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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적 계시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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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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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토를라이프 보만(Thorleif Boman)이라는 분이 “히브리적 사유(思惟)와 그리스적 사유(思惟)의 비교”라는 책을 썼습니다. 1952년에 출판된 이 책은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담을 넘어 지중해 연안으로 퍼져 나갈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그리스 사상이었습니다.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지배적이던 지중해 연안에서 복음은 그리스화 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개념으로 설명되어야만 했습니다.

물론 복음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것이지만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와 사유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선교사들이 선교지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필요에 의해 그리스의 언어와 사유의 방식은 복음 증거의 방법론으로 채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어가 지닌 위력은 방법론으로만 이용되는 것을 거부하여 기독교는 복음뿐 아니라 그리스의 사상까지도 서양 사람들의 머리에 집어넣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서양 사상과 문화는 히브리적 영향과 그리스적  영향을 함께 지니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분명히 히브리적 기반 위에서 출발하였지만, 그리스 전통과의 만남을 통해 기독교의 세계화와 교리적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리스적 전통이 복음의 확산에 끼친 영향이 크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 전통은 기독교의 본질을 심각하게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양자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고 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두 전통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서양 문화는 물론이거니와 기독교와 구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 히브리적 사유이고, 무엇이 그리스적 사유이며, 이 두 사유의 차이와 공통성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해 왔지만, 학자에 따라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대답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고 또한 어떤 학자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비교적 분명하고 알찬 설명을 한 사람이 바로 스웨덴의 루터교회 목사인 토를라이프 보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두 사유를 비교하기 위해 두 언어 세계에 들어 있는 사유의 토대를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자들은 언어의 외적 구조와 내적 의미를 지루하리 만큼 집요하게 파고들며 치밀하게 분석하는 저자의 끈질긴 노력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지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간간이 요약을 해 놓은 저자의 배려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1부에서는 히브리적 사유를 동적, 정열적으로 보고,  그리스적 사유를 정적, 조화적으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행동 속에서 자신의 능력과 은혜를 실증하는 것으로, 그리스적 사유에서 존재의 본질은 부동성, 불변성에 있다고 하였는데, 히브리적 특성은 영원한 움직임으로, 그리스적 특성은 영원한 정지라고 하였습니다.

제2부에서 저자는 대상을 바라보는 두 민족의 차이를 지적하였는데,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라는 대상의 외관에 관심이 없지만, 그리스인들은 감각기능, 특히 시각을 통해 현실과 접촉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제3부에서는 시간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지속적이라고 한 반면 히브리인들은 시간을 시작과 끝이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제4부에서는 사건 파악을 히브리인들은 삼중적(동적, 도구적, 성품적)으로, 그리스인들은 이중적(상징적, 도구적)으로 본다고 하였고, 제5부에서 히브리인은 삶과 역사, 도덕의 법칙에 대한 개인적 확신을 추구하였다면, 그리스인은 객관적 진리, 명료성을 추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신약성경 안에 들어 있는 히브리적 사유형식과 그리스적 사유형식의 관계를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학자 부버(M. Buber)는 유대교의 헬레니즘화를 일종의 타락으로 규정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적 사유가 그리스적 사유와 병행되고 결합되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리스적 사유의 개념들이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의 사유가 병행하고 결합된 것으로 보지만 그것은 결합도 병행도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적 계시의 방법일 뿐입니다. 그리스적 용어와 개념이 성경에 나타난다고 해도 성경은 결코 그리스적인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어도 인간적이지 않고 신적 권위를 갖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적 사유도 일단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 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시편 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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