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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피니언

지금은 조율(調律)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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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연201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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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련의 위력으로 기독교는 반드시 박멸되고, x 집은 문닫고, x 먹(목사)은 산업현장에서 땀을 흘리게 되며, x 독들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내년도(2011년도) 통계청에서 전국인구센서스를 하게 되는데, 내년도까지 기독교인구는 적어도 10-20% 이상 줄 것으로 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10-20%는 곧 x 독교가 망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징조입니다. )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위 문구는 자신들의 혁혁한 공로로 우리 기독교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자랑하느라 신바람이 난 어느 반기련 인사가 그의 게시판에 올려놓은 황당한 발언 중에서 가장 mild한 문장을 카피해 온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만년이란 긴 세월을 자랑하며 내려오지만, 정서는 유교 사상과 샤머니즘 사상이 뼛속 깊이 파고든, 그것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 보시기에는 턱없이 미련하고 패역한 민족이었을 뿐이다. 샤머니즘에 물든 우리 조상은 삼라만상 모든 것을 신(神)으로 간주하여 거기 경배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것을 인식(recognized)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때가 되어 정통신학에 입각한 개혁주의 보수신앙은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신 주님을 우리 땅에 소개했으며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먼저 받아들인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알지 못하여 망해가는 민족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자신들은 굶주리고 헐벗으며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는 헌신을 아끼지 아니했다. 그들은 신앙의 보수를 부르짖었고, 새벽마다 울부짖는 눈물의 기도가 방방곡곡 울려 퍼졌으며 깨끗하고 청결한 삶을 몸소 실천실행함으로써 성령의 사람이 나가야 할 올바른 길을 나타내 보여주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도 모든 기독교 역사가 지닌 공통적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는 ‘피 흘린 발자취’ 위에 건축이 된 자랑스러운 역사다.

그분들의 눈물 어린 기도로 이제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새벽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선교도 가장 열정적으로 하는 나라, 통계를 보면, 개신교인 숫자만 전체 국민의 21.6%(2009 년)가 되기까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나오고 있었다. 그뿐이랴, 비행기를 탄 채 밤하늘에서 잠시 내려다보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십자가가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이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지…) 이토록 훌륭한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우리, 현대 기독교인의 실상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그 찬란한 신앙의 업적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다. 세상으로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도, 그리스도인의 아름답고 덕스러운 향기도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에는 ‘그리스도인’이란 이름 하나만으로도 ‘그리스도를 닮은 신실한 사람들’이란 명예로움을 향기처럼 흩날리던 멋진 공동체였으나 지금은 세상으로부터 ‘x 독교’라고 손가락질 받는 부끄러운 공동체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많은 지각있는 성도들의 관심이 요구되는 시대라 하겠다. 이제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되돌아 보며 문제를 파악하고 조율(調律)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이토록 혼란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심된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지켜 나가야 할 본분을 망각하고 비본질을 본질보다 더 치중하는 거기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느 조직신학 교수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도 같지만, 사실, 기독교 교리는 2천 년이라는 긴 역사의 과정을 지나오면서 성경을 기초로 다듬고 다듬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며, 정(正, right)과 반(反, wrong)의 무수한 논쟁을 거쳐나오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긍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검증을 받은 위대한 산물이요, 보배로운 유산이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개인이 자신의 입맛대로 새로운 자가신학을 양산(量産)해 내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급히 조율(調律)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일까? 많지만 우선 몇 가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불교는 정(靜)적이요, 기독교는 동(動)적이다.

1. 예수님께서는 일하시는 분이시다.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
성경을 보면 세 초부터 세 말까지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 동(動)적인 하나님이시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일하셨다. 병자를 고치기도 하셨으며, 잃은 영혼을 찾아 헤매는 일을 하셨고, 각 촌으로 두루 다니시며 전도의 일을 감당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성령 하나님 역시 지금까지 인간 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세 초부터 세 말까지 일하시는 분, 동(動)적인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2.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셨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 요 8 : 29)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이 땅 위에서의 사역 시작은 파송(보내) 하는 것으로 시작하셨다. 많은 무리 중, 70인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제일 먼저 주신 사명이 ‘각 동네로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명하셨다. (눅 10 :1- )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지상명령)도 역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마 28 :19)...!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너희는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세상으로 가라.” 하는 말씀이다.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은 성도는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나는 불교(佛敎, Buddhism)에 대해 깊이 공부한 바 없어 확실히 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잠시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은, 불교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른 종파와 매한가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라고 보겠다.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을 찾아야 하니 그 나타나는 형태가 바로 고행이요, 신(神)의 경지를 자기 속에서 찾아야 하고 이루어 내어야 하니, 도를 닦으며, 참선 (參禪)도 하고, 좌선 (坐禪)도 하고 속세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앉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우리 성도는 참선(參禪)이나 좌선(坐禪)을 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 가만히 앉아 도를 닦아야 하는, 정(靜)적인 불교(佛敎)의 불자(佛者)들이 아니라 그분(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하여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역동(力動)적인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이런 윈리,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의미를 바로 깨닫고 알기만 한다면 하루는 24시간 1년이면 365일을 가만히 앉아서 찬양과 기도만 하고 들어 앉아 있어야 한다는 발상은, 그것이 신탁(神託, oracle)이건, 예언이건 간에, 처음부터 성경적 개념이 아니며, 이치에 맞지도 않음을 금방 알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과연 성령의 사람이라면 ‘주께서 가라시면 세상 어디든지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 성도의 올바른 태도이다. (마 28 : 16 - 20)

구약 성경에 느헤미야도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삽을 들어 예루살렘 성곽을 세우는 일에 힘을 다했다. 느헤미야는 일하는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역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것을 알 수 있다. (느3: 15-23 참조).

