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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신학의 역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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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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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선동된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를 했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칼에 목이 잘려 순교를 했습니다. 그 외 다른 사도들도 모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자세한 이야기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도들을 계승하여 속사도들(Apostolic Fathers)이라 불리는 헤르마스(Hermas),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서머나의 폴리갑(Polycap)도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헤르마스는 초대 교회의 천로역정이라고 불리는 『목자-The Shepherd』라는 책의 저자로 잘 알려진 분이고, 이그나티우스는 확인되지 않은 고대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팔에 안으시고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2)고 말씀하신 그 아이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트라얀 황제의 명령에 의하여 이그나티우스는 산채로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었고, 폴리갑 역시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서 산채로 태워졌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자신의 구주이심을 부인하라는 요구에 불응했기 때문에 그렇게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로마 제국 곳곳에서 박해는 계속되었고 순교자들의 피는 복음을 꽃피울 토양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제 로마제국 안에서 기독교인들의 수는 황제도 어쩔 수 없는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라는 두 도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이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확산되었을 때 이 두 도시는 교리적 논쟁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독교가 잔혹한 박해를 견디며 살아남는 싸움을 하였으나 그 결과는 기독교의 능력이 십자가와 부활로 상징된 것처럼 핍박받던 자들이 핍박하던 세력을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 기독교는 전혀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주도적 세력을 얻게 되자 다양한 위험요소들이 돌출하게 되었습니다. 기득권의 덕을 보려는 많은 자들이 거짓 신자가 되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교회 안에는 이단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늘어나는 새 신자와 개종자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가르쳐야 할 필요성이 요청되었습니다. 이때쯤 안디옥과 알렉틈에서서로 다른 사상적 배경과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도시로서 기독교 교리의 논쟁의 거점으로 부상하였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권의 중심도시로 당시 세계 학문의 중심지였고, 안디옥은 헬라 문화와 로마 문화가 만나는 관문이자 유대주의가 섞여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독교 복음의 전초 기지였습니다. 안디옥은 처음 기독교가 헬라 문화권으로 전파되어 나갈 때의 관문 역할을 했으므로 이방 세계에서 기독교의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있었다면 알렉산드리아는 헬라 세계의 문화적 중심지로서의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 두 도시는 당시에 기독교 안에서 논의의 주제가 되었던 그리스도의 위격(位格) 문제를 놓고 격돌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터툴리안이 제기하고 오리겐이 정리했던 문제인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리겐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실체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기는 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서열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리겐 이후에 이 문제는 특별한 토론의 주제가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안디옥 출신으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장로였던 아리우스(Arius)에 의해 논쟁의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가 하나님과 유사하다거나 동일하다는 것은 도저히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존재보다 뛰어난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구원의 주가 아니라 피조물이며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모범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알렉산더(Alexander)는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아마도 안디옥과의 경쟁 관계와 장로와 주교 간의 불화나 위신 문제도 크게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반대의 요지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온 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리우스처럼 인간적이고 논리적인 수단을 사용하기 보다는 전통적으로 전해진 전승을 믿고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 전통에 근거해서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때 아리우스의 주장에 반박을 하고 나선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였습니다. 그의 주장은 논리적 설득력은 약했지만 예수를 신으로 인정한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 주장은 다 같이 오리겐이 제기한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었지만 해석의 차이가 이렇게 전혀 상반된 주장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알렉산더는 아리우스를 파문했고, 이집트에서 모인 종교회의는 아리우스의 주장에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아리우스가 이 처분에 승복하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과 안디옥 출신의 신학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급기야 이 문제는 두 도시가 대립하는 논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논쟁은 이전에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났던 논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심각했는데, 이는 아마도 지금까지는 기독교 논쟁이 국가와 사회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야 했으나 제국에서 주도적 위치로 올라선 기독교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자기 인식 때문에 더욱 첨예화 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런 다툼에 대해 가장 화를 낸 사람이 바로 콘스탄틴 황제였습니다. 그는 제국 내에서 종교를 통한 국가 정체성이 분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가장 강한 세력이었던 기독교를 받아들여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통합하고자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 안에서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는 것을 묵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는 325년 소아시아 북서지방의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종교회의의 처음부터 아리우스가 지지를 받지 못하리라는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그는 이미 이집트 종교회의에서 이단 판정을 받은 상태였고, 이런 판정은 공식적으로 승인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회의의 주도권을 가진 황제는 어떤 결정이든 내용에 상관없이 기독교회 전체를 하나의 교리로 통일 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추종 세력이 많은 쪽에 우선권을 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또한 더 큰 문제는 회의에 참석했던 주교들의 많은 수가 이 문제가 가지는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참석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황제가 베푸는 융숭한 대접에 취해서 놀랍도록 달라진 기독교의 위상을 만끽하는 것으로 회의의 의미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아리우스 추종자와 알렉산더의 주장을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도 있었으나 회의는 황제의 뜻에 따라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즉 하나님과 예수가 “동일본질”이라는 단어를 삽입한 니케아 신경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주장은 하나님과 예수가 본질상 동일하다는 알렉산더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의는 전체 기독교가 관계되어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현안 문제를 다루기 위해 지역 교회들이 모이던 종교회의와는 달리 제국 전체의 교회가 모이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케아 종교회의는 제일 처음으로 모인 공의회가 된 것입니다. 이로서 최초의 신조인 니케아 신조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 회의를 소집한 콘스탄틴 황제나 논쟁에 관여 했던 알렉산더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순수하고 투명하지 못한 동기와 태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니케아 종교회의는 험난한 교회의 역사의 앞길에 성경 말씀을 따라갈 소중한 이정표 하나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립보서 1:18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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