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과 우선회하는 세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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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16-12-0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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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역사는 불완전하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역사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말은 완성이란 결코 역사적 과정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역사의 끝에 완성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에 대해 가장 오해한 사람들이 소위 한 때 3M이라고 불렸던 마르크스, 마르쿠제, 마우쩌뚱이고 그들을 추종하는 좌파들입니다. 사상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는 훨씬 더 오래되었습니다. 르네상스와 자연과학의 발전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이야기 한다면 소위 좌 편향 사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좌파 사상의 순기능을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환경운동이나 인권 운동이나 반전 운동 같은 것은 좌파들에 의해 시작되고 주도되고 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운동이 일어나게 된 요인에는 봉건적이고 관료적이고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종교와 정치와 경제 구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반발은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종교와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소수의 사람들이 불의하게 이득을 취하고 다수의 국민들은 고통을 감수하며 지내는 것이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 반발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인간 불행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간 불행의 주범으로 하나님을 지목하는 이들은 하나님과 기독교를 모독하는 욕설과 발언들을 스스럼없이 쏟아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문예부흥이나 자연과학이나 프랑스혁명을 주도했던 사상이 반 기독교적이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해왔던 것입니다. 칼빈주의 신학자요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가 네덜란드 수상이 되었을 때 정당 이름을 ‘반혁명당’이라고 지었던 것은 프랑스 혁명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반기독교 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의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적 상황은 우파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의 트럼프의 당선이 그렇고, 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우파들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영국이 EU를 탈퇴하였는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념적으로 설명하면 유럽 좌파로부터 탈퇴를 한 것입니다. 소위 브렉시트라고 하는데 이는 영국(Britain)이라는 단어와 탈퇴(Exit)라는 말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합니다. 이 사건은 세계 정치가 우선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여러 사건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에 우파인 테레사 메이가 새로운 총리가 되었는데, 제2의 대처라고 불립니다. 프랑스에서는 내년 4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제1야당 공화당 후보로 '대처리즘'을 신봉하는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선출됐습니다. 그는 동성애와 낙태에 반대하며, 이민자들이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본도 강력한 우파인 아베가 정치적인 지반을 단단하게 다졌습니다. 중국의 시진핑도 나름 우파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두에 사람들은 이 예상하지 못한 세계 정치의 우파로의 선회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동안 세계 정치는 좌파가 지배해왔습니다. 심지어 우파나 보수 지도자들까지도 좌파적 정책을 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을 정도였습니다. 인권, 경제, 정의, 환경보호 같은 운동은 우파 보수 지도자들까지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민주화에 이어 낙태와 동성애 종교다원주의 같은 것까지도 좌파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이것은 아닌데...’라고 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지내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좌파 주도적 운동의 시발점은 소위 68혁명입니다.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참여에 대한 불만으로 다섯 명의 청년들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지사를 습격하였습니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프랑스 전역의 대학생 시위와 1,000만 노동자의 파업으로 확산이 되어 반체제, 반문화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68혁명은 엄밀히 말하면 파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이 저항과 혁명의 불씨는 베트남전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베트남인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전 세계 반전 평화주의자들의 심금을 울린 것입니다. 68년 1월 테트 대공세(Tet Offensive)로 명명된 대대적인 베트남인들의 공격은 전 세계 학생과 시민들의 반전 운동과 해방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고, 이는 68혁명이 사회 문화혁명으로 국지적인 차원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그 후 68혁명 세력들이 요구하고 주장한 내용들은 실로 파격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들은 생활 속 민주주의와 일체의 권위를 거부하는 평등주의를 제창하였습니다. 서구는 대체로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한 나라들로 이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적 생활화의 요구는 일면 당연한 것으로 용납되었으나 혁명을 주도한 신 좌파들이 전통적 사회주의를 고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억압적 권위주의에 대해서 단호히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68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후기 자본주의체제를 파시즘으로 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운동은 가정으로까지 침투하여 가부장 제도가 타매(唾罵)의 대상이 되었고 여성주의자들의 저항이 확대되었습니다. 