3.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 : 1)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 역시 말씀이시다. 에베소서 5장 18절의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는 말씀과 병행 구절인 골로새서 3장 16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며...”라고 명시되어 있다. 성령 충만은 말씀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디 선생은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이다”라고 말했다. 성령 충만은 자기의 신비적인 환상이나 감정에 따라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을 온전히 지킬 때 성령님의 인도와 주장을 확실하게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됨을 알아야 한다. 말씀을 멀리하고 개인이 직접 신탁(神託, oracle)을 받는다는 엘리트 의식을 경계해야 하며, 신비적 현상에 치중하여 꿈이나 환상을 더 따르려는 성도들을 속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그 어느 것도 따라서는 안 된다.

4. 잘못된 회개(悔改) 관을 회개(悔改)해야 한다
구약 성경에서 " "(슈-브)는 "회개하다" 시 7:12) "돌이켜 회개하다" (겔 18:30), 이며, 신약의 회개(悔改, repentance), 그리스 어로 Μετάνοια(메타노에아) ‘돌이키다’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 그런 뜻이다..

도적질 하던 사람은 도적질을 그치고 손으로 구제할 것이 있게 열심히 일하는 것, 아내를 버린 사람은 아내에게 돌아가는 것, 이것이 참된 회개다. 회개는 전인격의 방향전환이다. 우리는 간음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용서해 주신 주님을 믿는다. ‘간음한 자도 주님의 눈에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라고 믿는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실수한 것을 깨닫고 회개했으면 그 한 번으로 충분하다. 주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용서해 주심과 동시에, 용서함을 받은 후에 취해야 할 자세를 지시해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Neither do I condemn you go and sin no more.)” ( 3 :11) 이 말씀을 모든 죄와 회개에 그대로 적용시켜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여기서 앞부분만을 똑 떼서 남용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간음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하셨는데, 누가 나를 나무랄 수 있다는 말인가? 한 문장 안에서도 이렇게 자기의 입맛에 맞게 말씀을 마음대로 각색하는 것이다. 참된 회개란 전적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떤 죄가 되었건, 한 번 회개했으면, 용서함을 받고 그 용서함 받은 죄를 두 번 다시 짓지 않는 것, 이것이 참된 회개이다.

성도(聖徒)가 죄를 지을 수 있다. 문제는 오늘 회개하고 돌아서서 그 죄를 짓고 내일 다시 회개하고 또 다시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이것은 회개가 아니란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목적이나 방법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을 슬피 탄식하고 마음 아파하고 통회하고 돌이킨다고 하는 고백이, 고백적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짐짓 죄로서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런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회개(悔改)"라는 용어 표현은 오역을 합하여 불과 3번 언급되고 있지만 결코 "회개"의 요구가 경시되고 있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도 줄기차게 지적해 오는 것은, 성령의 사람은 행동 따로, 회개 따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욕먹는 것은 바로 이 잘못된 회개(悔改)관 때문인 것을 깨닫고 회개(悔改)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요즘은  정(靜)적이어야 할 불교는 세상으로 내려와 동(動)적이 되어가는 것을 본다. 반대로 가장 역동(力動)적이어야 할 기독교는 정(靜)적이 되어야 신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비우고 깊이 기도에 착념하면 하나님의 심장까지 들락날락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 종교에서 도입한 ‘관상기도’의 현주소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루는 12시간, 1년이면 365일을 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고 찬양만 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생활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 좋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명하신 지상명령은 “세상으로 나가라!”하는 것인데, 언제 세상으로 나가서 언제 전도할 수 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 생계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가?

이렇게 되면, 할 수 있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성도이고, 그럴 수 있는 여건이 허락지 않는 성도나 목회자들은 매일 기도하고 찬양한다는 그들을 흠모하게 될 것이며, 그런 그들은 그렇지 못한 성도들보다 영적으로 우위에 있는듯, 영의 세계에서도 상하(上下), 우열(優劣)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動)적이어야 마땅할 기독교가 정(靜)적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이며, 변질한 사례일 뿐이다. 모두 욕심을 따라 변질시킨 것이다. 우리는 돌이켜야 산다. 아직도 늦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어느 특정 구절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고도 총체적인 말씀 속의 진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성령의 조명 하심을 구하고 날마다 나의 신앙생활을 말씀에 비추어 다시 조율(調律)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멀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있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막 7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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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달윤 
2010-09-09 06:09
 218.xxx.251
 사모님 신앙에 조율이란 말 처음 접합니다.
너무도 훌륭하고 이 시대에 아니 시대를 초월해서 신앙에 조율은 계속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너무도 귀한 말씀 배웠습니다.
 <신앙에 조율>
 
교제 
2010-09-27 20:09
 24.xxx.199
 부천 시온성 장로교회(대신) 목사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넷에서 김명식 목사로 검색하면 동명이인 목사가 서너명
 나오는데 예언사역 관련해서는 부천 시온성 장로교회
 목사가 나오고 "하나님과 함께" 라는 까페에 김명식 목사의
 사역내역과 부흥회 사진들이 올려져 있습니다.

