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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왜곡이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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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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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우상이란 피조물을 신격화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우상이란 신이 아닌 것을 신이라고 하기 때문에 거짓이고 허상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우상(偶像)은 인간이 올바른 지식을 얻을 때에 방해가 되는 편견이나 그릇된 선입관을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4개의 우상이 있는데, 첫째는 종족(種族)의 우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만 자연이나 세상을 보게 됨으로써 오는 편견을 말하며, 둘째는 동굴(洞窟)의 우상으로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판단하려는 개인적 편견을 말하며, 셋째는 시장(市場)의 우상으로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 없이 다른 사람 말만 듣고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는 편견이며, 넷째는 극장(劇場)의 우상으로 자신의 소신 없이 권위나 전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맹신에서 생기는 편견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우상이란 참이 아닌 거짓이고 아무것도 아닌 허상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간과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는 상징 내지 형상 혹은 전도된 신념을 고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예수상, 마리아상, 십자가 상 등 하나님의 형상 등을 상상하여 만든 온갖 상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를 우상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기성의 인습적인 도덕이나 풍습이나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상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은 타파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상의 위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신앙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우상은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데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우상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우상화 하는 일은 예수님 시대에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로마 점령군이 가증한 물건으로 성전을 모독한 사건으로 인하여 온 민족이 우상에 치를 떨고 있던 터라 이스라엘 자체 안에 눈에 보이는 상으로서의 우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에 성전 자체가 우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이 우상이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 중심이 되지 않고 성전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아름다운 성전 건물을 자랑할 때 예수님은 우상으로서의 성전은 철저히 타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눅 21:5,6). 예수님께서 시장바닥이 되어버린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에서는 평소와는 너무도 다르게 화를 내셨습니다.

요즘 큰 교회의 예배당도 우상이 될 위험이 큽니다. 최신 건축양식으로 지은 교회 건물은 건축 상을 받을 만합니다. 실제로 예배당 건물 중에 건축 상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뿐 아니라 그 안에 최신 오디오 비디오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자체 방송국을 갖춘 교회도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 서점이 있고, 출판사, 신문사, 카페테리아, 레스토랑, 체육관, 극장도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서 상업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러한 예배당에 들어가서 모든 시설을 둘러엎고 ‘교회를 시장으로 만들지 마시오!’라고 하면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내쫓는다면 당장 폴리스에게 잡혀 갈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된다면 사람들은 “웬 미친놈이 사고를 쳤구먼!”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성전 안에 시장이 선 것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소, 양,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처음부터 시장이 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처음에 순례자들의 편의를 위한 조치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성전에 오는 사람들은 제물을 바쳐야했습니다. 멀리서 소나 양을 끌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끌고 왔다고 해도 제물로 바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것인지 검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만약 멀리서 제물로 드릴 동물을 힘들게 끌고 왔는데 검사에 불합격된다면 낭패입니다. 그런 형편을 감안하여 깨끗한 동물을 미리 준비해 놓아서 순례자들이 그걸 사서 제물로 바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돈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에 들어가려면 성전세를 내야 하는데 아무 돈으로나 낼 수 없습니다. 성전세로 허락하는 돈이라야 되기 때문에 돈을 바꾸어 주도록 한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와 유럽과 근동 여러 곳으로부터 모여들었기 때문에 돈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환전은 순례자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된 이런 제도가 세월이 흐르면서 결국 성전의 이권사업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권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여서 당시에 알 만한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감히 왈가왈부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권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요즘으로 말하면 권력의 실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제사장들의 권위가 막강했고, 그 제도가 나름대로 설득력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불만이 있었지만 막강한 권력의 힘에 의해 보호받는 그 제도에 대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 펼쳐진 시장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그렇게 하는지, 그 권위를 보증해 줄 표적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행위가 문제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예수님의 행동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그렇게 할 권한이 있느냐를 문제 삼았고 또한 표적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 건축 기간이 46년이라는 사실을 들어 그것의 불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예루살렘 성전을 자랑하는 말이기도 하고, 성전을 허물어야 표적을 보일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할 말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말장난을 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지 못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표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모든 종교적, 정치적 업적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표적이 이제는 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전을 왜곡하는 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왜곡했듯이 오늘날은 교회를 왜곡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요즘 한국의 사랑의 교회가 문제에 휩싸였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의 교회는 지금 합동총회의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규모와 시설과 무엇보다 상징성(?)에서 지켜야 할 아까운 교회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교회를 우상화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헐라고 하신 성전은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이스라엘 신앙과 민족정신의 상징이고 자존심입니다. 하지만 그런 성전은 필연적으로 헐어버려야 할 우상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중심이 아닌 46년 동안 지은 건물로서의 성전에 천착한 것이 성전에 대한 왜곡이었듯이, 평생 집중하고 정성과 공을 들여 온 교회와 프로그램과 건물과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애착과 집착은 교회에 대한 왜곡이고 우상인 것입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눅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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