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축복하여주옵소서!”는 하나님을 우상의 수준으로 비하하는 하는
페이지 정보
황상하ㆍ2012-07-10관련링크
본문
“축복”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위하여 행복하기를 빎, 또는 비는 일”을 뜻합니다. 영어에서 주로 bless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라크 ךרב나 헬라어 율로기아 εύλογία는 번역하기가 그리 쉬운 단어가 아닙니다. 하지만“축복”의 뜻으로 사용될 때는 분명히 사람이 하나님께 다른 사람의 복을 비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지 누구를 위해 다른 어떤 존재에게 복을 비는, 즉 축복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 기도부탁을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으며, 성경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심각한 무지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며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과 축복을 구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번역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축복은 사람이 하나님께 다른 사람의 복을 빌 때 사용하는 용어로,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bless) 이르되...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bless)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bless)”(민 6:22-27).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bless)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bless)”(창14:19).“너를 축복하는(bless)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bless)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bless) 것이니라.”(창27:29,33).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bless)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bless)”(시118:26).
비록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용어이지만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는 이들이 매우 사려 깊게 구분하여 번역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축복”이라고 번역한 곳이 있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바로 잡았습니다(민 23:20, 롬 15:29).
그런데 1960년대 이후 기독교 영문서적이 한국에 쏟아져 들어가면서 성경과 신학적 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bless”를 모두 “축복”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고, 게다가 1970년대 이후 기복신앙의 확산으로 “축복”이라는 용어 사용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성경을 번역하는 이들이 그렇게도 사려 깊게 살펴서 구별하여 번역한 “복”과 “축복”을 일반신자는 물론 목회자들까지 구별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바라크나 헬라어의 율로기아나 영어의 블레스는 문맥에 따라서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다.”(confer a favor. cf. 창1:22, 신23:20, 대상13:14, 시29:11, 학2:19), “하나님께 복을 빈다.”(invoke a blessing. cf. 창14:19, 민6:23, 신33:1, 수14:13, 느11:2), “하나님을 찬양한다.”(ascribe praise. cf. 신8:10, 수22:33, 대상29:10, 시16:7, 시103:1)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우리 말 성경의 번역자들은 문맥을 잘 살펴서 이 용어에 있어서는 거의 오역 없이 잘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용어 하나라도 그 뜻을 바르게 번역하여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을 담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용어 하나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이해하게도 되고 또한 하나님을 우상화하게도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우리를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용어 자체가 복을 빈다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 즉 복을 빈다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다는 전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희랍 신화에서는 신들에게도 계급이 있기 때문에 낮은 신이 높은 신에게 비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것은 샤머니즘과 민간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계시하고, 하나님 외의 일체 다른 신이 없으며, 사람들이 신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우상이라고 명백하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축복하는 기도를 하신 것은 인성을 지니셨기 때문이고 그 외의 성경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축복과 복이 원어에서는 같지만 문맥에 따라 달리 번역한 것은 그만큼 단어 하나에도 성경 전체의 뜻을 담아 번역하므로 계시의 참 뜻을 바르게 드러내려 함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계명 중 제1계명에서 제 3계명까지가 우상과 하나님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을 금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긴 죄뿐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화 한 죄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일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아론과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라고 하였습니다. 즉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우상화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대로 형상화 했고, 인간의 의도대로 만들어 우상화 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우상숭배의 죄와 그에 따른 온갖 죄를 다 지적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우상숭배란 하나님을 우상화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3).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형상화 하였고, 우상화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은 우상을 숭배할 가능성이 높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우상화 할 위험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우상화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신이시고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뿐 아니라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행복도 짓고 기쁨도 지으셨으며 원하시는 자들에게 그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어 가시기도 하십니다. 모든 생명과 주권과 영광도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은 임의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한 거두어가십니다. 천지간에 하나님보다 높은 존재는 없고,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것에 충족하시기에 누구와 무엇을 의논하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의 필요와 행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빌거나 기도하거나 간청하실 필요도 이유도 없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그것들의 주인이시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하나님께 합당한 예를 갖추어 언행심사를 조심하여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러한 분께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은 가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축복”이라는 용어를 “복”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차한 변명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창조주 하나님, 만물의 주권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 종교다원주의나 세속철학과 사상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이때에 불신자들이 들으면 하나님을 “축복, 복을 비는 신”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표현을 하나님께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가 실족할 염려가 있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우상의 수준으로 비하하는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식의 표현은 “하나님, 복을 주시옵소서!”로 바꾸어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창 12:3 -
성경은 복과 축복을 구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번역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축복은 사람이 하나님께 다른 사람의 복을 빌 때 사용하는 용어로,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bless) 이르되...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bless)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bless)”(민 6:22-27).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bless)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bless)”(창14:19).“너를 축복하는(bless)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bless)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bless) 것이니라.”(창27:29,33).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bless)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bless)”(시118:26).
