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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세속종교화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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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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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동일선상에서 논하는 것 자체가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기독교를 종교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을 허용할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 두 가지는 자연종교와 계시 종교입니다. 자연종교는 그 출발이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계시 종교의 출발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되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사람의 종교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자연종교이고, 하나님의 계시로 드러나서 사람들에게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도록 한 것을 계시 종교라고 합니다.

자연종교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에 나타난 용어로서 합리주의 종교를 가리킵니다. 합리주의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계시를 이성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절대주권자로 믿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우주는 자연법칙에 의해 운행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 설명을 이신론(理神論)이라 합니다. 반면 계시 종교는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출발한 것이기에 계시 종교라고 합니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과 뜻을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말합니다. 계시란 희랍어로 ἀποκαλυψις(apokalypsis)라고 하는데 ‘자기를 현시 하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여러 다른 종교들도 각각 나름의 형태로 계시가 있다고 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특이한 환상적 영상에 의해서 나타나거나, 또는 지적, 윤리적, 정신적 내면의 소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계시는 역사적인 객관적 사건을 통해 실현된 계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해 당신 자신의 존재와 인류구원 계획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 그리고 구원과 섭리 등을 이루시고 드러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사람들에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응답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을 믿음, 곧 신앙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성경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믿음까지를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칩니다. 계시의 종교란 이 모든 내용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드러난 성경 계시의 핵심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부패와 구원의 전전 은혜입니다. 종교 개혁 이후에 거의 모든 개신교회는 성경 계시를 통해 드러난 창조와 타락과 구속과 섭리와 나아가서 일반 계시 모두를 이 성경 계시의 패러다임 안에서 해석합니다. 어떤 메시지나 교육이나 문화나 구체적 삶도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부패와 구원의 전전 은혜의 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아야 안전합니다. 우상의 위험이 이방인들을 향한 경고가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경고인 것과 같이 세속종교나 자연종교의 위험도 계시 종교인 기독교 안에 있습니다.

흔히 정통 교회들은 종교다원주의나 세속종교화의 위험을 이야기 할 때 WCC 운동이나 자유주의 신학을 지목합니다. 정통 교회는 자유주의, 실존주의,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낙태 같은 것을 비판하고 막으려는 데 힘을 쏟느라 정작 위험이 자신의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드러난 외부의 적은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적보다 덜 위험합니다. 기독교가 경건의 능력을 잃은 것은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닙니다. 현대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맛 잃은 소금으로 전락하게 된 것은 자유주의나 세속주의나 반기독교적 사상이나 안티 기독교도들 때문이 아니라 성경 계시의 핵심인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부패와 구원의 전전 은혜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세속종교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추구하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인간 실존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는 배고픔과 불안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이것은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고픔과 불안전을 해결해 주는 것이 세속종교의 구원입니다. 모든 국가나 모든 정부의 노력도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만약 어떤 개인이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가 곧 구원자요 메시야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교적 노력의 결과가 세속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 해결을 위한 세속 종교의 신앙이 기독교 신앙과 뒤섞여 심각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의 특징이 세속 종교의 신앙이 추구하는 것과 수준과 가치에서 너무나 흡사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너무나도 분명한 성경 계시가 현대 설교자들에게는 마치 장님에게 문자와 같습니다. 중세 암흑시대에 사제들 70-80%가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을 줄 모르는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도 없었지만 엉터리로 가르쳐도 그것이 엉터리인지를 분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고 의식적 예배만 존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 계시가 밝히 드러난 오늘날도 교회 지도자들의 성경 계시에 대한 문맹률이 중세 암흑시대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서의 설교자의 성경 해석이나 성경 공부나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부패와 구원의 전적 은혜의 패러다임이 여지없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설교자가 성경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부패와 구원의 전적 은혜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성경 계시의 기본 패러다임을 짓밟으면서 성경 중심의 설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성경에서 일어난 표적을 다룰 때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합니다. 표적은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단순한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표적도 단순히 잔칫집의 부족한 포도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표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과 구원이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임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다루면서 다시 그 표적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자기의 도시락을 바친 어린아이의 헌신과 안드레의 노력을 독려하는 것은 계시 종교를 세속종교로 만드는 것입니다. 표적은 사람의 필요나 요청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 계시입니다. 그 하나님의 주권적 계시 안에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구원이 있고 새 생명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은혜는 감격과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노력으로 쥐어짜듯이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개인에게 은혜가 임했다고 해도 그것을 은혜를 받는 방법으로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세속종교화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또 다른 하나의 인간 행위로 만들면 안 됩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는 바울의 피를 토하는 설명을 뒤집어엎고 예배, 전도, 기도, 주일성수, 십일조, 헌신, 충성을 은혜와 복 받는 조건으로 강조하는 것은 계시의 종교를 세속종교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 전도, 기도, 주일성수, 십일조, 헌신, 충성은 은혜나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을 가르치고 전하는 자들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하고 소홀히 취급하면 안 됩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기독교를 세속종교화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이기에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티끌만한 선한 일이라도 이루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설교자의 메시지를 듣고 교인들이 헌신이나 충성이나 공로 같은 것으로 하나님이나 교회를 위해 그 어떤 공헌을 했다는 착각을 하게 하면 안 됩니다. 계시를 통한 복음은 우리에게 감격과 감사와 자유와 충성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고전 1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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