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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임마누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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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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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있었던 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난리가 일어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였고 임금이 사는 왕궁도 안전하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임금이 궁을 버리고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임금이 변장을 하고 몇몇 신하와 함께 왕궁을 빠져나와 어느 시골 마을로 숨어들었습니다. 그 마을 어느 집 앞에 이르러 ‘이리 오너라!’라고 하자 촌부가 나와 낯선 일행을 맞으며 “뉘신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임금은 “나는 한양에 사는 이서방일세. 사정이 있어 그러니 여기서 며칠 쉬어가도 되겠는가?” 촌부는 자기 집에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지만 점잖은 어른 같아서 그러라고 하고 정중히 모시고 정성을 다해 잘 대접을 했습니다.

얼마 후에 상황이 바뀌어 임금이 환궁을 하게 되었습니다. 궁으로 돌아온 임금은 자기를 환대해 준 그 촌부가 너무 고마워서 사람을 보내어 왕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임금 앞에 불러간 촌부가 얼굴을 들고 바라보니 며칠 전에 자기 집에 머물다 간 한양의 이서방이 용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임금이 촌부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나를 이렇게 후대하였으니 내 그대의 은혜를 갚고자 하노라. 무슨 소원이든지 말하면 내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땅이든 벼슬이든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하라.” 그러자 촌부는 “아니옵니다. 임금님을 저희 집에 모신 것만으로 영광이옵니다. 저에게는 특별한 소원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임금은 “임금이 되어 백성에게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갚지 않는데서야 임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은혜를 갚아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으니 사양 말고 어서 소원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촌부는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인이 금년에 환갑이온데, 소인의 자식들이 환갑 찬치를 한다고 하니 상감마마께서 그 때 저희 집에 다시 한 번 와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사옵니다.” 임금은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촌부의 회갑 잔치에는 대신들과 지방 벼슬아치들과 양반들이 보내온 선물들이 넘쳐났습니다. 임금님을 모신 잔치를 한 번 치르고 나자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촌부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그 날 이후로 아무도 그 촌부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었고 자자손손 임금님을 모신 집안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임금님이 내 집에 한 번 방문하는 것으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바로 메시야를 자기 집에 모시는 영광을 누린 사람입니다. 물론 삭개오는 가난한 촌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기 때문에 돈 많은 부자였습니다. 그가 부자이긴 하지만 당시 세리는 돈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나쁜 놈이라는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힘 있는 사람이지만 백성들 중에는 아무도 그를 인간 대접하는 사람이 없었고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거지도 세리의 돈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은 언제나 “세리와 죄인”이라고 기록하여 당시 사람들이 세리를 죄인의 대명사로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자가 위대한 선지자요 랍비요 메시아이신 예수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며 그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삭개오는 진정한 회개의 본이 되는 인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진정한 회개의 본이 될 뿐 아니라 진정한 감사의 본이 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삭개오의 이야기에 그가 감사를 드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취한 행동에서 진정한 감사를 드린 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로마가 유대나라뿐 아니라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누구도 로마를 떠나서 살 수 없었고, 로마를 피해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대세를 잘 이용한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당시 세리의 장은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고위 권력자에게 줄이 닿아야 하고 어느 정도 재물도 있어야 하고 또 머리도 좋아야 합니다. 당시 한 지역의 세리장이 되는 것은 돈 방석에 앉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세리장이 되면 로마를 대표한 총독 이하 군인들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부자이면서 권력의 높은 곳에 줄이 닿는 사람이기 때문에 총독이나 군인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2천여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내면을 살펴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그분을 한 번 보려고 나무에 올라갔다는 사실은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세리장의 신분으로 그러한 행동을 취한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예수님께 대한 관심과 예수님을 만나 후의 취한 행동으로 보아 그의 내면에서는 상당한 갈등과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고민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고민이 아니고, 더 높은 권력을 얻으려는 고민도 아니고,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고민입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민족적으로 조국을 등진 죄인으로 산다는 내면의 갈등과 괴로움 같은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은 대개 이런 고민을 안 합니다. 돈 있고 권력 있으면 더 교만하고 더 잔인하고 더 못된 짓 하여 재물과 권력을 지키려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내면에는 그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다는 양심의 가책과 민족을 배반하고 있다는 찜찜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독특한 신앙이 있습니다. 삭개오에게도 그 나름대로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공의로 세상을 다스릴 왕입니다. 그 메시야가 오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비록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언제까지나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편, 메시야가 오시면 좋겠지만 당장 메시야가 오신다면 곤란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오시면 악인은 벌하고 의인은 영광을 얻게 하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평화, 새로운 세계를 만드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삭개오가 지금의 사는 방식을 당장 포기할 용기가 없었고 그럴 기회도 없습니다. 만약 자기가 세리장의 직업을 버리고 율법의 가르침대로 메시야를 기다라며 살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매우 흥미로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소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자기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그러한 시도와 제안에 예수님은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 것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세리의 직업을 가진 마태라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어떤 접촉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어떤 실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삶의 방향을 180도로 바꿀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은근히 기대하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좋지 못한 소문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끌었던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도대체 예수가 어떤 분이기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천대하고 온 이스라엘이 미워하는 죄인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는 세리를 제자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세리를 제자삼은 그 사람, 예수는 어떤 분인가?’세리의 친구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세리를 사랑한 그분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마태와 같은 세리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무엇을 한다면 못할 것이 없는 그였지만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예수님을 한 번 본다는 것이 작은 키 때문에 어렵다는 것을 알고 체면불구하고 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여기까지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취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전에 예수님이 삭개오를 먼저 보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길을 가고 계시는 예수님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먼저 보았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삭개오의 마음과 그의 행동을 알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계시면서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어린 양을 찾으시는 순간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양을 찾으셨습니다. 군중을 둘러보시듯이 보신 것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만나 주신 것입니다.

신앙에는 반드시 이런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간절함으로 예수님을 찾는 자에게 예수님은 개별적으로 만나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그렇게 만나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계십니다. 그가 왜 나무에 올라갔는지, 왜 나를 보려고 하는지, 왜 저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 마음을 예수님은 읽으셨습니다. 그의 고민, 그의 깊은 관심, 그의 궁극적 관심을 예수님은 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다 이 대목에서 감격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그랬고,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이 그랬고, 소경으로 있다가 고침 받은 사람이 그랬고, 혈루증 앓던 여인이 그랬고,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서 삭개오의 관심이 무엇이고 그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리의 집입니다. 온 유대 사람이 상종하지도 않고, 인사하지도 않는 죄인의 집입니다. 이렇게 더럽게 취급하는 세리의 집에 예수님은 오늘 밤 너희 집에서 묵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친절과 너그러움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적 진리가 이 말씀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의 가장 큰 복은 건강도 아니고, 물질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권력이나 명예도 아닙니다. 가장 귀한 복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인인 나와 교제를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죄인이 아니라 의인 취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러 오신 것은 의인이 죄인의 집에 오신 것이고, 메시아가 죄인의 집에 오심으로써 그의 신분을 바꾸어 놓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여기에 삭개오의 감격과 감사가 있습니다. 그는 즐거워했고, 은혜를 보답했고, 진정한 회개를 하였습니다. 진정한 감사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물질을 얻은 것도 아니고 권세를 얻은 것도 아니고 병을 고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집에 오신다는 것 때문에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임마누엘 감사입니다. 인간 무상을 깨닫는 것은 불교인입니다. 인간의 도리를 알면 유교인입니다. 은혜를 알면 기독교인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감사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되 임마누엘을 감사해야 합니다.

눅 19:5-6,9-10절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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