 [김명식 목사님은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 시온성교회
 담임목사이십니다. 교회는 말씀과 치유사역을 통해
 건강하고 신실하게 성장되고 있는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목사님의 이러한 것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깊은
 고난 후에 주님이 주신 것임을 알고 어려운 교회들을
 건강하게 세워가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고, 사도적
 직임과 예언적 통찰력, 기름 부은 강력한 말씀, 아비의
 심령으로 많은 성도들을 주님께 재 헌신하게 하고
 탈진한 사역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탁월하십니다.]

 [부흥회 특징 : 깊이 있는 말씀
                    상담을 통한 내적치유 (치유)       
                    예 언(상담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함]

라고 소개 되었고 일년 내내 부흥회를 인도하고 교계에서
 맡은 직책도 많은 소위 명사,

크리스찬 타임스 미주뉴스에 실린 기사를 보니( 기사 내용
 카피가 불가능함) 스와니에 위치한 아틀랜타 모 교회에서
 작년에 부흥집회의 강사로 부천 시온성 교회 목사가 초빙된
 것으로 나오고 그때에도 몇몇 성도의 가정과 사업에 대해
 예언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사진을 보니 동일인이 맞습니다.

http://kctusa.com/technote7/board.php?board=mijunews&command=body&no=729
 
여야 
2010-09-27 12:13
 71.xxx.81
 누지문서 님께 
김명식 목사님이 그 부흥회에서 본인이 섬기는 교회와 주소를 설교 도중에 우루루 빨리 말하며 지나갔으나 제가 기억을 못 합니다.
김명식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그 교회에서 있던 일을 설명 드리면 확인 할수 있을 것 입니다.

그 교회는 3번에 걸쳐 교회가 깨어지는 아픔이 있었다고 합니다. 교회를 개척하여 400-500명 정도로 교회가 성장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교인 반이 나가 버리는 일이 두번 있었다고 합니다.

3번째에는 교회가 성장하여 교인이 증가하게 되니 장소가 비좁게 되고, 목사님 자신은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제직들이 교회 건축을 해야 한다고 종용하게 되고 건축위원회가 구성되어 건물 기초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제가 다시 생기게 되니 교인의 반이 도망가고, 건축을 하자고 하던 제직, 건축위원까지도 다 도망가서, 결국은 겨우 1층인가 올라간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밤마다 산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밤새도록 하나님께 매달려 울며 기도하다가 내려와 새벽기도회를 인도한 후 2-3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일어나 교회 일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에 전념하기를 3년이 된 어느 날 새벽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손을 잡아 주시며, 위로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앞으로는 일반 성도가 아닌, 주의 종들을 세우기 위한 말씀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하셨답니다.
그 후로 교회 문제가 급속도로 해결되게 되었다 네요, 하루는 누군가가 만나자고 해서 혹 빗 독촉인가 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경매로 가져간 세우다가 중단한 교회 건물을 그냥 돌려 주더랍니다. 이유인즉 3년 동안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 건물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괴로워서 더 이상 갖고 있을수 없으니 나에게 3천만원만 주고 가져 가라 해서 3천만원 얼른 주고 건물을 되 찾았다고 합니다.

미 동부의 몇 백병 모이던 어느 교회, 본인의 부흥회 몇번 하더니 2천명의 교회로 성장하였다고 하더군요.

요한 계시록 12:8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주께서는 두려워 하는 자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 질 자들이라 하십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점술가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과 같이 동일 하게 둘째 사망에 빠질 자들이라 하십니다.

성도라 하면서도 주를 100% 신뢰하지 못하고 운명의 결과를 점술가에 의뢰하는 두려워하는 자들, 우상 숭배자 들 입니다.
인터넷에 떠있는 와싱턴 지역의 모교회 집회에서의 말씀 내용과 사진이 일치 합니다.

이름까지 거명한 일로 마음에 걸리지만, 제2의 김명식이 등장한다면 아마도 동일하게 할 것 입니다.
   
누지문서 
2010-09-27 07:54
 71.xxx.100
 여야님께
 저는 여야님과 교제님의 글을 먼저 읽었고
believer 님의 글을 그 다음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명식 목사라는 이름을 google 해보니
 만약 여야님이 언급하신분이 부천의 시온성장로교회의 담임목사님이라면 여야님의 글에 의문이 가게됩니다.
왜냐하면 구글되어진 많은 내용중 어느곳도 여야님이 언급하신
 문제점을 지적한 곳이 없더군요.
혹시 다른분인지 ,
같은 분을 언급했다면 보충 자료가 필요합니다. 
   
believer 
2010-09-26 23:09
 98.xxx.123
 《Re》여야 님 ,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믿으시나요?
게중 은사를 받고 자신을 위해 쓰시는 분들도 계시기는 하지만..

어떤분인지 이름을 밝히셔서 참 놀랐읍니다.
제 주위에서는 그 분에 대한 평판이 다르니까요.
하나님의 은사를 귀하게 사용하신다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그 분이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도를 하여 위기를 극복한 등등의

 많은 사람앞에서가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은사가 받아들이는 이의 겸허한 마음가짐에 따라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믿는 자를 위해 유익하게 쓰일 수 있도록 은사로 주셨고
 많은 경우 올바로 된 은사받은 자를 통해
 위기를 겪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안에서
 그의 뜻을 알고 길을 찾기 때문이겠죠.

당연히 믿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몰라 답답해 하다
 세상 점쟁이를 찾아가는 것보다야
 당연히 성서적이겠죠.

