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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교회에 과연 나눔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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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흥용 2006-04-27

본문

우리는 일해서 버는 것으로 먹고 사는 인생이지만, 우리는 남에게 베풀고 주는 것으로 마음의 풍요로움을 일구어 간다. 이탈리아 제노아 사원에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선사한 에메랄드로 만든 단지가 보존되어 있다 . 이 단지에 대한 전설이 남아 있다. 솔로몬 왕은 시바 여왕의 선물을 받고 대단히 기뻐하여 연명(延命)의 약, 즉 사람이 죽어갈 때 마시면 얼마 동안 살아서 유언도 할 수 있다는 묘약을 이 단지에 보관하고 단단히 봉하였다 . 그 후 솔로몬 왕은 가까운 부하들로부터 세 번이나 이 약을 나누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얼마 뒤에 솔로몬 왕 자신이 병들어 눕게 되었다. 왕은 단지를 가져다가 봉인을 뜯었다. 물론 자기 자신이 얼마 동안 더 연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 그러나 단지 속은 비어 있었다. 묘약도 오랜 시간 동안에 완전히 말랐던 것이다.

이 전설에는 귀중한 교훈이 담겨 있다. '나 '라는 존재는 에메랄드로 만든 시바 여왕의 단지보다 더 귀중한 존재다. 그리고 내 속에는 솔로몬의 연명의 약보다 더 값진 '사랑의 샘'이 있다. 사랑의 샘은 퍼낼수록 맑아지고 그 양도 더 많아진다 . 봉인을 하고 이기적인 용도만을 생각하며 기다리면 그 샘은 어느새 말라서 나에게도 남에게도 쓸모가 없어진다.

나눔의 동의어들을 사전에서 찾아보자 ! 분할하다. 분배하다, 분류하다, 분담하다, 함께하다, 교환하다 등등이 있다 . 이 단어들중에서 '함께 하다'라는 의미는 이 모든 나눔의 동의어 속에 담겨 있다.나눔이란 또한 사랑의 또 다른 말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척도는 남에게 베풀고 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애 혹은 이기주의라는 말로 구별하여 부른다. 이 속에는 베품과 나눔이 없다. 따라서 나눔의 실천이야말로 진실한 사랑의 척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있는 나눔을 위해서는 물질과 행위, 시간뿐만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과 사랑이 있는 헌신을 더해야 한다. 기도만 하고 봉헌하지 못한 인생은 위선이다. 잠언 22:9은"남을 잘 보살펴 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은, 그가 자기의 먹을 거리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라고 우리에게 교훈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나눔이 있을 때, 그 나눔에는 기적이 있다 . 1. 오병 이어의 기적도 어린 아이의 도시락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2. 엘리야 선지자와 시돈 땅 사렙다의 한 과부 (왕상 16:8-16) 기근 속에서도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 두 경우 모두 한 번 먹을 것 밖에 없을 상황에서 그 것의 소유자들이 자기 먹을 것을 혼자서 움켜지지 않았다. 그 어린 아이와 과부는 먹는 것을 나눈 것뿐만이 아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도시락은 그의 소유의 전부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 . 과부에게도 또한 먹을 것 빵과 기름은 목숨을 유지해 나가는 다른 어떤 보화보다도 소중했던 유일하고도 얼마 남지 않았던 그녀의 전 재산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중심의 이기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나눔을 택함으로써 당시에 배고픔 없이 견딜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눔을 통해서 새로운 힘도 얻을 수 있다. 슬픔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때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기쁨은 두 사람이 함께 해야 한다 . 기쁨을 타인과 나누면 기쁨은 두 배가 되고, 고뇌를 타인과 나누면 고뇌는 절반이 된다. 행복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더 커지고 늘어난다. 한 개의 촛불로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 나눔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다.

나눔의 장소로서의 교회를 생각해 보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복음의 특권은 나눔을 전제로 주어진다고 말한다 . 하나님께서 이를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우리의 죄의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본을 보여 주셨다. "히 7:27 그는 자기를 바치셔서 단 한 번에 결정적으로 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럼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조직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안에서 함께 나누고, 그의 보혈의 피와 살을 성찬식을 통하여 나누고, 교회를 운영하는 책임을 서로 나누어 져야 하며, 그 분이 우리에게 준 구원과 천국의 소망을 나누어야 한다.

초대교회는 나눔의 공동체였다. 그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자신들의 소유를 공동의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같이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초대교회는 모이면 축제였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나눔의 신앙 정신을 잃어버리고 은혜를 사유화하면 교회는 타락하게 되고, 신앙은 병들게 된다.

