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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9세 청년 여성의 신앙 생활로 우울증 극복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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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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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생활을 통한 우울증 치료 과정

간증자: 주소영(Alicia Joo) 선생, 뉴욕 한민교회 중등부 교사 및 영어예배 대학부 소그룹 인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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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1일 한민 교회 예배당에서 처음으로 2세가 영어로, 1세 및 2세와3세들에게 간증하는 "Praise-Testimony Night"행사의 간증자인 주소영의 간증 내용이 아래로 한글로 번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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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처음 간증을 하라고 부탁을 받았을 때는 매우 부담스러웠으며 강한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남의 간증을 듣는 데 익숙해 있었지 저 자신이 간증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도 못했으니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간증은 저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제불능 수준의 절망감과 고독감으로부터 저를 구해주신 하나님께, 증인으로서,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깨닫고 용기를 내었어요.
저의 삶의 대부분는 정신적 고립이나 은둔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오랫 동안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 하고 저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었어요. 저 자신이 그렇게 태어나지는 않은 것 같은 데 말이에요!!! 부모님께서 저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신 것 같지만, 저희들은 그 어린나이 때부터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지냈답니다. 결국, 그러한 불안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남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며, 친밀한 관계 형성은 커녕, 발전시키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2살어린 여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왔답니다. 부모님께서 세탁업을 시작하시면서, 7살과 5살의 저희 자매는 어려서부터 집안 일의 많은 부분을 맡겨 되었지요. 부모님들은 낮선 사람들을 두려워하셔서 누가 저희 자매를 돌보는 것을 피하셨습니다. 또, 저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부모님은 낮선 사람들을 항상 피할 것을 가르치셨고, 누가 문을 두드리면 대답도 못하게 하셨어요.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 저희 자매만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도록 하셨답니다.아직도, 저의 셔츠 속에 빨간 줄에 매달고 다녔던 열쇠가 기억이 납니다.혹시라도 어린 저희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알면, 저희들만이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까봐서 옷 속에 감추고 다닌 저희들만의 비밀이었지요!!!
아직도 저를 괴롭히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어린 동생을 혼자 두고 유치원과 학교를 다녔던 것이에요. 문을 잠그고 가기도 했는데, 동생은 혼자 집에서 저를 기다리곤 했지요. 그래서, 학교를 가지 못한 날들 여러번 되어요.
부모님께서 저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신 것 같지만, 저희들은 그 어린나이 때부터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지냈답니다. 결국, 그러한 불안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남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며, 친밀한 관계 형성은 커녕, 발전시키지 못하게 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저는 다른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시며, 또 포옹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참 부러워했어요. 저희 부모님도 그렇게 하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항상 간절했지요!!! 두 분은 항상 6시의 이른 새벽에 가게를 열기 위해서 집을 떠나셨어요. 그래서 저는 어린 동생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저 자신은 홀로 걸어 다녔어요. 다른 아이들과 방과 후에 노는 것은 엄두도 못내었고, 단지 멀리 창문가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아이였어요.
학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저의 학교 성적에 관한 부모님의 관심은 점점 줄었어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12시간이상의 노동으로 인해 항상 너무 지치셨으니깐요. 두 분이 직장에서 화가 나셨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저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고, 때로는 그 스트레스로 인한 자증을 저가 대신에 받기도 했지요. 한 번은, 부모님께서 일찍 집으로 돌아오셔서, 저는 마냥 기뻐했어요.그런데, 엄마는 저를 쳐다보시며, “뭐가 그리 좋아? 나는 피곤해 죽겠는데뭐가 그렇게 즐거워?”라고짜증을 내시며 말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이 함께 계실 때에는, 저의 감정을 억누르고 지내야 했지요. 때로는, 아빠가 화가 나셨을 때 저희 자매에게 거친 언어(?)를 사용하셨는데, 지금도 저의 뇌리에서 자주 아프게 맴돌고 있어요. 한마디로, 저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그들을 돌보고 이해하고 인정해 줄수 있는 분이 4있음을 말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엄격한 양육보다는 다뜻한 애정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할 수가 없어서, 저는 자주 친구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왜 친구들이 저희 집에 올 수 없는 지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어요. 때로는 저의 아파트가 공사중이라거나 살충제를 뿌려서 너무 냄새가 난다거나, 더 심하게는 유령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지요. 그 어린 시절, 얼마나 친구들이 저의 지어낸 이야기를 믿었는지, 그리고 속아 넘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동생이외는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었기에, 자주 저는 망상에 사로 잡히곤 했어요. 가끔,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부모님이 일을 하실 필요가 없게는 되는 망상 이에요. 사실, 지금도 저 스스로 일을 그만하고 싶은 생각에 그런 망상을 가끔 하지요!!!