참 해석은 여러가지로 다를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교제 
제도교회가 세속화되다보니 이제 교회안에 은사라는
명목으로 점술까지 버젓하게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부흥사 ,목사 노릇하면서 길거리에서 자리펴고 관상,
사주팔자,점을 치는 자들이나 귀신들린 무당들과
다를 바 없는 사술을 예언이라 포장하여 교회에서 돈을
받고 팔며 말씀에 굳게 서 있지 못한 교인들을 미혹하니
..명색이 교회를 다니기에 차마 점집은 못 가나
여전히 그런 것에 대한 향수가 있는 분들,그런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분들이 집회에서 당당하게 점과 사술을
사는 것이지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6:14> 9/27 00:29
 24.xxx.199
 
 believer님
밑에 누지문서님이 올리신 글로 대신 하고자 합니다.
예언의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알려주는 일이외의
모든 예언은 잘못된 예언입니다. 9/27 12:50
 71.xxx.81
 
여야 
2010-09-24 10:56
 71.xxx.81
 밑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밀려 나간자리 황량한 고요만 흐르니
 정녕 물타기가 끝난 모양 입니다.
칼럼의 주제나 진행되어오던 번영과도 무관하지만,
목격한 일을 여러 성도님들에게 알리고 경계케 하고자 합니다.

이웃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기에 인사차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말씀 후에 예언 받기 원하는 성도를 앞으로 초청 합니다.
이 예언에 대하여 내가 느낀 것은 돈을 받고 자리를 핀다면
 완전히 족집게 기독교 점장이라 할수 있을 정도 입니다.
예언을 하기 전에 몇월 몇칠 누구 성도에게 예언을 합니다.
녹음을 하게 하고 옆에서 글로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기록한 것을 3년간 보관하고 이 예언이 이루어 지는지
 지켜 보라 합니다.

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형제가 먼저 예언을 받기 위하여 마주 앉았습니다.
형제는 이 집회에 참석하기를 원하지 않았군요, 따락따락, 그러나 주위 여건이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됐습니다, 따락 따락, 오면서 마음으로는 온갖 불만으로 가득차 욕을 하며 왔군요, 따락 따락, 집회 끝나고 가면서도 불만이 많을 것 입니다, 따락 따락, 예수님께서 그것도 받으신다고 하십니다.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

한 자매가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자매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 하는군요, 따락 따락, 불쌍한 자들이 있으면 무조건 주기를 좋아 합니다. 따락 따락, 그래서 내것을 다 내 줍니다. 따락 따락, 그리고는 저것 나도 필요한데 하며 후회 합니다. 따락 따락, 조금 나한테 돌려 주었으면 좋겠네 하고 후회 합니다. 따락 따락, 그것은 푼수 입니다. 따락 따락,
듣고 있던 자매가 반문 합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 따락 따락 그것은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푼수 입니다.
따락 따락 예수님께서 그 푼수를 고치라고 하십니다.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따락,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개 개인의 감정과 신앙 상태, 앞으로 되어질 일 개인적인 모든 일들을 들어내어 예언합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personal한 은밀한 것까지 들어내는 예언을 한다면 아마도 sue를 당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아주 상세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 이 정도면 족집게 목사 점쟁이라 할수 있지 않은지요.

그는 목회자를 처음 만나 크게 성공할 목사이면 명함을 달라하여 받는다고 합니다.
혹 그에게 명함 건네 준 목사님 계신지요. ㅎ ㅎ ㅎ
 그에게 명함을 건네주고 싶으신 분은 안계신지요. ㅎ ㅎ ㅎ

 그 예언을 받은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받을 폐혜가 얼마나 클지 심히 두렵습니다.
그 받은 예언이 말씀보다 먼저 되어 그 쪽지를 신뢰하며 쫓을 것 아닙니까
 혹 그 예언이 이루어 질 경우는 고사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을 확인할 때의, 그 허탈감, 신앙은 유지 할수 있을지 심히 두렵습니다.
많이 들어본 신사도적 예언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모두 예언을 받고 가라는 요청에, 주님 여기를 떠날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기도하고 슬그머니 그곳을 빠져 나왔지만, 집회를 호스트한 목사님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초청을 했다고 합니다.

경계해야 할 그 이름은

 경기도, 부천의, 김명식 목사.


여야 올림
 
 교제 
교회에 해로운 누룩으로 작용할 것에 대해서는
여야님처럼 그 정체를 밝히고 모든 교회가 경계하도록
널리 드러내어야 합니다.^^
헛된 말을 하고 자기 생각으로 미혹시키며 속이는
자들에 대해서 바울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고
경건한 체하나 속으로는 더러운 이를 탐하는
거짓교사들로 묘사하였지요.
그런 목사가 아마도 경원시하는 바울 서신서는
딤전후서나 디도서일 듯.. 성도들로 하여금
바른 교리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되 자신의
삶의 모범을 통해서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는
목사가 성경의 말씀을 바로 풀어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르치는 대신
3년짜리 담보식 예언을 한다며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마무리하니 소위 점치기식
예언기도자인것인지??? 9/27 02:03
 24.xxx.199
 
 누지문서 
저도 교제님의 댓글에 동의합니다.
예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한심함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예언의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알려주는 일이외의
모든 예언은 잘못된 예언입니다. 9/27 07:38
 71.xxx.100
 
 솔잎 
여야님은 별똥별님이 늘 말씀하시는 것, 예언이 점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때, 언제나 반대입장을 취하시는 듯 하신 것 같던데, 이제는 동의가 되시는 것 같군요. 곁에서 보기에도 반갑습니다.  9/28 03:10
 61.xxx.55
 
