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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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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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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회가 예배당을 마련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습니다.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예배당을 마련하기 위해 교인들에게 특별헌금을 하라고 할 마음이 없었고, 예배당이 필요하고 재정이 허락되면 자연스럽게 예배당을 마련하게 되겠지만 공원이나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는 한이 있어도 여느 교회들처럼 무리하게 건축헌금을 강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목사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몇몇 제직들이 왜 우리 교회는 건축헌금을 하지 않느냐고 하자, 정 그렇다면 우리도 건축헌금을 하도록 하겠다고 하고서 어느 주일 광고 시간에 건축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장로님은 200억, 권사님은 150억, 집사님은 100억, 나머지 분들은 50억씩 하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의 광고를 듣고 모든 교인들이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아무도 부담 갖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얼굴이 밝아져서 편안해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액수대로 건축헌금을 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니까 부담도 안 갖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의도가 적중하였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애당초 인간의 힘이나 지혜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설명하셨습니다.

한 부자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그런 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고 하자,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하시며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자 부자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놀라면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부자가 구원받기 힘들다는 말은 곧 가난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비교적 쉽다는 뜻인데 제자들이 오해를 하여 “부자도 못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라면 가난한 자는 기대할 수조차 없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부(富)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 조상들은 모두 부자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그런 부에 대한 약속도 많습니다. 가난을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난은 징벌입니다. 그런 배경에서 생각해 보면 부는 구원의 상징이고, 가난은 징벌의 상징입니다. 그런 이해를 통해 볼 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들다면 가난한 사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복 받은 부자도 못 들어가는 천국이라면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가난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부에 대하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성경의 가르침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놀란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라면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 얻는 것이 복음이고 복음이 은혜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사람으로는”라는 뜻은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칼빈도 어거스틴도 바울도 아브라함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그런데 진리를 늘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왔던 부자가 그랬고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자가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렇게 했다고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자는 이 점이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 주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생색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 불편한 것입니다. 돈과 권력과 인기와 리더십으로 “무엇을 하여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라는 진리가 불편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대하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속죄를 완전히 끝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단번에’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루터의 설명에 의하면 이것은‘모든 경우를 위한 하나’라는 뜻입니다. 유일회적(唯一回的)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는, 오직 한 번의 경우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라는 말씀은 현대인들의 정서를 불편하게 하는 기독교의 진리와 구원의 교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이들의 죄를 용서하는 유일한 사건이 될 수 있느냐고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회적인 속죄 사역을 완성하셨다는 진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기독교”인 WCC를 만들었습니다. 진리가 불편한 이들은 누구나 마음 편한 WCC 좋아합니다. 진리가 자유하게 해서 마음 편한 것이 아니라 어떤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과도 연합할 수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진리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의 힘으로 무엇인가 공헌하고 이름을 내고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진리가 불편한 것입니다. WCC를 반대하자니 속 좁은 사람 같고, 지지하자니 그 동안 전해온 말씀과는 맞지 않고, 그래서 좌불안석(坐不安席)인 태도에서 그동안 숨겨 잉태한 욕심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된 것 같아 참 보기 흉합니다. 진리가 불편한 이들은 자유하게 하는 진리가 무엇 때문에 불편한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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