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심, 모든 범죄의 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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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1-10-0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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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 경제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이 세 단계나 낮아졌습니다. 그 여파로 세계의 주식 값이 폭락하였고 한국에서는 그 충격과 절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또한 저축은행 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저축은행 비리는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결과만으로도 수조 원 대 불법 대출과 정관계 로비 혐의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난한 서민들이 피 땀 흘려 모은 돈을 노후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이자가 높다고 생각하여 저축은행에 맡겼는데 은행이 서민들의 믿음을 배신하였습니다.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술집 등에 불법으로 대출을 해 주어서 받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해택을 누리는 은행 간부들이 술집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고 불법으로 대출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술집 같은 유흥업소에서 받을 수 있는 대가를 탐냈다는 것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생계를 위한 범죄가 아니고 유흥을 즐기기 위해 서민의 돈을 그렇게도 무책임하게 불법으로 대출해주었습니다.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잠언 30장8-9절에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저축은행의 불법 대출 관계자들은 부하여 하나님이 없다는 자들도 아니고, 배고파서 도둑질 한 경우도 아닙니다. 그저 무책임한 자들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의 순간의 쾌락을 위해 남의 돈을 불법으로 대출을 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자기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틀러의 만행으로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히틀러 밑에서 악역을 맡았던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 때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습니다. 판사가 증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이히만이 맞습니까?”고개를 들고 아이히만의 얼굴을 쳐다본 증인은 그만 졸도를 하였습니다. 한 참을 지나 정신을 차린 증인에게 재판관이 “미안합니다. 아이히만의 얼굴을 보고 악몽 같은 과거를 떠올리게 해서”라고 하자, 증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놀라 기절을 한 것은 아이히만이 악마 같아서가 아니라 아이히만의 얼굴이 너무 착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착한 얼굴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직한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놀랐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악한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 악한 생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도 악을 행합니다. 김근태씨를 고문했던 사람들은 고문을 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동료들과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딸의 결혼 비용을 걱정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단말마적인 비명을 질러대는데도 고문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고문 자체만큼이나 참기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배불러서도 아니고 배고파서도 아니고 그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범죄가 다반사로 저질러지는 사회에서는 죄를 죄로 의식하지 못하고 무서운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속이고 거짓말 하고 도둑질 하는 것이 삶의 일상적인 패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타락한 인간관에서 볼 때 거의 모든 범죄는 탐심에 이끌러 죄를 짓습니다. 부자라고 탐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탐심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탐심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지배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사람이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기 쉽고 가난하면 도둑질 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전제 하에,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이 가난하면 도둑질 하게 될 위험이 있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위험이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신앙인에게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여 누구나 바울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재산을 쌓아 놓고도 탐욕에 눈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계해야 일입니다. 아합은 왕이면서도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 그를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였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포악한 왕이었으니까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도 왕의 신분으로 신하의 아내를 빼앗고 신하를 죽였습니다. 다윗의 그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내가...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cf.삼하 12:7,8)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부족한 것도 탐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은 온갖 것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남의 것을 탐내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많이 가진 자가 하나 밖에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을 탐내고 죽이고 빼앗는 것은 아합 같이 악한 왕이나 다윗 같은 성군이 다 같이 저지르는 죄임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탐심은 모든 죄의 온상입니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거짓말이나 모든 죄와 악은 탐심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인간 범죄의 단계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피조물을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는 우상 숭배에서 출발한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에 결국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여 비정상적인 성 행위로 음란의 죄를 짓게 되고, 나아가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비방, 능욕, 교만, 자랑, 불효, 배약, 무정, 무자비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죄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된 데서 기인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하였으니 ‘탐심’은 모든 범죄의 온상인 셈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두 아들이 어느 날 심하게 싸웠습니다. 싸우는 소리에 이웃 사람이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링컨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웃집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라니요?" 라고 하자 "예,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호두과자 세 개를 주었더니 두 아들이 서로 자기가 두 개를 먹겠다고 하며 저렇게 싸웁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과 집단 간의 경쟁과 국가 간의 전쟁과 교회의 분쟁도 탐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과 명예 때문에 싸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탐심 때문에 싸웁니다.