고등학교 시절, 저의 성적은 점점 떨어졌으며, 저는 집과 학교에서 저의 학업과 저 자신에대해서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분들이 없어서 별로 가치없는 존재로 무시와 거절 당하는 기분이 항상 들었답니다. 저 역시 다른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법도 알지 못했구요. 사람들 대신에, 많은 시간을 독서와 컴퓨터의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Chatting) 데에 보내게 되었어요. 이는 결국의 정서적(Emotional), 그리고 영적 발달의 장애요인이 되었지요. 때로는, 학생들이 저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무시하면, 저는 당장 컴퓨터로 도피하게 되었지요. 부모님은 저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셨을 거예요.
중학교 시절에 저의 삶을 예수님께 바치기로 했지만, 아무도 저의 삶 속에의 거친 도전들에 대해서 준비하도록 도와주지 못하셨어요.그러던 중에, 저는 아주 우울한 소설들을 읽는 것에 심취되기 시작했어요. 그런 어두운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죽음과 사후 세계에 집착하게 만들었어요. 한 마디로, 저의 삶은 아무런 방향이 없었어요. 저 자신, 혹은 누구를 위해서 살지 않는, 단지 그저 식물 인간처럼 존재만 하고 있었고, 삶은 굴레 속에 돌아가는 기계였지요.
교회도 편하지 않음은 마찬가지였어요. 교회 출석을 통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지 아니하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었어요. 저의 뇌리에는 무서운, 판단하고 벌하시는 하나님으로 가득찼었어요. 교회의 신앙 교육에서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별로 언급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 자신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판단을 받는다고 여겨졌으니, 저 자신도 남을 상당히 거칠 정도로 속에서 판단했지요.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으니, 사람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대학시절,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싶어서 다른 종교를 찾기도 했지만,결코 평안을 얻을 수도, 그리고저의 존재(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임재는 느꼈지만, 그 분의 임재는 평안함보다는 저를 더 불안하고 초조하게 하였으며 분노에 차게도 했어요. 저는, “제발 저를 좀 가만 내버려 두세요 (Leave me alone)”라고 자주 외치기도 했지요.
한 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서, 저의 책장 선반에 있던 조그만 십자가를 집어 벽에다가 던져서 조각을 내어버렸어요. 아빠가 만들어 주신 십자가였어요. 벌로 하늘에서 유황이나 우박은 내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무서운 침묵만이 흘렀지요. 그 침묵은 저를 더 공허하고 외롭게 만들었어요. 저는 아무런 안도함이나 저의 행위에 대한 정당함도 없이, 오히려 소망없고 사랑받지 못하고 항상 거절당함의 비참한 기분으로 인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요.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아빠가 아시면 야단나니까 십자가를 풀로 다시 붙이기 시작했어요!!! 저가 화가 나거나 아빠가 무서울 때면 아빠를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사실,오래 전부터 저가 돌봄을 받았을 때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사라져버렸던 것 같아요. 나중에 저와 부모와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줌을 저는 깨닫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는, 구약의 무섭고 벌하시는 하나님이 저의 삶을 지배하는 듯 했어요.