집단과 조직사회 속의 관료주의는 여지없이 비판을 받았고 교사, 교수, 목사, 기업주, 사장, 심지어 부모의 권위가 거부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람 사는 세상, 즉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과 소비 체제의 물신주의, 물질숭배, 인간소외에 저항하였습니다. 후기 자본주의는 과거처럼 강압이나 착취를 노골적인 방법이 아닌 여론조작과 정부와 결탁하여 합법적인 방법으로 하였지만 혁명 세력들은 그것을 간파하여 폭로하며 저항하였습니다. 그들의 구호는 점점 도를 넘어 "행동하라", "열정을 해방하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를 금지하라",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 한다", "굶주릴 지라도 권태로운 것은 못 참는다.", "선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투쟁은 계속된다." 라고 외쳤습니다. 68혁명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것을 목도하고 인간다운 세상의 건설을 위해 물질주의로 인하여 사람이 물질에 종속되는 삶을 거부하는 몸부림으로 출발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도를 넘는 요구를 과격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장 위험한 거짓입니다. 이 거짓 확신으로 인하여 수많은 대학생들이 시위에 참여 했고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이 거짓 확신 때문에 시위자들은 어떤 파괴와 희생이라도 감수하려 하기 때문에 시위는 극단적인 폭력 양상을 띠게 되어 폭력적인 진압을 부르게 되고 결국 아까운 생명까지 잃게 됩니다. 68혁명의 사상적 배경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철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적인 시각에 의하면, 사회는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충격으로 사회가 항상 진보하지만은 않는다는 비판이론의 시각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68혁명은 점차 과격한 양상으로 변질되어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68혁명을 지지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마르쿠제까지도 점점 과격하게 변하는 68혁명의 움직임을 보고 등을 돌렸습니다. 그가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강단에 섰다가 조롱을 당하고 끌려 내려가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판이론의 뿌리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또한 '학생들의 폭력적인 시위는 마조히즘(masochism)이며, 학생운동은 좌파 파시즘에 불과하다'라고 하였다가 운동권의 극렬한 비난을 받고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에서 슈타른베르크(Starnberg)로 교직을 옮겨야 했습니다.
어떤 시위라도 오래 지속되면 대중이 무질서와 정상 생활의 어려움을 받게 되어 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이는 곧 바로 우파 등장의 빌미로 작용하게 됩니다. 지금 세계는 바로 이 지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좌파의 생명력은 우파가 제공하고 우파의 생명력은 좌파가 제공하는 셈입니다.
베트남 전을 배경으로 출발한 68혁명은 파리를 거쳐 미국, 독일, 체코, 스페인, 일본 등 세계의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게 했습니다. 이런 운동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 부흥으로 중산층이 늘어나고 중산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이 급증하면서 대학생들이 열광적으로 추종 했던 마르크스와 마르쿠제와 마우쩌뚱이 있습니다. 그 때 거리에서 데모를 하던 대학생들이 지금은 60-70대의 기성세대가 되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 정치권에서는 좌 편향 사상이나 정책이 노골적으로 거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은 역사의 어느 길목쯤에 해당될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역사는 언제나 보수와 진보가 주도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보수가 주도하다가 역부족 상황에 직면하면 진보가 주도하고, 진보가 역부족 상황에 직면하면 보수로 선회하는 것은 역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보수나 진보 어느 쪽이라도 역사의 전면에 나설 때는 나름 희망적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곧 많은 문제를 발생 시키는 것은 인간의 한계성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파, 즉 보수는 사상과 가치의 토대를 하나님께 두고, 좌파 즉 진보는 사상과 가치의 토대를 인간 이성에 둡니다. 보수 우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데서 비롯되고 진보 좌파들의 문제는 아예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보수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대표적인 것은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 사냥이나 노예 제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현실에서 다수의 기독교인들까지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지적하신 말씀에 현실 교회를 비추어 보면 교회 성장과 선교와 치유와 구제사업과 화려한 예배까지도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속하는 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나 교회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 모독을 받는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과 지금의 정치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에 보편 가치를 존중하는 것도 많지만 그러한 가치들은 결국 절대를 부정하는 것에 토대한 것들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나 사회과학적으로 아무리 그럴듯해도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됩니다. 우파 지도자들까지도 그들의 논리의 정당성(?)에 밀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여 어느 정도는 좌파 성향에 편승해야 생존이 가능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좌파에 의해 주도된 68혁명의 영향으로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고 독일은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런 가치들과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그들의 사상의 토대를 마치 조화롭게 설명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논리적 허구를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은 바른 신학 밖에 없습니다. 68혁명이 그랬듯이 역사상 거의 모든 혁명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적 토대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러한 혁명이 가능하도록 숙주 역할을 한 것이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왜곡한 우파 보수라는 점 또한 부끄러움과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좌절하지 말고 겸손한 개혁의 의지로 분연히 일어서야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이와 같은 역사에 대해 가장 오해한 사람들이 소위 한 때 3M이라고 불렸던 마르크스, 마르쿠제, 마우쩌뚱이고 그들을 추종하는 좌파들입니다. 