어떤 형제가 유산 문제로 분쟁하다가 동생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시면서 탐심에 사로 잡혀 사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 주시며 탐심에 대한 경계를 삼게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귀한 생명과 몸을 주셨음을 믿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탐심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의 길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딤전 6:8 -
가난한 서민들이 피 땀 흘려 모은 돈을 노후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이자가 높다고 생각하여 저축은행에 맡겼는데 은행이 서민들의 믿음을 배신하였습니다.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술집 등에 불법으로 대출을 해 주어서 받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해택을 누리는 은행 간부들이 술집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고 불법으로 대출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술집 같은 유흥업소에서 받을 수 있는 대가를 탐냈다는 것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생계를 위한 범죄가 아니고 유흥을 즐기기 위해 서민의 돈을 그렇게도 무책임하게 불법으로 대출해주었습니다.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잠언 30장8-9절에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저축은행의 불법 대출 관계자들은 부하여 하나님이 없다는 자들도 아니고, 배고파서 도둑질 한 경우도 아닙니다. 그저 무책임한 자들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기의 순간의 쾌락을 위해 남의 돈을 불법으로 대출을 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자기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틀러의 만행으로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히틀러 밑에서 악역을 맡았던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 때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습니다. 판사가 증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이히만이 맞습니까?”고개를 들고 아이히만의 얼굴을 쳐다본 증인은 그만 졸도를 하였습니다. 한 참을 지나 정신을 차린 증인에게 재판관이 “미안합니다. 아이히만의 얼굴을 보고 악몽 같은 과거를 떠올리게 해서”라고 하자, 증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놀라 기절을 한 것은 아이히만이 악마 같아서가 아니라 아이히만의 얼굴이 너무 착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착한 얼굴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직한 만행을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놀랐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악한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 악한 생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도 악을 행합니다. 김근태씨를 고문했던 사람들은 고문을 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동료들과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고, 딸의 결혼 비용을 걱정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단말마적인 비명을 질러대는데도 고문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고문 자체만큼이나 참기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배불러서도 아니고 배고파서도 아니고 그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범죄가 다반사로 저질러지는 사회에서는 죄를 죄로 의식하지 못하고 무서운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속이고 거짓말 하고 도둑질 하는 것이 삶의 일상적인 패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타락한 인간관에서 볼 때 거의 모든 범죄는 탐심에 이끌러 죄를 짓습니다. 부자라고 탐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탐심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탐심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많이 배운 사람이나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지배를 합니다. 잠언 기자는 사람이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기 쉽고 가난하면 도둑질 하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전제 하에,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람이 가난하면 도둑질 하게 될 위험이 있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위험이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신앙인에게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의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여 누구나 바울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며, 재산을 쌓아 놓고도 탐욕에 눈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계해야 일입니다. 아합은 왕이면서도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 그를 죽이고 그 포도원을 차지하였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포악한 왕이었으니까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도 왕의 신분으로 신하의 아내를 빼앗고 신하를 죽였습니다. 다윗의 그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내가...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cf.삼하 12:7,8)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부족한 것도 탐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은 온갖 것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남의 것을 탐내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많이 가진 자가 하나 밖에 가지지 못한 자의 것을 탐내고 죽이고 빼앗는 것은 아합 같이 악한 왕이나 다윗 같은 성군이 다 같이 저지르는 죄임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탐심은 모든 죄의 온상입니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거짓말이나 모든 죄와 악은 탐심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인간 범죄의 단계를 설명합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피조물을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는 우상 숭배에서 출발한다고 하였습니다. 우상은 자신을 위하는 것이기에 결국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여 비정상적인 성 행위로 음란의 죄를 짓게 되고, 나아가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비방, 능욕, 교만, 자랑, 불효, 배약, 무정, 무자비 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죄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게 된 데서 기인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하였으니 ‘탐심’은 모든 범죄의 온상인 셈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두 아들이 어느 날 심하게 싸웠습니다. 싸우는 소리에 이웃 사람이 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링컨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웃집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라니요?" 라고 하자 "예,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호두과자 세 개를 주었더니 두 아들이 서로 자기가 두 개를 먹겠다고 하며 저렇게 싸웁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과 집단 간의 경쟁과 국가 간의 전쟁과 교회의 분쟁도 탐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과 명예 때문에 싸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탐심 때문에 싸웁니다.
어떤 형제가 유산 문제로 분쟁하다가 동생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시면서 탐심에 사로 잡혀 사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들려 주시며 탐심에 대한 경계를 삼게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귀한 생명과 몸을 주셨음을 믿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탐심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의 길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딤전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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