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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람은 불편하고 풍요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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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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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옛 농촌에서의 잊히지 않는 기억 중의 하나는 배고픔입니다. 옛 농촌의 겨울은 춥고 배고픔이 만들어 낸 추억이 많습니다. 수수 대를 세워 그 위에 흙을 덧칠한 벽으로 겨울 송곳 바람이 숭숭 들어와 위목에 물 사발을 꽁꽁 얼게 하는 겨울 밤, 모자라는 이불을 서로 당겨 덮느라 잠을 설쳤고, 어린 형제들은 천정을 향해 고무신처럼 나란히 누워 입김을 후후 불며 장난을 치다가 배가 고파 날 고구마나 무를 깎아 먹고 잠이 들곤 하였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호롱 불 주위에 모여 내복을 벗어 뒤집어 솔깃 사이에 숨어 있는 이를 잡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이는 잡아 호롱 속 석유에 빠뜨리고 시가리(이의 알의 지방방언)는 불에 태웠는데, 태울 때 나는 토독 토독 소리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일어났다 돌아오면 자리가 없어져 잠자리를 개척해야 했습니다. 아침에 어머니가 밥을 풀 때는 제비 새끼들처럼 샛문으로 내다보며 ‘엄마, 쌀밥 쌀밥, 좀 마이 마이’라고 하지만 쌀밥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기, 형 밥을 푸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섞어버리기 때문에 소용없는 줄 알지만 늘 그렇게 하곤 했습니다. 어쩌다 할아버지와 겸상을 할 때도 있지만 김이나 생선 구운 것은 할아버지가 집어 주시면 행운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김 한 장 못 얻어먹어도(먹고 싶기야 했겠지만) 서운한 것도 몰랐습니다. 늘 배는 고파 있었고, 입는 옷, 신는 양말이나 신발도 떨어진 것을 두 번 세 번씩 기워 입고 신었습니다. 무엇 하나 풍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식량이 모자라고, 땔감이 모자라고, 입을 옷도 부족하고, 잠자리, 이부자리 모두가 부족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해도 도둑질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잠언 기자가 염려했던 극단적인 가난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극단적 가난을 불편함이라고 하면 안 되지만 그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자람으로 인한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모자람이나 불편함 때문에 비윤리적이 되거나 비양심적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가난하고 모든 것이 모자라던 시대에도 시골 인심은 훈훈했었는데 보릿고개가 극복되고 시골 형편이 나아지면서 인심이 사나워 진 것을 생각할 때 모든 것이 모자라는 가난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볼 때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동하면서 경제적 형편은 나아졌지만 보편 가치들은 점점 무시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물론 민주의식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기본권과 어린이와 여자들의 권익도 신장되었습니다. 지게나 우마차나 삽과 괭이로 하던 일을 경운기나 트랙터가 대신하여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덜어 준 것 또한 농사일 노동의 고달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마움을 다 모를 것입니다. 자동차의 발전과 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가전제품들은 노동의 수고와 불편함을 덜어주었습니다. 인간 복지를 위한 긍정적인 수많은 발전과 기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문명과 자본주의는 인간 소외도 심화시켰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어떤 사업가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 금덩어리 다섯 개가 있다. 내가 두 개를 가져왔다. 몇 개 남았냐? 세 개요. 내가 또 한 개를 뺏어왔다. 몇 개 남았냐? 두 개요. 그래, 이게 자본주의야. 내가 안 뺏어오면 다른 놈이 빼앗아 가는 거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먼저 가져가는 놈이 임자야. 사람들이 말로는 돈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세상에 돈보다 중요한 건 없어.”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도가니’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입니다. 작가 공지영씨가 그 책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가진 자가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진 자는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에게 가하는 폭력이 무차별적이고 잔인하다고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하여 도둑질 할 위험이 있었지만, 오늘날은 가난하여 도둑질 할 위험보다 배불러서 도둑질 할 위험이 훨씬 더 높습니다. 가난한 자는 돈에 대한 위력을 사실 잘 모릅니다. 옛날에 어린아이들에게 ‘너 돈 있으면 뭐 할래?’라고 물으면 ‘사탕 사 먹을래요.’, ‘아이스크림 사 먹을래요.’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돈 생기면 무엇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게임기를 사고 싶은 아이도 있겠고, 스마트폰을 사고 싶은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건 아이는 옛날 아이나 현대 아이나 그 욕구가 단순합니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의 욕구는 부자에 비해 매우 단순합니다. 양식 걱정 안 할 만큼만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난방비용 걱정 안 할 만큼만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유가 있으면 집도 사고 싶고, 자동차도 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부자들은 돈을 더 갖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돈의 위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는 돈으로 무엇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벌고 싶지만, 부자는 돈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돈을 더 가지려고 합니다. 돈을 더 가지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가난한 자의 돈이라도 빼앗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안 빼앗아 가면 어차피 다른 사람이 빼앗아갈 테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먼저 빼앗아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빼앗는다는 말은 좀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그게 부자들의 마음이고 자본주의의 폐단입니다.

부자의 욕심과 폭력은 비단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경에도 아합의 욕심과 폭력과 살인이 있고, 다윗도 욕심으로 폭력과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자의 욕심과 폭력이 합법적이 되고 가난한 자의 억울함과 울분과 하소연은 위험한 사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부자들이 돈을 버는 것은 가난한자들을 상대로 버는 것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경쟁을 하면 가난한 자는 거의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약점입니다. 자본주의의 이 약점을 가장 잘 이용하는 자들이 부자들입니다.

부하게 되는 비결은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을 근검절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성실한 노력만 가지고 부자가 되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노동 집약적인 고대사회에서는 성실하게 노력하고 근검절약 하는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는 신속한 정보와 아이디어와 또 자본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재물 앞에 정치와 권력과 명예와 학문과 종교까지 머리를 조아리게 되었습니다.

재물 자체는 나쁘다거나 선하다고 할 수 없는 가치중립적인 것입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물이 많아 배부르게 되는 것 자체는 매우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땅과 성읍과 집과 과수원과 먹어 배부르게 할 풍족한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면서, 배부르게 된 이스라엘에게 그 배부르게 된 때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풍요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일깨워 주시는 말씀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도둑질을 해도 빵을 훔칩니다. 그러나 배부른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죽이고 그가 가진 것을 빼앗습니다. 죄는 가난한 사람이 지은 죄나 부자가 지은 죄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가난한 사람은 지은 죄 때문에 더 가난하게 되고, 부자는 지은 죄로 인하여 더 부자가 됩니다. 부자가 되어 위험한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세상에서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부자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 해 준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돈 많고 배부르고 건강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가능성은 정말 희박합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고프고 몸이 병들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신자도 배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가능성이 높고, 배고프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돈이 많으면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 가난하고 힘들 때 조심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부하고 배부를 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문제도 한국의 문제도 교회의 문제도 배부른 것입니다. 가난한 교회는 싸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돈 많은 교회는 안 싸우는 교회가 거의 없습니다. 싸우는 교회들의 공통된 특징은 돈이나 재물이 많은 것입니다. 재물이 많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높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염려입니다. 하나님께서 염려하신 일은 반드시 인간에게 일어납니다.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신 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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