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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 우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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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0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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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습니다.”라는 말에 우리가 비록 기독교 신자라고 하여도 아무런 어색함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우연”이라는 말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갑자기 일어난 일을 무의식중에 우연이라고 취급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철학에서는 우연을 필연성의 반대개념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진화론이 과학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진화론도 바로 이 우연에서 시작합니다. 우주의 근원도 생명의 근원도 우연에 의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우연이란 무엇에 대해 설명을 할 때 그렇게 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데 결과가 생겨난 것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필연성이란 무엇에 대해 설명을 할 때 합리적이고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는 필연성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설명할 때 거의 많은 것을 필연성으로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우연이라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 중에도 우연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대게 원인을 설명할 수 없으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에게 이 사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으면서 또 우연을 믿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세계관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이란 가치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가치관은 기독교 신자에게 매우 중요한 윤리적 자원입니다. 복음도 어떤 면에서는 가치관의 우선순위에 따라 결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마 10:37, 막 10:29절)

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상대방의 가치관이 나와 같은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자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여러 부분에서 서로 다른 점이 많아도 극복이 되지만 가치관이 다르면 극복하기가 힘듭니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인과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이 가치관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가치관이 다른 불신자와 결혼을 하면 사사건건 충돌하게 되어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은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치계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가치관 때문입니다. 성경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은 보수도 되고 진보도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진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계시로 주신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는 모든 것을 불변의 진리인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진보가 성경에 위배될 때는 과감히 배격해야 하고 보수가 비성경적일 때는 과감히 개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상호 충돌하는 기치관이 많습니다. 종교적 가치관과 과학적 가치관은 충돌할 경우가 많습니다. 창조론적 가치관과 진화론적 가치관은 서로 다릅니다. 철학에서도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의 인과적 세계관과 대립합니다.

196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우주 안의 모든 현상이 인과법칙에 의해 설명된다 해도 그러한 인과법칙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분자생물학자인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우연적 과정으로 조합되므로 생의 근저에는 우연성이 놓여 있다.” 우연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섭리를 믿지 못하는 인간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론적 이론입니다.

또한 더욱 복잡하게 “우연적 필연과 필연적 우연”으로 사건과 사물을 설명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면 필연이었다고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통사고의 경우, 한 개인이 보기에는 우연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필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우연이냐 필연이냐로 구별하기보다 그 깊은 내막에 얽힌 긴밀한 연관 관계를 찾으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론과 주장에 대한 복잡한 설명이 있지만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믿는 신자라면 당연히 우연 대신에 창조와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적 가치관과 윤리는 이 믿음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지 않고 우연을 믿으면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신자로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나 이론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는 일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로 설명하고 또 믿어야 합니다. 우연은 사람을 불안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은 우리를 안심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고 또한 겸손하게 합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이유를 알 수 없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을 많이 만납니다. 신자는 알아야 할 일은 알기 위해 노력해야하지만 때로는 다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려고 해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습니다. 일이 나에게 불리하게 진행되고 고통을 가져다주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 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하나님의 지혜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 115: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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