대학 졸업 후, 저는 회계사로 미국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저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저 자신을 증명을 해보고 싶었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저 속에는 공허함이 다시 찾아 왔으며, 아무런 평안이나 의미가 없었어요. 부모님께서는 회계사인 저를 자랑스러워 하신 듯 하셨으나, 저는 결코 성공의 의미를 맛볼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중고등 학교 시절의 암울했던 기분들이 저를 다시 찾아왔답니다. 외로움은 더해 갔는데, 단지 표면적으로 인생을 즐기는 양 가면을 쓰고 사는 듯 했어요. 저는 돈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저의 업무 자체와 또 긴 근무 시간 때문에, 회계사라는 직업에 점점 흥미를 잃게 되었으며,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냥 마지못해 출근하여야 상태가 되어 버렸어요.
일과 후에는, 영적 그리고 정서적인 안정을 잃음은 물론, 신체적 피곤도 심했어요. 수입은 괜찮았으나, 일의 댓가인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 탈진은 달갑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엉뚱한 곳, 즉 저에게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는 데에, 돈을 낭비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옷들, 핸드백들, 신발들이 저에게는 그렇게 필요치가 않았던 것들이었죠. 항상 저를 암울하게 만들던 저 속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의 방편이었지요. 부족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으로 돈을 낭비하며 물건을 샀던 것이죠.
부족한 것을 메울 수 있다는 저의 기대는 단지 환영에 불과했으며, 기쁨과 즐거움 대신에 공허함으로 인한 울음의 날들이 연속되었어요. 그리고 빚( 부채: Credit Debt)으로, 편안과 행복 대신에 수많은 밤들을 염려와 불안으로 보내었지요. 저는 소비를 좋아했지만,그로 인한 부채는 정말 싫었지요.
암울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저 속에는 화와 분노가 자라고 있었고, 결국 심한 우울증으로 빠지게 되더군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었고, 주말에는 주중의 수면 부족을 채우기 위해 무려 10시간에서 12시간을 자기도 했어요. 그 당시 친구들도 별로 없고 하여 그다지 대인관계적 또는 사회적 관계 활동도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우울증은 저의 삶 전체를 삼키고 있었어요. 항상 너무 슬펐고, 저의 몸과 머리는 아주 느리게 작동하는 듯 하고 몸은 정말 무거워서, 오히려 없으면 좋게 여겨질 정도였지요. 가끔은, 몸이 너무 아파서 어깨에 너무 무거운 것을 올려 놓아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집중력은 물론,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것 조차도 힘들어서 저 자신이 통제불능이 된 듯 했어요. 우울증을 차고 나오려고 했지만 사다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저 주변의 세상은 어둡게 여겨졌어요. 결국은 절망감은 더해갔고, 의미와 목적 없이 사는 삶이 생지옥 같아서 사는 것 자체가 귀찮게 여겨졌답니다. 그리하여 저의 인생과 직업은 큰 위기를 직면하게 되었어요.
저는 저가 소속할 수 있는 무엇인가 혹은 어떤 곳을 찾기를 원하기 시작했지요. 곤경에 처한 사람들과 깊은 마음의 연결을 하고 싶어서 여러 단체들을 위해서 자워 봉사를 하기도 했어요. 저가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가 없었으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필요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너무 영적으로 방황함도 지치고 갈급하여서, 기독교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자랐고, 저 자신이 엉뚱한 곳에서 사랑과 인정받으며 수용되어지기를 원하고 있음을 개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의 직업을 바꾸는 것이 필요함을 믿고, 상처와 거절감을 이해했기에 상담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된 것이죠.