사상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는 훨씬 더 오래되었습니다. 르네상스와 자연과학의 발전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이야기 한다면 소위 좌 편향 사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좌파 사상의 순기능을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환경운동이나 인권 운동이나 반전 운동 같은 것은 좌파들에 의해 시작되고 주도되고 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운동이 일어나게 된 요인에는 봉건적이고 관료적이고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종교와 정치와 경제 구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반발은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종교와 정치와 경제에 있어서 소수의 사람들이 불의하게 이득을 취하고 다수의 국민들은 고통을 감수하며 지내는 것이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 반발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인간 불행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간 불행의 주범으로 하나님을 지목하는 이들은 하나님과 기독교를 모독하는 욕설과 발언들을 스스럼없이 쏟아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문예부흥이나 자연과학이나 프랑스혁명을 주도했던 사상이 반 기독교적이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해왔던 것입니다. 칼빈주의 신학자요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가 네덜란드 수상이 되었을 때 정당 이름을 ‘반혁명당’이라고 지었던 것은 프랑스 혁명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반기독교 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의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적 상황은 우파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의 트럼프의 당선이 그렇고, 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우파들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영국이 EU를 탈퇴하였는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념적으로 설명하면 유럽 좌파로부터 탈퇴를 한 것입니다. 소위 브렉시트라고 하는데 이는 영국(Britain)이라는 단어와 탈퇴(Exit)라는 말의 합성어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합니다. 이 사건은 세계 정치가 우선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여러 사건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에 우파인 테레사 메이가 새로운 총리가 되었는데, 제2의 대처라고 불립니다. 프랑스에서는 내년 4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제1야당 공화당 후보로 '대처리즘'을 신봉하는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선출됐습니다. 그는 동성애와 낙태에 반대하며, 이민자들이 프랑스 문화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본도 강력한 우파인 아베가 정치적인 지반을 단단하게 다졌습니다. 중국의 시진핑도 나름 우파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두에 사람들은 이 예상하지 못한 세계 정치의 우파로의 선회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동안 세계 정치는 좌파가 지배해왔습니다. 심지어 우파나 보수 지도자들까지도 좌파적 정책을 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을 정도였습니다. 인권, 경제, 정의, 환경보호 같은 운동은 우파 보수 지도자들까지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민주화에 이어 낙태와 동성애 종교다원주의 같은 것까지도 좌파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이것은 아닌데...’라고 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지내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좌파 주도적 운동의 시발점은 소위 68혁명입니다.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의 베트남 전쟁참여에 대한 불만으로 다섯 명의 청년들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파리지사를 습격하였습니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하여 프랑스 전역의 대학생 시위와 1,000만 노동자의 파업으로 확산이 되어 반체제, 반문화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68혁명은 엄밀히 말하면 파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이 저항과 혁명의 불씨는 베트남전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베트남인들의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 전 세계 반전 평화주의자들의 심금을 울린 것입니다. 68년 1월 테트 대공세(Tet Offensive)로 명명된 대대적인 베트남인들의 공격은 전 세계 학생과 시민들의 반전 운동과 해방운동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고, 이는 68혁명이 사회 문화혁명으로 국지적인 차원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그 후 68혁명 세력들이 요구하고 주장한 내용들은 실로 파격적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들은 생활 속 민주주의와 일체의 권위를 거부하는 평등주의를 제창하였습니다. 서구는 대체로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한 나라들로 이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적 생활화의 요구는 일면 당연한 것으로 용납되었으나 혁명을 주도한 신 좌파들이 전통적 사회주의를 고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억압적 권위주의에 대해서 단호히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68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후기 자본주의체제를 파시즘으로 규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운동은 가정으로까지 침투하여 가부장 제도가 타매(唾罵)의 대상이 되었고 여성주의자들의 저항이 확대되었습니다. 집단과 조직사회 속의 관료주의는 여지없이 비판을 받았고 교사, 교수, 목사, 기업주, 사장, 심지어 부모의 권위가 거부되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람 사는 세상, 즉 인간다운 삶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과 소비 체제의 물신주의, 물질숭배, 인간소외에 저항하였습니다. 후기 자본주의는 과거처럼 강압이나 착취를 노골적인 방법이 아닌 여론조작과 정부와 결탁하여 합법적인 방법으로 하였지만 혁명 세력들은 그것을 간파하여 폭로하며 저항하였습니다. 