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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되는 것, 몰라도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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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0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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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학자들이 모여 미국의 경제에 대해 논의하고 미래에 대한 경제적 전망을 제시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몇 년 전 그 모임에서 미국의 경제에 대해 논의를 하고 머지않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이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 그 시간에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금리 인하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러자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이 “나는 왜 경제학자가 아닌가?”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상황입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질서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질서란 우리로 하여금 예측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안정감을 갖게 합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많습니다. 은행이나, 우체국이나, 레스토랑이나, 물건을 사고 돈을 낼 때에도 줄을 섭니다. 때로는 줄이 길지만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앞에 다섯 사람이 있으면 여섯 번째는 나의 차례가 된다는 기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다립니다. 만약에 여러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갑자가 힘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밀치고 앞으로 끼어든다면 질서를 지키고 줄을 선다는 것이 무의미해 지고 맙니다.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면 줄을 서서 기다려도 언제 나의 차례가 올지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고 또 어떤 나쁜 사람이 새치기를 하지 않을까 불안할 것입니다. 미개한 사회에는 대게 질서가 무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 같은 불안을 느낍니다. 내가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내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여도 상황은 나의 예측을 불허하는 쪽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사회가 지나치게 복잡하게 된 때문입니다. 경제나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때 그렇게 되는 원인이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원인을 다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원인을 다 알려고 하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진리를 좇아 단순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하겠지만 몰라도 되는 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입니다. 아덴은 철학의 도시입니다. 사람들은 매우 철학적이며 또한 종교적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종교성과 철학적인 성향에 대해 매우 깊은 비판을 가하며 기독교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지만 아덴에서만 교회를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데는 없지만 바울이 아덴에서 체류한 다음에 간 곳이 고린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고린도서에 나타나 그의 고백이 다분히 아덴에서의 경험이 배경이 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전 1:1-2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의 이 결심은 두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몰라도 되는 것은 알지 아니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는 몰라도 되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무익합니다. 바울이 이런 것에 대해 결심을 한 것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인의 사명과 윤리적인 문제까지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나친 호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다 알려고 할 것 없습니다. 뭐든지 불필요한 호기심 때문에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호기심과 관심을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필요한 것에 대해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내가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지식이요 정보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둘째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알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길은 너무나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갈등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매우 단순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만 알고 복음만 알기로 하였기 때문에 단순하고 명료하여졌습니다. 그런데 그 단순함과 명료함으로부터 심오함이 넘쳐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아마도 바울만큼 탁월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한 바울은 그의 생활이 얼마나 경건 된지 모릅니다. 그 경건으로부터 지혜와 용기와 기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의 똑똑함이나 경험에 의존하여 교만하게 될까 늘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온갖 것을 다 가지려고 하지 않고, 온갖 것 다 알려고 하지 않고 예수만 알기로 결심할 때, 예수만 아는 그 속에 가장 심오한 지혜와 가장 고상한 지식과 세상의 모든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화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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