 여야  그래요! 솔잎 님 
어찌 되었던 보기에도 좋다고 하시니 저도 좋습니다. 은사의 입문, 방언에 관심이 있어서 별이 사모님 칼럼에 뛰어 들었으나 처음부터 소통에 삐걱거림이 있어서 그 외 예언 등에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좀 까칠하게 보일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솔잎! 정감이 가는 아이디 입니다.
 10/5 10:20
 71.xxx.81
 
 여야  솔잎 님!
생각해 보니 기독교 점장이 글을 별이사모님의 어느 칼럼에서 읽고 경각심을 같고 있는 중에, 그 결과로 이번 경계성 댓글이 나온 것 같습니다. 이번일로 혹 어떤 공이 있다면 별이사모님 몫 같습니다.
그런데, 누지문서님이 지적하신 글로 제 마음이 무거운건 어쩐 일인지 모르겠읍니다. "구글되어진 많은 내용중 어느곳도 여야님이 언급하신 문제점을 지적한 곳이 없더군요"
 10/5 11:03
 71.xxx.81
 
 
 정경민 
2010-09-23 03:05
 24.xxx.203
 어쩌다가 반기련 같은조직이 생겼을까요..
이 세상엔 정말 무서운사람들이 많은것같아요.
사모님글읽을때마다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인터넷만 켜면 머리속이 시원해지는듯한
 사모님글을 읽을수있었으면 좋겠어요..
늘 감사하구요 수고하세요*^^*
 
  오호통재라! 
2010-09-17 14:00
 173.xxx.169
 '신앙의 조율'이란 개념, 참 적절합니다.'신앙의 반성'이라는 말은 좀 편협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했었는데꼭 맞는 옷처럼 적절한 용어를 소개하시는군요.
이럴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죠.
별똥별님의 칼럼은 항상 신선한 자극을 주셔서 좋구요 또한 믿음이 깊은 분들이 많아서 편안히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특히 교제님이나 thomas님들과 같은 분들이 바른신앙을 위해 열심히 변증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장달윤목사 
2010-09-15 22:45
 121.xxx.221
 별님! 사모님!
신앙 조율 처음듣는 말슴인데 인상 적입니다.
글마다 높은 차원의 신앙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비둘기
2010-09-15 17:23
 66.xxx.79
 사모님,  주님께 온마음을 다하여  복음을 위해 드려진 삶에 피곤하지 않도록 때마다  주님의 위로와 용기와 평강으로 채워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말씀으로 부터  멀어져 있기에 헛되이 경배함으로
 이 세대를 향한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려 외치며 기록하게 하신 주님의 도구가 되신 사모님,  주께로 마음과 삶이 돌아오도록 기록하게 하신 분은 성령님이시니 각 개인의 마음을 조율하여 고치시고 회복시켜 새롭게하시는 은혜가 각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사모님은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도 받으실 것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  부탁하신 사명이 있어  예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으로 큰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칼럼의 글을 통하여 깨닫고 새로와지며 변화받는 자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사모님은 진정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평안하세요  담대하세요  은혜를 입으신 사모님
 
 
장달윤 
2010-09-09 06:09
 218.xxx.251
 사모님 신앙에 조율이란 말 처음 접합니다.
너무도 훌륭하고 이 시대에 아니 시대를 초월해서 신앙에 조율은 계속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너무도 귀한 말씀 배웠습니다.
 <신앙에 조율>
 

 J목사 
2010-09-14 09:03
 68.xxx.185
 사모님!
이제 시간을 내어서
 사모님의 가슴에 매우 와 닿는 글 잘 읽고 갑니다.
먼저 나 자신에게 읽히고, 그리고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권면하여서
 아멘넷에 출입하는 우리 자신들로부터 오늘의 기독교가
 다시 박수받고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라면서
 밖으로 나갑니다.
계속 좋은 글 주시기를 ....
 
  로뎀나무 
2010-09-14 07:35
 71.xxx.100
 " 자기와 의견이 다르다고 남을 비하하고, 인신공격성 글을 쓰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거기에 맞장구치는 사람들은 더 나쁜사람들 입니다. 누구를 이기려고 글을 올리는 것은 금물입니다 "

tm 님의 이 말씀은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데 본인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제가 며칠전에 들렀을때와 조금도 변한 모습이 없군요.

칼럼니스트들은 이 글을 쓰느라 그야말로 노심초사 기도하며 시간내어 이 글을 써올립니다.
그런데 tm 님은 본인과 본인의 생각이 더 났다는 착각하에 계속 고집을 피우고 이의 시정을 권고하는 많은 분들에게 자신을 비하하고 인신 공격성 글을 쓴다고 , 게다가 맞장구 치는 사람은 더 나쁘다는 전적으로 자기 위주의 사고 방식으로 믓 사람들을 싸잡아 비판하니

 이를 두고
" 말씀(語) 아닐(不) 이룰(成) 말씀(說)- 어불성설" 이라는 한자숙어가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또 누구나 일반적으로 아는 사실들을 혼자서만 아는척 강의를 하시니 이번에는 그야말로 "어벙벙"합니다.