나눔의 동기들은 사람마다 다양하다.사랑과 관심 그리고 헌신의 예를 보자 !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한 구호단체에 최근 한 초등학교 여학생이 8만원과 함께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저는 보통 아이들보다 살이 찐 편이다 . 그리고 음식도 많이 먹는 편입니다. 살이 찐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모아둔 이 돈을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보냅니다" 우리도 이 소녀의 아름다운 양심을 가져야 하겠다 .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 욕심 많은 한 분이 앉아 있었다. 그때 웨슬리는 설교 중에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은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버시오!"라고 하자 그는 "아멘, 아멘" 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전부를 저축하라."고 역설하였다. 그때 그 부자는 얼굴에 미소를 띄고 좋아 라고 "아멘."을 연발하였다. 마지막으로 웨슬리 목사님이 "할 수 있는 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자 그 부자의 입에서는 아멘 소리가 나오지 않고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경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나누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다 .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잘못된 나눔들도 있음은 우리의 선인들은 전한다.
1. 의무감에서 주는 자는 결코 가치 있는 것을 줄 수 없다. -제임스 로웰
2. 인간은 주는 가운데 풍요로워지나 탐욕은 쌓는 가운데 빈곤해진다. -페르시아 속담
3. 사랑과 헌신이 담김 나눔은 자기의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남을 살릴 수 있지만, 욕심이 담긴 나눔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파괴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 나눔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고 이는 곧 우리 스스로의 마음이 죽은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마치 사해라는 죽은 바다와 같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받을 줄만 알지 줄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스라엘에 있는 사해가 사해(死海)라고 불리고 하나 더 있는 호수는 갈릴리 호로 불리는가 ? 갈릴리 호는 밖으로 흘러내리는 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이름이 있지만 사해의 경우는 안으로 차 있을 뿐 밖으로 흘러내리는 내가 없어서 사해로 불린다.

평화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 프란시스의 말을 되새겨 보자! "사람은 뭔가를 가지게 되면 그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필요로 합니다. 거기에서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게 되지요 !"

어떤 욕심 많은 왕이 우물을 하나 파고는, 자기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그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 그러나 그 우물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신에게 나가 신탁을 받아야 했는데 , 신탁에 의하면 그 우물은 왕이 백성들과 물을 나누어 마시지 않는 한 결코 물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그 왕은 자기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꾀를 내어 다른 형태로 욕심을 채우기로 했다. 그는 공포하기를 , 백성들은 오직 밤에만 물을 길을 수 있고 자신을 낮에만 물을 길을 수 있다고 했다.

다음날 태양이 지기까지 물이 나오지 않던 우물이 해가 져서 수많은 무리들이 빈 그릇을 가지고 모여들자 , 오! 샘 밑에서부터 물이 용솟음치며 솟아 나오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우물의 가장자리까지 차게 되었다. 그들은 물을 마시고 그릇에 가득 채워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물은 다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결국 욕심 많은 왕은 줌으로써 얻게 되고 사랑함으로써 살게 된다고 하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한 명재판으로 성경은 두 창기의 예를 들고 있다. 여기에서 진정한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나눔과 그렇지 못한 악한 동기로 시작된 이기적 나눔의 예를 볼 수 있다."왕이 명령을 내렸다. "살아 있는 이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 반쪽은 이 여자에게 주고, 나머지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러자 살아 있는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에 대한 모성애가 불타 올라, 왕에게 애원하였다. "제발 , 임금님, 살아 있는 이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어도 좋으니, 아이를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안 될 테고 , 네 아이도 안 될 테니, 차라리 나누어 가지자." 하고 말하였다.

나눔을 통한 행복이나 기쁨은 분명히 정신적이며 영적인 것이며 인간의 관계성 속에서 완성되어 진다. 이들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소박하고 가난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한 가요 가운데 ' 행복하고 싶어라. 그러나 그대를 행복하게 못하면 나는 행복해질 수 없네' 라는 것이 있다. 이 가요는 한 여인에게 속삭인 말이지만 행복의 본질을 꿰뚫은 말이다. 참 행복은 ' 같이 누리고 나누어 갖는 것이다.

한국의 어떤 성탄절에 일어난 일이다. 열 두 살 소녀가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8명에게 장기를 기증,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남겼다 . 울산 xx 초등학교 정xx 양이 친구와 놀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진 것은 지난 18일. 독실한 신앙인인 아버지 정xx씨는 딸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장기기증을 결심했고 25일 새벽 의사들은 급히 정양의 심장과 폐 , 간, 신장, 각막 등을 환자들에게 이식, 제2의 삶을 살게 한 것. 경제한파 속에서 핀 아름다운 '나눔의 꽃'이었다.

사해는 하구는 있어도 유출구가 없어 죽음의 호수가 됐다 . 나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정신의 사해요. 남을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하여 냉수 한 잔, 티 없는 미소 하나일지라도 정성된 마음의 소모와 아픔을 가지고 나누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정신의 비만증 환자요 , 사해 인생이다. 얼마나 소중하고 비밀한 행복의 교훈인가? 남을 사랑할 때 내가 행복해 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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