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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이라고 외면당한 미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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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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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따라 천성적으로 비판 기질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비판적으로 보고 말하는 것이 습관처럼 된 사람이 있습니다. 비판적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 중에는 비판적인 사람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 자신이 또한 비판적인 기질의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옳고 그른 것까지 판단하려 하면서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비판한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관점이 잘 못된 관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비판을 삼가라고 하였고 비판은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의 경우 어떤 것을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내가 혹시 마귀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마귀를 송사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비판을 해서 교회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성실한 교회의 일군을 낙심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비판하는 일은 그렇게 내키는 일이 아니고 매우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 편 위로를 삼는 것은 구약에 보면 선지자들은 거의 다 비판하는 선지자가 참 선지자였다는 점입니다. 왕에게나 백성에게 좋은 말만 하는 선지자는 거의 거짓 선지자이고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과 왕들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가야 선지자입니다. 구약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가서 선린관계를 도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아람이 점령하고 있는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한 전쟁을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여호사밧은 느닷없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고 전쟁을 하는 것이 신앙적 전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4백여 명을 모아서 전쟁을 할까 말까를 물어보았더니 4백여 명의 선지자들은 마치 한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이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을 왕에게 붙였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이 가만히 보니까 석연치가 않아서 아합에게 우리가 물어 볼만한 다른 선지자가 더 없느냐고 하였습니다. 그 때 아합은 미가야라는 녀석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 녀석은 한 번도 내게 대하여 길한 것을 예언하지 않고 흉한 것만 예언했다고 하여 물어 볼 필요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그래도 그에게 물어보자고 하였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서 미가야를 불러 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가야는 전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이 그것 보라고 하면서 저 녀석은 언제나 나쁜 것만 말한다고 하면서 전쟁을 강행하게 되었고 그 전쟁에서 아합은 전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거짓 선지자 4백 명은 한결같이 좋은 말만 하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이였고 비전 있는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시드기아 라는 선지자는 쇠로 뿔을 만들어 가지고 여호와께서 이 뿔로 아람 사람들을 진멸하리라고 하였다고 하면서 미가야의 뺨을 때렸습니다. 그 때 미가야는 사람들의 눈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선지자였는데 사실은 그만이 참 선지자였습니다. 참 선지자는 거의 비판적이었습니다. 이사야 같은 선지자는 너무 비판을 많이 하다가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판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잘못은 지적을 받아야 고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인간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완전하면 비판할 것도 없고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잘못된 것은 지적을 받고 비판을 받아야 고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그렇습니다. 아주 건강한 사람이 어느 날 요절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사람은 건강에 자신이 있으니까 조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속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고 그러다가 병을 키우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가고 마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건강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비판을 받아야 자기의 약점을 알게 됩니다. 뿐만이 아니라 교회도 신자도 잘못을 지적 받아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심각한 약점 중의 하나는 윤리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좁은 의미의 종교성은 매우 뛰어나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종교성, 즉 실제 생활에서의 신앙은 낙제 점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1-2위를 다툽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윤리와 도덕성은 저개발 국가 수준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제는 신자들이 사회가 악하고 부조리하고 부패해서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할 수 없게끔 되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기엔 기독교인의 수가 너무 많아져버렸습니다.

한국의 경우 국민의 4/1이 기독교인인 판국에 신앙생활 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경우는 더더욱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향하여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고 교인들이 이렇게 많은 데 왜 사회가 이 모양이냐고 지적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미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이미 5공화국 때부터 사회적 큰 부정 사건에 기독교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사회적 부정과 부패에도 기독교인이 단연 앞장을 서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교회가 사회의 어느 단체보다도 부정직한 단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 안의 재정 문제, 목회자 세습 문제, 성적인 탈선 문제, 이혼 문제, 탈세 문제 등등.... 이런 문제에 있어서 교회가 사회보다 심하다는 지적과 통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아합의 4백여 명의 선지자들처럼 소위 긍정적이고 비전 있는 좋은 말만 하고 있습니다. 미가야처럼 비판적인 지도자는 부정적(?)이라고 소외되고 오히려 거짓 지도자들은 능력 있고 비전 있는 지도자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까지도 부정적이라고 외면당할 것이 분명한데..., 이 시대의 미가야들이여! 용기 잃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 역대하 18:1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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