직장을 그만 두고 학업을 다시 시작한 것이 힘들었지만, 저는 하나님과 좀 더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심장 속에는 항상 성장 과정의 상처, 특히 사랑받지 못하고 무시 당함 등의 상처가 남아 있었어요. 칼로 푹 찔려서 완전히 치료되지 않고 아물지 않은깊은 (아픈) 상처 같은 것 말이에요. 과거의 아팠던,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들이 자주 되살아났어요. 그러한 기억들의 대부분은, 저로 하여금 사람들을 쳐다볼 수 없게 만들 정도로 수치심을 자아냈던 것들이지요. 저의 이마나 등뒤에 라벨(Label, 물건표나 딱지)이 항상 붙어 있는 듯 했는데, “무능력자(Incompetent),” “멍청한 것(Stupid),” 혹은 “패배자(Loser)” 등이었죠.
그러다가 우리 한민교회의 김대권집사님(Danny, 중등부 부장, 영어예배 출석, 김응찬 장로님 아들)께서 저를 이수일전도사님(Dr. Lee)께 소개를 했는데 지금도 참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이전도사님은 영적 그리고 신체(지정의) 우울증라는 제목을 가지고 3부 영어 예배에 설교를 하셨는데, 저는 저 자신이 설교의 메세지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느꼈어요. 사실, 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 했지요.
이전도사님의 박사 학위 등의 성공이나 성취함으로 인함이 아니고, 설교를 통해서 나타난 그의 깊은 동정과 영혼에 대한 관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순수한 마음에 감사했어요. 그 분을 만났을 때, 저는 판단받거나 비판받는 기분 대신, 저를 이해해 줄 수 있음을 느꼈답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군요. 이전도사님과 가족(사모님과 이삭군)은 항상 저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고,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통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저가 상처로부터 잘 치유받도록 도와주셨지요.
그 분의 진솔하며 진심어린 언어와 행동은 저가 경험하기를 갈망했던 하나님의 다른 면, 사랑의 하나님으로 인도하기 시작했어요. 얼마 후에, 저는 중등부 교사를 자원했는데, 저음에는 참 어색하고 이상했어요. 사실, 저는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었거던요. 그런데, 저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 자원했지만, 오히려 저가 학생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특히, 잘 준비 계획된 주일의 교회학교의 수업 교안도 중요하지만, 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좋은 관계 형성은, 학생들이 서로 신뢰하고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하는 기초 작업임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친구와 가족간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향상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학업과 (장래에) 전문인으로서의 가치와 태도를 배양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요.
숀(Shawn, 오상훈 집사의 아들)과 데니스(Dennis, 이광주집사의 아들)를 포함한 학생들이 하나님과 동행함에 있어서 인내하기를 서로 격려하는데, 이들은 저 자신에게 믿음으로 인내할 것을 가르치는 듯 했어요. 저의 눈에, 저들은 나이에 비해 훨씬 성숙한 학생들이었어요. 그들과 함께 하면서 저는 참 많은 기쁨을 얻었지요. 무엇보다도 더 감사한 것은, 이전도사님께서 저가 교사를 중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이에요. 세 번이나 도중 하차를 부탁했는데, 그 이유는 저의 낮은 자존감과 학생들에게 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공포 수준)때문에, 빠져 나오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학생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저에게 열어주며 저를 점점 편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한 두 전의 일이에요. 주일 아침에 교회로 걸어들어 오는데, 저가 가르치는 7학년의 다니엘(Daniel , 진기영/엄해숙 집사의 아들)이 뒤에서, “얼리샤 선생님 (Alicia Teacher)!”라고 부르면서 저에게 다가와 중등부 건물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전에는, 그렇게 친절하고 따뜻한 언어의 사용은 커녕, 저에게 주목조차도 못하는 것 같은 아이였지요. 그 아이에게 상당한 변화가 최근에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고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으며, 오히려 큰 감동이 있었어요.
청년(young Adults)들을 위한 비젼(Vision) 사랑방에도, 한국말을 못해 불안은 했지만, 처음부터 참가했습니다. 이전도사님께서 자주 쓰시는, ‘옷장에서 숨어 있다가 빠져 나오기(Getting out of the closet)’ 위해서, 저는 교회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노력하고 있답니다.