    간만에 이곳에 와서 tm님의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보게 되니
  마음이 혼잡합니다.

tm 님의 또같은 레퍼터리에 저도 똑같은 답글을 보낼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thomas 
2010-09-12 14:23
 72.xxx.16
 "기독교는 動적이다"라는 예로서 <일하시는 하나님> (요5:17)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세 초부터 세 말까지 일하시는 분, 동(動)적인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열심으로 일하시는 力動적인 분이시므로 그 분과 同行하는 일은 항상 새롭고 여간 흥미진진한게 아닙니다!^^

얼마전 테레사 수녀님의 편지들을 모아놓은 자서전이 출판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걸 읽어보면 테레사 수녀가 젊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소명을 받아 인도의 빈민구제에 평생을 헌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테레사 수녀는 초기에 그 "음성"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그 "음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게되자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라 "상부의 지배구조"에 속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주는 신부와 주교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만나는 신부마다, 그것도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동일한 고민을 털어놓지만 그녀의 질문에 분명한 답을 주는 신부는 없었습니다.

저는 테레사 수녀가 들었다는 "음성"이 그녀의 진실한 고백이었다고 믿습니다. 그걸 정신병이라든가 "환청"이라든가 하여 매도해서는 안될, 인간세상의 실체적 진실의 하나라고 믿습니다.

그녀가 그 "음성"을 더 이상 듣지 못하고 있다며 고백하고 몸부림치는 상황을 제 나름대로 추측하면 이렇습니다.

그녀의 구제사업은 "번영"하고 "승리"하여 대단한 "열매"들이 맺히게 됩니다. 테레사 수녀가 그의 구제사업을 왜 시작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무슨 방법으로 실천했는가를 보면 정말 성경적(?)이고 진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 꼭 한 번 일독을 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하나님을 놓친 정황은 이렇습니다. 그녀의 구제사업이 커지면서, 변화하는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가운데 실제적인 실천방식을 놓고 부딛끼며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원래의 "음성"으로 돌아가서 그 하나하나의 구체적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 원하지만, 침묵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오기전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할 많은 일들이 그녀 앞을 마구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행해진(그녀에게는 저질러진) 일에 대한 사후평가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게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였는가 생각할 때, 정직한 테레사 수녀는 하나님의 침묵 앞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신앙생활의 조율에 실패하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한국에는 KHOP이란 데가 생겨서 (IHOP과 직접적인 관계는 아직 없는 듯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한 수 더 떠서) 여러 사탄의 술수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http://www.khop.ba.ro/

이들의 프로그램을 보면 성령님의 動적인 일하심(도우심)을 어떤 "기름부음"으로 개체화해서 "능력" "치유" "예언" "환상" 등으로 구상화된 powerful한 "힘"을 과시하며 impartation(전이; 안수)이라고 전수하며 팔아먹고 있습니다.

그런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란 그걸 "사용"하거나 부릴 줄 아는(또는 possessed) 듯한 자의 "능력"과 자기 義를 돋보이려는 궤휼의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가르치고, "계시와 예언의 은사"가 어쩌고, "환상의 단계"를 "활성화"하는걸 세미나로 전수한다니 참으로 기막힐 노릇입니다.

이런 뉴에이지-신사도 운동이 한인교회에 급속히 번져갈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을 한국에서 직수입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시작했지만 ("번영 신학" "빈야드" "IHOP 신사도"..) 한국의 유명 교회에서 "번영"하여 다시 미국의 한인교회로 역수입되며 여과없이 마구 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사도 운동이 변** "목사" 교회처럼 "번영"하고 "승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전술적으로 옳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궤휼의 무리들이 극성을 부리는 시기가 지나서 기고만장하여 발악을 할 때에, 얼떨결에 몰려다니는 많은 양무리들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릴지 누가 알겠습니까?
 
 교제 
선행 실천,사랑 행함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테레사
수녀를 예로 들어 신앙생활의 조율의 필요성을
지적해 주시다니 정말 탁월한 방법입니다.^^
율법적인 경건과 선한 종교생활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으로 인해 은밀하게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을 언급하고 그것이
사람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어지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지요.
그 후 니고데모는 변하여 공개적으로 낮에 예수님을
변호하는 변론을 하게 되고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자로서 행하게 됩니다.
영생을 가진 자로서 성령을 좇아 행하고 있는지
의와 거룩함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매순간 점검하고 조율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지요.
 9/12 17:13
 24.xxx.199
 
 
 thomas 
2010-09-11 21:39
 72.xxx.16
 《Re》정태성 님 ,
 "치졸하다"라는 표현이 님같은 분께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리고 님의 그 좁디좁은 마음을 달래느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함부로 같다 붙이는건 IHOP을 전전하며 배운 버릇입니까?

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인용해 놓고는, 자신의 넋두리가 그 말씀의 뜻인냥 풀은 蛇舌을 한 번 읽어보십시오. 

 >>자신의 자리를 떠나 위에 있는 권세를 넘보다가는
 루시퍼처럼 쫓겨나는 신세처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조심,조심, 또 조심하라고 했는데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니
 말씀은 뒤로 하고 세상 가는대로 따라 가다 집안들이 서로 머리될려고 싸우고,이젠 교회에서도 다투게 되니
 이 모두다 남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은 연고라
 누구를 탓하랴 마는 여자분들도 다시 한번 더 생각하셔야 됩니다
<<

 "이 모두다 남자들이.." 어쩌구 해 놓고는 슬그머니 혀를 돌려서 "여자분들"을 걸고 넘어지는 궤휼은 마이크 비클에게서 邪詐받았습니까?

