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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세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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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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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죄책감으로 자기의 눈을 뽑아내고 방랑하게 되고, 그의 아내가 된 어머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정신의학자 프로이트는 이 신화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즉 사람은 어릴 때부터 남자 아이는 어머니를 좋아하고 아버지를 경쟁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성(性)과 관련지어 생각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론을 펴게 된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뿐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과 장모와 사위 간의 갈등도 마치 불치의 병처럼 극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불치의 병을 피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렵지만, 극복하기가 역부족인 인간관계는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옛날 대가족제 아래서는 고부간의 갈등의 피해가 지금보다 심했지만 핵가족 제는 그 피해를 상당히 감소시켰습니다. 고부간의 갈등의 요인은 여러 가지라고 합니다. 성장 문화와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편의 가이드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의 욕구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이기도 하고, 갈등을 비합리적으로 풀려고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전북 익산에서는 어떤 고부가 갈등을 겪어오다가 방에 불을 질러 함께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인간 갈등의 요인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장기수는 고백하기를 오뉴월 삼복더위에 좁은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동료 수인을 땀 냄새와 더위로 인해 그 존재를 미워하게 되는 자신을 극복하기가 힘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고부갈등의 요인의 상당부분이 존재론적이고 고부가 따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편을 택하는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고부간의 갈등 못지않게 극복하기가 힘든 것이 지도자의 은퇴와 후임자 세우는 일입니다. 옛말에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누어 갖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증거를 조선 왕조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교회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지도자 세습 문제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교회들 중에 지도자 세습이나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의 갈등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교회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지도자가 은퇴하는 일과 후계자를 세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를 새로 세우는 일도 중요하고 교회의 목회자를 새로 세우는 일도 중요합니다.

전임이 은퇴하고 후계자를 세울 때 일대 혼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새로운 황제가 등극할 때 피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모든 나라의 왕정에서도 지도자가 바뀔 때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교회에도 교황이나 그 외 지도자 자리를 두고 분쟁과 모함과 죽고 죽이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교회에서 목사님이 은퇴하고 후임자를 세우는 일로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교회가 많습니다. 전임 지도자가 존경 받는 지도자일수록 후임 지도자는 힘들고 교인들 사이의 갈등 또한 더욱 심각합니다. 게다가 전임 지도자가 원로 목사가 되어서도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 질 것입니다. 후임 지도자가 전임 지도자보다 능력과 인기가 있어도 문제는 마찬가지입니다. 전임 지도자와 후임 지도의 갈등 문제는 덕과 인격으로 극복이 안 되는 존재론적인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덕 있는 전임과 후임일지라도 그들이 한 지붕 아래 있는 한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입니다. 대체로 문제의 요인은 전임자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지도자가 바뀌어도 전임자의 영향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카리스마가 강한 전임자가 의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할 때 문제가 더 심각해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과신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를 과신하는 일은 누구보다도 목회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자신을 과신할 위험이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기본적인 크레딧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과 존경을 목회자 자신에게 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오해로 인하여 자기를 과신하게 되고 그 과신은 무리수를 두게 하는데 정작 목회자 자신은 그 위험을 감지하지를 못합니다. 어떤 미국 교단은 교회에서의 전임 지도자와 후임 지도자로 인한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랜 노력과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난 다음 그 해결책으로 은퇴한 목회자는 자기가 목회하던 교회로부터 50 마일 밖에 나가서 거주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너무 인위적인 방법 같지만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문제는 피하는 것이 지혜일 수 있습니다.

구약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후임자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전임자와 후임자로 인한 문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세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압에서의 설교를 끝내고 곧 이스라엘 민족을 떠납니다. 수행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느보산에 올라가 죽습니다. 그의 시체도 흔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떠나기 전에 모세가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이 후임자의 말을 잘 듣도록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후임자를 배려한 말이지만 사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모세의 은퇴와 후임을 세우는 문제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데려가신 것은 너무나 인상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신까지 감추어버렸습니다.

백성들이 후임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 아주 중요한 요인은 전임자의 영향력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특별 조치를 단행하셨습니다. 인간 모세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셨습니다. 전임 지도자가 훌륭하면 할수록 후임자는 힘들고 사람들은 후임보다 전임 지도자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전임 지도자인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후임지도자도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백성들은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로서의 자격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그 자격이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아무런 자격이 없습니다. 선지자의 역할은 세례요한이 자신을 가리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목사는 구약 제사장 직의 계승이 아니라 선지자 직의 계승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은퇴하는 지도자와 후임 지도자가 선지자 직의 계승이라는 바른 의식을 갖게 되고 교인들이 그들을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 기울인다면 후임지도자를 세우는 일로 인한 갈등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명기 18: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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