그들의 구호는 점점 도를 넘어 "행동하라", "열정을 해방하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를 금지하라", "파괴는 창조의 열정이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 한다", "굶주릴 지라도 권태로운 것은 못 참는다.", "선거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투쟁은 계속된다." 라고 외쳤습니다. 68혁명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것을 목도하고 인간다운 세상의 건설을 위해 물질주의로 인하여 사람이 물질에 종속되는 삶을 거부하는 몸부림으로 출발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도를 넘는 요구를 과격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의 가장 큰 실수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가장 위험한 거짓입니다. 이 거짓 확신으로 인하여 수많은 대학생들이 시위에 참여 했고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이 거짓 확신 때문에 시위자들은 어떤 파괴와 희생이라도 감수하려 하기 때문에 시위는 극단적인 폭력 양상을 띠게 되어 폭력적인 진압을 부르게 되고 결국 아까운 생명까지 잃게 됩니다. 68혁명의 사상적 배경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철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적인 시각에 의하면, 사회는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충격으로 사회가 항상 진보하지만은 않는다는 비판이론의 시각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68혁명은 점차 과격한 양상으로 변질되어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68혁명을 지지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마르쿠제까지도 점점 과격하게 변하는 68혁명의 움직임을 보고 등을 돌렸습니다. 그가 학생들을 진정시키려 강단에 섰다가 조롱을 당하고 끌려 내려가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판이론의 뿌리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또한 '학생들의 폭력적인 시위는 마조히즘(masochism)이며, 학생운동은 좌파 파시즘에 불과하다'라고 하였다가 운동권의 극렬한 비난을 받고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에서 슈타른베르크(Starnberg)로 교직을 옮겨야 했습니다.
어떤 시위라도 오래 지속되면 대중이 무질서와 정상 생활의 어려움을 받게 되어 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이는 곧 바로 우파 등장의 빌미로 작용하게 됩니다. 지금 세계는 바로 이 지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좌파의 생명력은 우파가 제공하고 우파의 생명력은 좌파가 제공하는 셈입니다.
베트남 전을 배경으로 출발한 68혁명은 파리를 거쳐 미국, 독일, 체코, 스페인, 일본 등 세계의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게 했습니다. 이런 운동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 부흥으로 중산층이 늘어나고 중산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이 급증하면서 대학생들이 열광적으로 추종 했던 마르크스와 마르쿠제와 마우쩌뚱이 있습니다. 그 때 거리에서 데모를 하던 대학생들이 지금은 60-70대의 기성세대가 되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 정치권에서는 좌 편향 사상이나 정책이 노골적으로 거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혼란은 역사의 어느 길목쯤에 해당될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역사는 언제나 보수와 진보가 주도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보수가 주도하다가 역부족 상황에 직면하면 진보가 주도하고, 진보가 역부족 상황에 직면하면 보수로 선회하는 것은 역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보수나 진보 어느 쪽이라도 역사의 전면에 나설 때는 나름 희망적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곧 많은 문제를 발생 시키는 것은 인간의 한계성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파, 즉 보수는 사상과 가치의 토대를 하나님께 두고, 좌파 즉 진보는 사상과 가치의 토대를 인간 이성에 둡니다. 보수 우파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데서 비롯되고 진보 좌파들의 문제는 아예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보수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대표적인 것은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 사냥이나 노예 제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현실에서 다수의 기독교인들까지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지적하신 말씀에 현실 교회를 비추어 보면 교회 성장과 선교와 치유와 구제사업과 화려한 예배까지도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계속하는 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4)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나 교회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 모독을 받는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과 지금의 정치 상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에 보편 가치를 존중하는 것도 많지만 그러한 가치들은 결국 절대를 부정하는 것에 토대한 것들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나 사회과학적으로 아무리 그럴듯해도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됩니다. 우파 지도자들까지도 그들의 논리의 정당성(?)에 밀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여 어느 정도는 좌파 성향에 편승해야 생존이 가능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좌파에 의해 주도된 68혁명의 영향으로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고 독일은 과거를 청산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런 가치들과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그들의 사상의 토대를 마치 조화롭게 설명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진보주의자들의 논리적 허구를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은 바른 신학 밖에 없습니다. 68혁명이 그랬듯이 역사상 거의 모든 혁명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상적 토대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러한 혁명이 가능하도록 숙주 역할을 한 것이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왜곡한 우파 보수라는 점 또한 부끄러움과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좌절하지 말고 겸손한 개혁의 의지로 분연히 일어서야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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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 68님의 댓글
Mai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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