 "크리스챤이 세상에서 잘못하면 머리되신 주님에게 욕이 돌아가듯이"
 <--이게 아니라, 님 같은 "남자"가 세상에서 세치 혀로 행패를 부리기 때문에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살아가도록 창조된 남녀간의 아름다운 세상이 오염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님같은 분과 성서에 "남녀평등"이 어떻게 쓰여있나 논하는게 시간낭비라고 여겨집니다. 열거하신 말씀들이 남자로서 여자 머리 위에 올라선 것이라고 이해되어지는한 우리는(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되지 못한 덜 된 인간임도 명심하십시다.

 
  김성훈 
뱀의 혀. 악마의 통밥.이정도는 되어야 적당한 비유입니다(vs cuba의 미사일 위기의 예).choi사모님정도의 지적정도는 '남녀평등'을 논하는 자리에서 훨씬 벗어나 있는 겁니다. She is comparable as 이순작가. 9/12 00:24
 69.xxx.27
 
  교제
  정신차려 이 친구야 노래하고 계시는 tm님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는 믿음의 방패
뿐 만 아니라 성령의 검 , 곧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과 님이 여기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강조하는 그 견해에도 성령을 통한 성경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
뿐 만 아니라 그대에게도 예외없이 해당된다는 것,
또 나름 열심히 행한다고 행했는데 예수님의
부인을 당한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시길..우린 지식이 없어서 망한 이스라엘
백성을 경고 삼고 또 미혹에 이끌리지 않도록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지식에서
자라가면서 조율되어져 행할테니 지식,조욜
필요없는 tm님은 아멘넷 밖에서 shine  9/11 23:41
 24.xxx.199
 
 교제 
 tm님, 정신차리기를 거듭 언급하시는데 정신
차렸다고 생각하는 그 정신이 바로 차려졌는지
다시 성경말씀으로 확인하고 조율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야고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니 행함
있는 믿음도 강조하고 지식,지혜의 말씀도 강조하고
신학,교리적 변론의 필요성도 인식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실천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바로 깨달아야 하며
대충 듣고 자기 생각대로 해석, 실천만 중요하다며
행하다가 하나님 뜻과는 반대방향으로 실천되어지는
경우도 있기에 수시로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때 블루 프린트 몇번 보고 다 알았다고
짓는 것에만 열중하는 건축자 없고 지도 수시로
확인하지 않고 항해만 해 나가는 선원 없습니다.
 9/11 23:56
 24.xxx.199
 
 교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제자삼아 가르치라
했기에 제자들은 가르쳤습니다. 또 그 가르친 것을
지켜 행하게 하라 하였기에 어떻게 행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행하도록 서신서에
권면하고 직접 본을 보여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이 기독교 변론에 능했다고 입만 살았고
실천은 부족한 사람이었는지요.
바울은 몸으로도 행해야 할때는 몸으로 행하고
입으로 변론해야 할때는 말로 변론하고 글로
지적하고 가르쳐야 할때는 글로 그리 하였습니다.
어디서 입을 열고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그것들을
조정해야 하는지 지혜롭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tm님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말로
글로 서로의 견해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성경으로
조율하고자 하는 장소에 와서 행하자고 외칩니다.
 9/12 00:26
 24.xxx.199
 
 교제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말씀을 나누고
배우는 장소에 와서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정신차려 밖에 나가서 빛을 발하세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행하는 것이 더 하나님 뜻에 맞는지
따지지 말고 믿는다면 무조건 밖에 나가서 행하세요
라고 하며 그 말씀을 강론하거나 변론하는 자리를
무익한 신학과 교리 논쟁,탁상공론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파하고 밖으로 내몰고자 하는
행위로 생각되어지기도 합니다.
처음 한 두번은 신학 교리 변론에 물리고 그것의
유익과 긍정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면만을 보는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
행함을 강조하는 것 일리도 있으니 이해하자
싶었는데.. 정신 못차린 사람들의 말장난으로 매도하는
그 말장난에 동참이유는?
 9/12 00:44
 24.xxx.199
 
 교제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 나름 정신없이
분주한 마르다와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한
마리아 자매가 있었는데 누가 나와 일하지 않고
앉아서 말씀듣는 마리아를 못 마땅해 하고
불평하였지요. 예수님입니까? 마르다입니까?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다고
불평한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답변
하셨는지요?
혀와 입으로 말하고 논할 때와 장소가 있고 몸으로
행할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때.장소 분별 못하고
행하자고 외쳐대는 것은 바른 행함이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배고프지는 않으나 옷이 필요한 사람에게
옷은 주지 않고 밥을 주면서 행한다고 여기고
반대로 옷은 필요없고 배가 고프니 밥이 필요한데
옷이 필요하다며 옷을 추고 열심히 선을 행하고
사랑하였다 착각하는 경우  9/12 00:58
 24.xxx.199
 
  교제 
어머님께서 자식인 당신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가르치려 하실때에도 남자,여자 따져가며
그리 말대답하시고 거부하셨는지...사라의 머리인
아브라함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리 하라 하셔서
아내의 말을 들었지요.(창 21:9-12)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선정하게 된 요시야 왕은
유다 왕국의 미래와 심판을 면할 방법을 찾기 위해
남자가 아닌 여선지자 훌다를 찾고 그녀에게 예언을
받았습니다.아볼로에게 도를 가르친 자가 남자
아굴라 뿐인지? 성경이 브리스길라를 아굴라
보다 먼저 언급하여 기록하였으니 남녀간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인지?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자를 남녀 가리지 않고 쓰시고(사 4:4) 남종, 여종
차별없이 성령부어 주신다는데 남자로서 불만있음? 9/11 19:36
 24.xxx.199
 
 교제 
 사도 바울의 순교에 대해서 예언한 자들이 남자인지?
교회의 공예배시 적용되어야 할 구절을 들고
나와 여자는 아무때고 잠잠하라고 입을 막고 싶으신
진정한 이유가 질서를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님의 사사로운 감정때문입니까 ?
님이 취하고 싶은 구절만 취할 것이 아니라
<그러나 주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임암아 났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전 11:11-12>
그리고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앞에
우선적으로 언급된 것이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입니다. 그 잠잠하라는 말씀이 고전
14:28절과도 연결되는 것이니 해석을 바르게 하셔서
적용해 주세요. 9/11 19:46
 24.xxx.199
 
  돕는은혜
2010-09-10 17:02
 74.xxx.215
 《Re》정태성 님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물을 것이 있으면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으라는 성경구절도 있는 것 같던데?

