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자들의 이기적인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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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ㆍ2005-12-2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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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는 어떤 집단이든지 처음에는 순수하게 출발할지라도 시간이 감에 따라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이념과 사상이 고상하고 목적이 숭고할지라도 그것을 이루려는 인간이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고상하고 높은 이상과 숭고한 목적은 사라지고 집단의 이기심을 정당화 하려는 쪽으로 변질되어갑니다.
어떤 집단이 고상하고 높은 이상과 숭고한 목적으로 출발하였을지라도 시간이 감에 따라 구성원들은 교묘하게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제도와 내규를 만들어내어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됩니다. 좋은 뜻으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가면 공익도, 인권도, 환경보호도, 윤리와 도덕적 필요 같은 것은 관심에서 사라지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결국은 이기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집단이든지 개혁이 필요합니다. 개혁이란 영어로 reform이라고 합니다. 바른 내용을 담기 위한 그릇을 바꾸자는 것이 개혁입니다.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용을 담아 낼 그릇을 바꾸자는 것이 reform의 뜻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회나 집단이든지 개혁하자는 데는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역사를 돌아볼 때 개혁하자는 총론에서는 반대할 사람이 없지만 각론에서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자들이 바로 기득권자들이라는 사실 입니다. 경제를 개혁하려고 하면 기업 죽이기라고 반발하고, 언론을 개혁하려고 하면 언론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정치를 개혁하려고 하면 정치탄압이라고 반발을 하고, 교육 제도를 개혁하려고 하면 교육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을 하고, 종교를 개혁하려고 하면 종교 탄압이라고 반발을 합니다. 자세히 주의하여 보면 어떤 개혁이든지 반발하는 계층은 그 집단의 기득권층입니다. 그들의 반발의 명분은 정의와 공익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의 이기적인 기득권을 지키려는 발버둥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반발로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개혁에 실패했고, 참여 정부도 발목을 잡히고 있습니다. 물론 각 정부마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혜롭게 사심 없이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부족한 점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득권층들이 속내를 숨기고 대의명분을 앞세우며 매우 교묘하게 반발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노동조합 간부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사건이 터진 것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노동조합 간부들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힘없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노동조합의 리더들이 그 안에서 기득권층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득권에 탐이 나서 노동자의 권익과 정의의 편에서 일하지 않고 기득권만 챙기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경우가 된 셈입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고양에게 생선을 맡긴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실제로 이런 우려가 교회 안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신 사회는 기득권 때문에 싸우면서도 정의와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교회는 기득권 때문에 싸우면서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명분으로 내세웁니다. 그래서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면 역시 교회 안에서도 기득권층이 반발합니다. 기득권을 잃게 될까봐 온갖 거룩한 모습을 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폭력도 불사합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국회의원이 농사를 짓습니다. 스위스 의회의 농사꾼, 안드레아 헴멀레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스위스 의회에 모인 의원들은 거의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의원직은 돈과 명예가 아닌, 나라를 위한 봉사의 직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평소에는 본업에 열중하다가 국회가 열리게 되면 시간을 내어 베른에 가서 머물면서 의원으로서의 임무를 다합니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프랏트발에 살고 있는 헴멀레 의원은 소를 키우고 밭을 갈며 감자농사를 지어 판매하는 농부입니다. 그는 특히 친환경적인 생태농업에 열중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는 대학에서 법을 공부한 법학박사 출신입니다. 헴멀레는 교통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이면서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알프스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제안한 알프스 보호 법안은 그의 개인적인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자연보호는 말 그대로 자연을 보호하려는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믿어줍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의 상황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은 물론, 대학교수와, 과학자, 심지어 목사의 말도 거의가 기득권에 대한 이기심을 숨기고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숨겨진 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은 참으로 우리를 낙심시키는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또 한 편 참 신자는 이것이 인간 수준이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거룩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이 인간의 사악함 이라고 일찍이 성경은 지적하였습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디모데전서 6:5절 -
어떤 집단이 고상하고 높은 이상과 숭고한 목적으로 출발하였을지라도 시간이 감에 따라 구성원들은 교묘하게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제도와 내규를 만들어내어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됩니다. 좋은 뜻으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가면 공익도, 인권도, 환경보호도, 윤리와 도덕적 필요 같은 것은 관심에서 사라지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결국은 이기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집단이든지 개혁이 필요합니다. 개혁이란 영어로 reform이라고 합니다. 바른 내용을 담기 위한 그릇을 바꾸자는 것이 개혁입니다.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용을 담아 낼 그릇을 바꾸자는 것이 reform의 뜻입니다. 따라서 어떤 사회나 집단이든지 개혁하자는 데는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 역사를 돌아볼 때 개혁하자는 총론에서는 반대할 사람이 없지만 각론에서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자들이 바로 기득권자들이라는 사실 입니다. 경제를 개혁하려고 하면 기업 죽이기라고 반발하고, 언론을 개혁하려고 하면 언론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정치를 개혁하려고 하면 정치탄압이라고 반발을 하고, 교육 제도를 개혁하려고 하면 교육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을 하고, 종교를 개혁하려고 하면 종교 탄압이라고 반발을 합니다. 자세히 주의하여 보면 어떤 개혁이든지 반발하는 계층은 그 집단의 기득권층입니다. 그들의 반발의 명분은 정의와 공익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의 이기적인 기득권을 지키려는 발버둥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득권층의 반발로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개혁에 실패했고, 참여 정부도 발목을 잡히고 있습니다. 물론 각 정부마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혜롭게 사심 없이 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부족한 점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득권층들이 속내를 숨기고 대의명분을 앞세우며 매우 교묘하게 반발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노동조합 간부들이 노동자들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사건이 터진 것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노동조합 간부들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힘없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노동조합의 리더들이 그 안에서 기득권층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득권에 탐이 나서 노동자의 권익과 정의의 편에서 일하지 않고 기득권만 챙기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경우가 된 셈입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이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고양에게 생선을 맡긴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실제로 이런 우려가 교회 안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불신 사회는 기득권 때문에 싸우면서도 정의와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교회는 기득권 때문에 싸우면서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명분으로 내세웁니다. 그래서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면 역시 교회 안에서도 기득권층이 반발합니다. 기득권을 잃게 될까봐 온갖 거룩한 모습을 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폭력도 불사합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국회의원이 농사를 짓습니다. 스위스 의회의 농사꾼, 안드레아 헴멀레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스위스 의회에 모인 의원들은 거의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의원직은 돈과 명예가 아닌, 나라를 위한 봉사의 직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평소에는 본업에 열중하다가 국회가 열리게 되면 시간을 내어 베른에 가서 머물면서 의원으로서의 임무를 다합니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프랏트발에 살고 있는 헴멀레 의원은 소를 키우고 밭을 갈며 감자농사를 지어 판매하는 농부입니다. 그는 특히 친환경적인 생태농업에 열중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는 대학에서 법을 공부한 법학박사 출신입니다. 헴멀레는 교통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이면서 생태계 보호를 위한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알프스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제안한 알프스 보호 법안은 그의 개인적인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자연보호는 말 그대로 자연을 보호하려는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믿어줍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의 상황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은 물론, 대학교수와, 과학자, 심지어 목사의 말도 거의가 기득권에 대한 이기심을 숨기고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숨겨진 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은 참으로 우리를 낙심시키는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또 한 편 참 신자는 이것이 인간 수준이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거룩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것이 인간의 사악함 이라고 일찍이 성경은 지적하였습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디모데전서 6:5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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