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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교인들을 변화시키는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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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조2017-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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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6
박근혜 대통령이 금번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태도로 인해 곤욕을 치루는중이다.

물론 본인이야 대쪽같은 성격으로 인한 판단에 의하면 본인의 잘못이 아니므로 사과를 하고싶지 않었고 그동안 과거 정권들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싶은 판단과 정확한 지시(?)를 내렸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한 정부 각 기관들을 나무라며 사태를 추스르려 했으나 악화되는 여론으로 인해 정식 사과의 내용과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이라고 언론은 보도한다.

더불어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려는 본인의 의사를 밝혔으나 우리가 한국의 근대사와 그동안 대형 사고후 정부의 뒷북 대안을 잘 알다시피 그 또한 여론 무마용의 대안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100%이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 권세의 정점에 올라있는 대통령의 그깟 대안으로 변화되는 존재인가? 여론 수렴을 통한 국민의 갈망을 법으로 성문화하여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법으로 변화되는존재인가?

우리는 사람을 진정 변화시키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매주 올려지는 개교회마다 설교의 홍수들과 영성 세미나와 도처에 널려있는 제자 훈련과 양날개, 평신도 세미나에서 울려지는 고명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의 열변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변화되기가 힘들며 그런 연유로 세월호의 침몰이 하나님의 경고로 우리에게 다가왔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무엇이 한국 국민을 진정 변화시키고 교인들을 변화시킬수 있는가 ?
그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설교)의 선포라면 어떤 설교가 올바른 설교인가 ?

이런 질문이 깨달아질 때마다 우리는 역사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로마를 영적으로 변화시켰던 크리스천의 인구 구성비는 8%가 채 안됬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내의 각 교단의 총회장님들과 대표 감독회장님과 한기총을 비롯한 기라성같은 개신교 단체장님들이 국민 인구중 25%의 한국내 크리스천들을 들먹이며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을때 하나님은 세월호를 사용하시어 저들을 부끄럽게 만드셨음을 꺠달아야 한다.

천박한 자본주의와 그럴듯하게 꾸며진 싸구려 구원론으로 세상과 어울리며 동시에 천국 구원행 티켙을 확보하며 좁은문이 아닌 편안하고 안락한 넓은문으로 향하는 현대 크리스천들을 변화시킬수있는 설교란 과연 무엇인가 ?

모든 목회자들은 일주일 내내 설교를 준비하며 지내며 주일 대예배시에 그 설교가 울려 퍼질때 교인들이 아멘하며 화답하기를, 그리고 교인들의 일주일의 삶이 그 말씀대로 변하여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모습의 초대교회를 살펴 보아야 한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기 이전의 초대교회는 오늘날의 예배처럼 설교가 가장 강조되고 설교 위주의 예배가 아니었다.

특히나 말씀의 원어가 어떻고 의미가 어떻고 이 부분이 강조되고 등등의 설교가 아니었다. 가정교회에 모여서 말씀을 읽었으며 오늘날처럼 일방적인 모습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에서 신앙적인 질문이 있으면 그것을 즉석에서 질문하였고 그러면 예배 인도자가 해당 말씀을 읽어나가며 해설하는 쌍방 진행이었다.

그리고 인도자 본인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가 질문자와 예배 참석자들에게 전달되어지고 깨달음과 감화 감동이 이루어져 세례의 결단을 내리며 동시에 삶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런 세례자들은 말씀후에 따로 모여 진정 거룩하고 살이 떨리는 성찬식을 거행하였던 것이다. ( 세례를 결정하는 것도 거의 2,3년의 당사자의 생활 변화를 관찰한 후에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 당시는 기독교가 공인화 이전이었고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온갖 고초와 죽음까지도 불사하여야 한다는 의미인 것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

오늘날 상당수의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삶의 변화가 없다고 수시로 개탄한다. 그리고 설교 준비가 혹시 부족한가 생각하며 , 혹은 설교 세미나를 부지런히 찾아 다니기도 한다.

어떤 설교자는 교인들이 설교를 듣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설교중 꾸짖기도 하며 본인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 교인도 있으나 일부 교인이 은혜를 못 받는 것은 저들의 잘못이라고 치부하며 자신탓을 회피하기도 하고 거기서 더 나가면 마귀론과 저주론이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가끔보게되는 요즈음이다.

그 이유는 무언인가?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이후 예배에 참석자가 늘어나니 가정교회는 사라졌고 자연스레 대형 예배당 건물이 필요했으며 대중에게 호소하는 설교 , 수사학과 웅변학이 필수로 여겨지는 오늘날의 설교 모습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 바로 설교자와 청중들의 삶의 모습이 괴리되는 것이다.
설교자의 삶의 변화가 없어도 설교학 공부를 통하여 청중들을 감동시키는 설교는 가능하나 그것은 감동 그 자체이며 시간이 지나가서 감동이 사그러지면 삶의 모습은 원위치되어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교인들의 삶의 변화를 원한다면 설교자 자신의 설교 본문에 해당되는 삶의 변화가 우선이며 이를 주일예배시에 선포할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며 그럴때 성령의 감화감동이 듣는 이들의 관절과 골수를 쪼개고 말씀이 속으로 들어가 저들의 삶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교인들의 삶의 변화는 담임 목사의 삶의 변화만큼 정확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정 거듭나려면 비록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될지언정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로 국민들의 심정을 어루만지는 것이며 스스로의 진실된 삶의 변화가 대안으로 제시되어질 때만이 가능한 것이며 그럴때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여 변화가 이루어질수 있다.

동일한 시각이 현재 침몰되어 가며 제2의 종교 개혁이 필요한 현대 한국교회에도 적용된다. 담임목사는 교인탓 이전에 , 그리고 설교를 듣는이들의 귀탓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교인들에게 진심어린 사과가 우선이다. 그런 연후에 말씀에 비추어서 본인의 삶이 먼저 변화를 이루고 그후에 동일주제를 설교화하여 주일예배에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진실되게 선포하는 것이다.

그럴때만이 교인들이 변하여 초대교회의 모습이 살아나며, 그럴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며 이런 귀한 일들이 한국내와 세계 각처의 한인 교회에서 이루어질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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