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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대림절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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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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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허되는 시대에 희망은 무슨 근거에서 가능할까요? 대한민국 상황에서 촛불 민심이 반영된 정부가 들어서면 국민들이 희망을 갖게 될까요? 아니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고 심기일전하여 잔여 임기를 마치는 것이 탄핵보다 나을까요? 역사 자체가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역사는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거의 모든 불안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때 더욱 심화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내일을 예측할 수 있고 나름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 모든 학문은 예측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해야 질서가 서고 질서가 서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측이 가능해야 과학적 발전도 가능합니다. 예측이 불가능 하면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점점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점점 더 불안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념적으로 볼 때 우파나 좌파 중 어느 쪽도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이념이란 불안과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적 수준의 여러 대안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불안이 점점 증폭되고 심화되는 현상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론적 신앙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니까 감사할 수 있고, 이는 그리스도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교회력으로는 벌써 새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절이 시작 절기인데 지난 11월 마지막 주일이 대립절의 시작일입니다. 대림절이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인데, 여기에는 초림과 재림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니까 기념하는 것이고 재림은 아직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니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림과 재림은 우리가 각각 별개의 사건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깊은 관련성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즉 초림이 없었다면 재림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림은 재림의 토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초림에서 구원은 이미 성취되었는데 또 다시 예수님께서 오실 필요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림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의미보다는 구원과 생명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사건입니다. 초림으로 구원이 완성되었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아직은 모든 것이 미완성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이들은‘이미’와 ‘아직’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대림이란 주님을 기다린다는 뜻인데, 이는 마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계시와 역사의 길목에 서서 이념과 정치와 경제가 발생시키는 문제들과 치열하게 대면하면서 하나님 나라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른 대림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넘어 진정한 기독교적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원리에 반하는 우파와 좌파의 생각들을 동시에 비판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좆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재림의 때에 대해 물리학이나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하였고, 바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가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고 우리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다만 성경을 종합하여 볼 때 주님의 재림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생명의 완성과 변화입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세상 종말을 단순히 모든 것이 끝나는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종말과 관련해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바꾸어야 할 생각은 종말은 단순히 세상이 끝난다는 의미보다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그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명이 완성되고 그 생명의 주인이 우리 주님이시고 그 주님이 모든 것을 명실상부하게 주인으로 통치하게 되는 때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거짓이고 종교적 사기라고 합니다. 소위 지식인들 중에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사기에 속는 사람들이라고 비방하고 조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니체 같은 사람이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를 조롱한 대표적인 인물이고 그 외에도 많은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근대에 와서는 독일의 예와 같이 신학을 단순히 인문학의 한 분야로 이해하는 자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에 대해서 조롱과 비난을 함부로 쏟아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반은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자들에게 아부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때가 많았습니다. 신학이 철학에 아부를 하는 때도 있었고, 자연과학에 아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교부들까지 희랍 철학에 아부를 했습니다. 실존주의 신학은 실존주의에 아부를 하여 생겨난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불신이나 왜곡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난감하기는 합니다. 주의 날, 즉 종말에 생명이 완성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그런 자들에게 아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이란 착하게 살고 양심적으로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복음이란 단순히 어떤 이론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동의나 수용 정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총체적 위탁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상이나 이론에 대해 모호하거나 소극적으로 반응할 수 없는, 존재 자체가 분명한 정체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름만 가진 기독교인이라면 몰라도 참 복음을 믿는 신자라면 분명한 정체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그 정체성은 재림신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재림공동체였고 현대 교회도 바로 그 전통 위에 서 있습니다. 교회력에서 대림절이 맨 앞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을 기독교인 되게 하는 핵심이 재림신앙이라면 그 재림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에서 재림 예수가 2천 년 전의 모습 그대로 재림하였다고 묘사하였습니다. 2천 년 전의 예수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재림의 주님이 2천 년 전의 모습 그대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즉각 예수님을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는 화가들이 그린 예수님의 모습을 2천 년 전의 예수님의 모습으로 전제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은 사실 재림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재림의 주님께서 언제 오시느냐, 어떤 모습으로 오시느냐, 어떤 방법으로 오시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재림에서 참 핵심이 되고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 모르면 그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소위 ‘내가 본 천국’이라든가 천국에 갔다 왔다고 하는 이들은 천국을 물리적으로 묘사하려고 애를 씁니다. 천국에 대해 완전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천국에 대해 묘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재림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생명의 완성과 변화입니다. 그 때 완성될 생명은 우리 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우리 밖에서 우리 안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주님의 설명은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생명의 떡이 우리와 신비한 연합을 이루어 우리를 죽지 않는 절대적 생명의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그 절대적 생명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지만 은폐의 존재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없고 두렵기까지 하지만 부활과 절대적 생명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해도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파나 좌파의 이념이나 사상이나 정책 정도에 희망을 거는 것이 아니라 생명 완성의 때를 바라고 희망을 갖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천국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입니다. 이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 시민권 자로 살면서 내심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맨해튼에 나갈 때마다 미국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나의 생각만은 아닐 것입니다. 맨해튼에는 날마다 전 세계로부터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찾아옵니다. 미국인들은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자부심을 가질 만 합니다. 미국의 나쁜 점도 많지만 이만큼의 힘을 가진 나라가 이만큼 너그러웠던 나라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을 일본이나 러시아나 중국이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이 지금의 미국만큼 강하다면..., 이러한 가정은 별로 좋은 상상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미국은 여러 면에서 참으로 대단한 나라입니다. 나는 솔직히 이 나라가 좋습니다. 정말 기회의 나라입니다. 나는 절대적 판단으로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상대적 비교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참 매력 있는 나라이고 매력적인 것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자국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 이런 미국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고 사는 것도 복입니다. 미국을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무시하지 못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에 대해 우려합니다. 대림신앙의 정체성을 견지하며 주님 재림의 날에 희망을 걸고 살기보다 미국의 영향력과 매력에 빠져서 살게 될까 두렵습니다. 미국이 매력 있는 나라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제공하는 가치가 하나님 나라 가치는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주의 가치나 어떤 이념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림절을 맞아 대림신앙이 나의 정체성이 되도록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 딛 2: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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