비록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용어이지만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는 이들이 매우 사려 깊게 구분하여 번역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을 “축복”이라고 번역한 곳이 있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바로 잡았습니다(민 23:20, 롬 15:29).
그런데 1960년대 이후 기독교 영문서적이 한국에 쏟아져 들어가면서 성경과 신학적 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bless”를 모두 “축복”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고, 게다가 1970년대 이후 기복신앙의 확산으로 “축복”이라는 용어 사용이 일반화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성경을 번역하는 이들이 그렇게도 사려 깊게 살펴서 구별하여 번역한 “복”과 “축복”을 일반신자는 물론 목회자들까지 구별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바라크나 헬라어의 율로기아나 영어의 블레스는 문맥에 따라서 “하나님이 복을 내리신다.”(confer a favor. cf. 창1:22, 신23:20, 대상13:14, 시29:11, 학2:19), “하나님께 복을 빈다.”(invoke a blessing. cf. 창14:19, 민6:23, 신33:1, 수14:13, 느11:2), “하나님을 찬양한다.”(ascribe praise. cf. 신8:10, 수22:33, 대상29:10, 시16:7, 시103:1)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우리 말 성경의 번역자들은 문맥을 잘 살펴서 이 용어에 있어서는 거의 오역 없이 잘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용어 하나라도 그 뜻을 바르게 번역하여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에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을 담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용어 하나를 잘못 사용하여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이해하게도 되고 또한 하나님을 우상화하게도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우리를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축복”이라는 용어 자체가 복을 빈다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 즉 복을 빈다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존재가 있다는 전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희랍 신화에서는 신들에게도 계급이 있기 때문에 낮은 신이 높은 신에게 비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것은 샤머니즘과 민간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계시하고, 하나님 외의 일체 다른 신이 없으며, 사람들이 신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우상이라고 명백하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축복하는 기도를 하신 것은 인성을 지니셨기 때문이고 그 외의 성경에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축복과 복이 원어에서는 같지만 문맥에 따라 달리 번역한 것은 그만큼 단어 하나에도 성경 전체의 뜻을 담아 번역하므로 계시의 참 뜻을 바르게 드러내려 함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계명 중 제1계명에서 제 3계명까지가 우상과 하나님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을 금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상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어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약 성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긴 죄뿐 아니라 하나님을 우상화 한 죄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일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아론과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라고 하였습니다. 즉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우상화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생각대로 형상화 했고, 인간의 의도대로 만들어 우상화 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우상숭배의 죄와 그에 따른 온갖 죄를 다 지적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우상숭배란 하나님을 우상화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1:23).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형상화 하였고, 우상화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은 우상을 숭배할 가능성이 높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우상화 할 위험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우상화 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나님을 우상화 하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신이시고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뿐 아니라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모든 것도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행복도 짓고 기쁨도 지으셨으며 원하시는 자들에게 그것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어 가시기도 하십니다. 모든 생명과 주권과 영광도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은 임의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한 거두어가십니다. 천지간에 하나님보다 높은 존재는 없고,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것에 충족하시기에 누구와 무엇을 의논하실 필요도 없으십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의 필요와 행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빌거나 기도하거나 간청하실 필요도 이유도 없으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그것들의 주인이시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하나님께 합당한 예를 갖추어 언행심사를 조심하여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러한 분께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은 가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축복”이라는 용어를 “복”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차한 변명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창조주 하나님, 만물의 주권자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 종교다원주의나 세속철학과 사상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이때에 불신자들이 들으면 하나님을 “축복, 복을 비는 신”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표현을 하나님께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형제가 실족할 염려가 있다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우상의 수준으로 비하하는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식의 표현은 “하나님, 복을 주시옵소서!”로 바꾸어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창 12:3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