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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 하지 말라’의 적극적인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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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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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간 공동체에 끼치는 치명적인 악을 금하셨는데, 첫째는 살인이고 둘째는 간음이며 셋째는 도둑질입니다. 도둑질이 살인이나 간음보다는 나쁘지 않지만 도둑질 대상에 사람의 생명이나 남의 여자의 정조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도둑질은 결코 단순한 죄가 아닙니다. 강도는 도둑질하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죽이기까지 합니다. 도둑이나 강도가 물건을 훔치러 갔다가 여자를 강간하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물질뿐 아니라 남의 순결을 훔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그 외에 남의 명예와 신용을 도용하는 것도 도둑질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고 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 했다고 하여 하나님께 책망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는 계명에 대하여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길 것입니다. 일단 “나는 도둑질 안 했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8계명도 인간이 인간에게 하지 말아야 할 계명에 속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의 도리 중에 하나님께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나 홀대하는 것이 곧 당신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이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따라 주어졌으니까 분명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있으나 각 계명들이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따로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일, 제이 계명이 우상에 대한 금령이고 열 번째 계명이 탐심에 대한 계명인데, 바울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제1계명과 가장 덜 중요한 마지막 10계명이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인을 안 하고 간음을 안 하고 도둑질만 조금 했다고 해서 그 죄가 결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도둑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가나브 בנג인데 그 뜻은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를 뜻합니다.

도둑질은 그 수법이 남의 집에 들어가 돈이나 물건을 직접 훔치는 우직(?)한 방법에서부터 고도의 지능적이고 합법을 빙자한 방법까지 너무나 다양합니다. 그러나 도둑질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배고파서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입니다. 인기삼일 무계불출(人飢三日 無計不出)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흘 굶어 담 안 넘을 놈 없다는 말입니다. “열흘 굶어 군자 없다.”는 말과도 같은 뜻입니다. 사람이 당하는 서러움 중에 배고픈 서러움보다 더 한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라고 했는데, 교양과 체면과 염치와 예의도 배고픔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배고픈 것을 견디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얼마나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과일을 따 먹는 것을 허용한 것도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 때에 곡식이나 과일을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조금 남겨 두라고 하신 후에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가난해도 도둑질 하지 않아도 될 환경을 만들어 주시면서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추수 때에 곡식이나 과일을 조금 남겨 두는 것은 강제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하여 도둑질 한 것은 정상 참작의 대상은 되지만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는 가난한 자가 도둑질 안 해도 이삭을 줍거나 추수한 과수원에서 남겨둔 과일을 따먹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의 자존심을 배려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이삭을 줍는 것은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니니까 죄책을 느낄 필요도 없고, 구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을 할 때는 하나님처럼 가난한 자의 자존심을 배려해야 합니다. 구약의 안식년이나 휴경 제도도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휴경 제도가 다른 나라들에도 있지만 그 목적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로 그렇게 하는 나라는 이스라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가난하거나 배고파서 도둑질 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잠언 기자는 가난하여 도둑질하게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였는데, 그의 기도에는 가난하여 도둑질해도 그것이 죄라는 의식이 분명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가난한 자를 배려하여 가난하여 도둑질한 자에게 무자비하게 법을 적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조치는 우리가 사는 사회 안에서 정말 배고파서 도둑질 하는 자가 생긴다면 모든 사람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Laguardia 공항은 뉴욕 시장이었던 Laguardia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 하루는 가게에서 빵을 도둑질한 한 노인이 그의 앞에 잡혀왔습니다. 얼른 보기에도 노인은 매우 지쳐 있었습니다. 판사가 왜 남의 빵을 훔쳤느냐고 묻자‘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 노인에게 벌금 10불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을 헤매고 있었는데, 내가 그 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자기의 모자를 재판부 서기에게 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재판정에 계신 분들도 나처럼 너무 잘 먹은 데 대한 벌금을 내시고 싶으면 이 모자에 넣기를 바랍니다.”그 노인은 그 날 모아진 돈 47불을 손에 넣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정을 나섰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미국의 감옥은 죄수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덴마크에서는 형무소에 흰 깃발이 꽂혀 있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형무소에 흰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은 그 안에 죄수가 한 사람도 없다는 뜻입니다. 미국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탐욕으로 하는 도둑질입니다. 아직도 배고파서 도둑질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도둑질은 욕심 때문에 하게 됩니다. 배고파서 하는 도둑질은 지능적이지 못합니다.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욕심으로 하는 도둑질은 아주 지능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도둑질의 방법과 종류도 다양합니다. 직접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경우가 있고, 속여서 가로 채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폭리를 취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가격 담합을 하는 것도 소비자의 돈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탈세를 하는 것도 도둑질이고, 빚을 갚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주가를 조작하는 것도 도둑질이고, 법을 악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금융사기는 엄청남 규모의 도둑질입니다. 재벌들이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당이득을 취하는 경우에는 정치인과 재벌 모두가 도둑질을 하는 것입니다. 고위 정치인들이 자기들의 비즈니스에 유리한 정부 정책을 펴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뇌물을 받고 특정 기업이나 단체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어 주는 것도 도둑질이고, 약자에게 불리한 법을 만드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강간도 도둑질이고, 명예와 권력과 학문을 사칭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욕심 때문에 하는 지능적인 도둑질은 그 종류와 수를 다 셀 수도 없을 것입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이 도둑질인 줄 모르고 하는 도둑질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도둑질을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이라고 정의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할 때는 합법적인 방법으로라도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면서 불로소득을 취하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국가와 집단이 하는 도둑질도 있습니다. 가끔 이런 문제가 국제 재판소에서 다뤄지기도 하지만 국가의 도둑질은 국민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기업들도 다른 사람이 개발한 기술이나 정보를 도둑질 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국가나 집단의 도둑질은 그 나라와 집단을 위한 충성으로 평가 받습니다. 교회가 교인을 도둑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름이나 투기나 복권에 집착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물론 이런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오락으로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행을 바라는 사행성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의 대표적인 것은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십일조는 농사를 짓거나 사업을 하거나 목축을 하거나 기술이나 노동이나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얻은 이익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받치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고 십 분의 구는 내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표가 십일조입니다. 모든 것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이스라엘에서 십일조를 안 하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책망할 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였습니다. 힘과 술수로는 하나님의 것을 훔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의 것을 훔칠 수도 있고 안 훔칠 수도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못 훔쳐가도록 지키시려면 얼마든지 지키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강제 사항이 아닙니다. 선택사항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그런 것을 분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의 죄는 십일조 안 드린 죄만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안 드렸으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고 그 결과 십의 구를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말라기는 온 백성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을 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불법과 불의를 행한다고 질타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구약 시대처럼 율법의 명령에 따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명하신 하나님의 뜻은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나 예배나 구체적인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여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이나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구제나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주위에서 배가 고파 도둑질 하는 자가 없도록 해야 하고, 자신을 다스려 욕심에 이끌려 부당한 이익을 탐내지 말고 있는 자롤 족한 줄 알아야 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엡 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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