전에는 멀게 느껴졌던 사랑방 식구들도 이제는 한 분씩 한 분씩 저의 가족의 일원이 되어 그들을 만나기를 매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답니다. 처음에는, 낮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색하여 매우 열려가 되고 불안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방 식구들의 사랑과 돌보는 마음과 태도(Caring Support)는 저의 마음을 완전히 감싸고, 저를 훨씬 더 겸손하게 했으며 저의 영혼이 평화의 자연으로 심취되게 합니다.이사벨(Isabel, 김훈/김혜정집사의 딸), 지미(Jimmy, 최성진 집사), 마리솔(Marisol, 배영순 집사의 딸), 유미(Yoomi, 한성수 장로/장혜정집사의 딸) , 캐티(Cathy, 서경주 집사), 김정훈 형제 등과 함께 금요 사랑방에서 웃음과 기쁨, 고통과 슬픔을 나누지요. 주님의 사랑이 매번 사랑방 모임 시간과 장소를 가득히 채워 주심을 느끼며, 또한 자주 눈물까지 글썽이지요.
사람들과 가까이하는 것이 좀 편안해지면서, 저 자신도 덜 두렵고 수줍어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어, 제안이 왔을 때, 3부 예배(영어)의 대학부의 소그룹인 소금(Salt) 그룹 인도를 자원하게 되었어요. 저를 항상 양육해주고 지지 후원해주는 분(Mentor) 이 있었기에, 저 자신이 빚을 갚겠다는 마음으로 인해서이지요.이제 저는 더 이상 창문 밖을 내다 보는 침묵의 관찰자가 아니랍니다.
저 자신이 삶을 주님께 헌신하기로 하고 그 분이 삶을 지배하기를 원하면서,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위안과 평강이 저를 감싸고 있는 듯 해요. 전에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 저의 기분을 좌지우지되었으나, 지금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려고 하지요. 사실 순종하는 법을 더 이해하고 노력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은 안정을 느끼지요. 이제는 성령께서 저의 매일의 삶을 지배하도록 기도한답니다.
사실, 저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찾기 위해서 매일 애쓰지만, 아침에 주님께로 가서 십자가 앞에 무거운 짐들과 암울한 기분들을 내려 놓게 되면, 무엇보다도 저의 과거의 상처로부터 영적 자유와 해방감으로 확실히 치유받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지요. 즉, 하나님의 사랑으로 계속 치유받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부모님에 대한 이해도 많이 생겨 그분들을 용서하는 마음도 크게 자라고 있음을 느껴요. 이제는, 그분들도 언어와 문화 장벽으로 인해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웠고 외로워 하셨는지를 상상할 수 있답니다. 아마 저희들에게 무엇을 하셨는지를 두 분은 모르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분이 저희들을 사랑하려고, 하실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셨음을 믿어요.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저가 힘들어 했던 고통을 경험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연단하셔서 저에게 허락하신 은사와 재능을 남들을 위해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전에 소비벽으로 돈을 낭비한 적이 있기에, 저에게 십일조 생활은 큰 의미를 부여한답니다. 하나님의 것을 바치니 놀라울 정도로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하시면서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단지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저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저와 함께 시간 보내기를 원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저가 어렸을 적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이지요. 저의 미래에 어려운 일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그런 고난 속에서 잘 헤쳐나가도록 하실 것을 이제는 믿어진답니다.
전에는 저 자신이 너무 하챦고 존재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아끼시고 사랑하며 돌보고 계심을 알 수가 없었지요. 저는 자주 마태복음 13장 44절의,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라는 말씀을 자주 생각해요. 믿기로는, 저희가 감추인 보화이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팔아서 저희들을, 특히 저가 속한 밭을 사신 것으로 해석되어진답니다. 저는 여러분들처럼 이제 완전히 주님께 속한 사람이랍니다.
저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거나 여러분들께서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간증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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