정보가 DNA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DNA는 부모의 유전자 정보를 자녀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미 의학은 인간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다 분석했다고 합니다. 이제 그 분석 자료를 가지고 생명공학의 기법으로 응용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응용 기법으로는 유전자 조작, 유전자 전이, 세포융합, 핵치환, 세포배양의 방법이 있습니다. 생명공학은 이러한 다양한 연구로 필요한 세포나 백신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난치병의 치료와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인류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공학은 농축산의 혁명적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고 주부들은 그 결과물들을 시장바구니에 담아다가 식탁에 올려놓습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채소, 과일, 쌀 등 이제는 많은 먹을거리들 중에 생명공학과 무관한 것은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인체에 대한 생명공학의 유전학적 설명은 단순히 생명공학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옛날 희랍의 소피스트들의 존재론적 회의주의는 극단적 허무주의로 나아가서 가치의 옳고 그른 것까지 부정하게 되어 윤리적 무질서를 낳았었습니다. 19세기의 자연과학은 그 영향력이 자연과학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구라파의 모든 교회를 지리멸렬시키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21세기의 생명공학은 난치병의 치료와 농축산의 획기적 발전이라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가히 우려할만한 영역에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들으면 웃어넘길 이야기이지만 철학과 사상과 과학의 역사를 생각할 때 이런 이야기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려할만한 이야기란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DNA와 유전자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넌 왜 공부는 안 하고 하지 말라는 나쁜 짓만 그렇게 하냐?”라고 하면 “나의 유전자가 공부 안 하고 나쁜 짓을 좋아하도록 되어있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것은 제 책임이 아니죠.”라고 한다고 합니다.

성격과 신체와 심지어 아이큐에까지 미치는 유전적 요인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전적 요인의 강조가 인간의 윤리적 책임까지 해이 해지게 하는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생명공학이 인간의 정신 활동까지 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사랑과 윤리적 행동까지 호르몬의 작용으로 보게 될 것이고 결국 그렇게 되면 비윤리적 행동의 책임까지 유전적 요인에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윤리적 책임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머지않아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도 의사의 처방을 받고 약을 복용해야 할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파렴치범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죄를 짓고도 유전자 운운하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1988년도 영등포 구치소에서 탈주한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공감하고 있습니다. 정치구조와 경제 구조가 그런 주장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사회와 정치와 경제적 환경 때문이라는 주장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을 지닙니다. 생명공학의 유전학의 발전과 인간 교육과 질병에 있어서 유전적 요인의 강조는 상당한 논리와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윤리적 책임까지 유전적 요인으로 돌리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생명공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인간의 윤리적 행위까지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드는 것은 무례하고 무지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자유에 대하여 논문을 썼습니다. 첫째 자유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신이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자유는 모든 사람을 섬길 자유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자유에서나 두 번째 자유에나 강조되는 것은 개인의 책임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성격과 신체적 조건과 질병에 있어서 유전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하여도 그러한 과학이 윤리적 책임을 해이하게 하도록 방관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라디아서 5:1,1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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