하나님은 여자를 만들 때 돕는 배필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돕는다는 의미는 남자들이 얼마나 부족한자임을 깨달으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별똥별님은 이곳에 바른신학, 바른교리, 바른생각으로 부족한자들을 바르게 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크리스쳔은 자기 스스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철하게 깨닫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간구하는 자입니다.

정태성님.  하루살이가  하루가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는 것과 와 영생을 얻은자가 세월을 아끼는 것의 차이는 너무도 큰 것입니다.

세월을 아껴서 열심을 내어 주를 섬기는 자에게 불평하는 일을 그만두십시오. 생명의 주권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김성훈 
2010-09-10 03:04
 69.xxx.27
 《Re》thomas 님 ,
A poem by Rudyard Kipling

 ***
 The Stranger within my gate,
 He may be true or kind,
 But he does not talk my talk—
I cannot feel his mind.
 I see the face and the eyes and the mouth,
 But not the soul behind.

 The men of my own stock
 They may do ill or well,
 But they tell the lies I am wonted to,
 They are used to the lies I tell.
 And we do not need interpreters
 When we go to buy and sell.

 The Stranger within my gates,
 He may be evil or good,
 But I cannot tell what powers control—
What reasons sway his mood;
 Nor when the Gods of his far-off land
 Shall repossess his blood.

 The men of my own stock,
 Bitter bad they may be,
 But, at least, they hear the things I hear,
 And see the things I see;
 And whatever I think of them and their likes
 They think of the likes of me.

 This was my father's belief
 And this is also mine:
 Let the corn be all of one sheaf—
And the grapes be all of one vine,
 Ere our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
 By bitter bread and wine.
 
 
 thomas 
김성훈 님, 제가 1.5세도 아닌데 주제 넘게 이런 말을 일반적으로 해버렸다고 반성을 좀 하고있습니다... 제 자식도 2세지만 전 요즘 이들의 신앙생활을 지켜보며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시는거라고 믿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실천방안 뿐만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대안이 전 교회적으로 필요합니다. 일단 신사도 운동같은 무리들에게서 떼어 놓아야 한다는건 확실합니다. 저도 제가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이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근데 화염병은 뭐에 쓰실라고?^^*
 9/10 00:35
 72.xxx.16 
 김성훈 
 일단 신사도가 다수가 될 것같습니다. 원하시는 분이 많고 도 공급하시는 분이 많으시니까요,
어떤 구체적인 실천방안 뿐만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대안이 전 교회적으로 필요합니다. " 동의 합니다. 근데 당장,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네요. K group 'Rmble Fish'의 smile again 이나 들읍시다. 9/10 02:59
 69.xxx.27
 
정태성
2010-09-09 20:44
 121.xxx.246
 사모님이시면서도 논리 정연하게설명하시니 대단하십니다.
 
로뎀나무 
2010-09-09 14:11
 71.xxx.100
 tm  신앙의 조율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건지 가르쳐 주시면 좋겠네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조율은 들어본 적이있는데, 신앙의 조율은 무척 생소합니다. 시계는 수리한다고 하지요, 조율한다고는 않더라구요. 신앙은 수리는 않되나요 ? 꼭 조율을 해야하나요 ? 신학교리 전문가에게 한수 배우기를 원합니다

_  tm 님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분입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이 길고도 자세하게 신앙의 조율을 정성드려 쓰신 글 아래에서 신앙의 조율에 대해서 가르쳐 달라니 한마디로

  " 말씀(語) 아닐(不) 이룰(成) 말씀(說)- 어불성설" 이라는 한자숙어가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또 누구나 일반적으로 아는 사실들을 혼자서만 아는척 강의를 하시니 이번에는 그야말로 "어벙벙"합니다.

    간만에 이곳에 와서 tm님의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보게 되니
    마음이 혼잡합니다.
   
    칼럼니스트들은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작성하여 올립니다.
    그런 분들의 글은 전혀 보지도 않고 그 글밑에 , 그 글과 상관없이
    자신의 똑똑함을 뽐내는듯한 이런 글을 올리시는것을 중지하시길 바랍
    니다.

    신앙의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 이전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실 필요가 있는 분입니
  다.
 
 
  교제 
실질적 조율자가 누구겠습니까? 성령이지요
조율의 기준은 바로 성경말씀이겠지요.
방대한 성경말씀을 가지고 규모있게 조율 원리를
세워가고자 하는 것이 신학이고 정립된 조율원리가
교리이구요. 신학과 교리의 다름과 틀림에 대한
이해는 정통 복음서들이 기록 목적과 주제에
있어서는 통일된 반면 그것을 기록한 저자와
수신대상에 따라 관점,표현상의 차이(다름)
거짓 복음서(틀림)도 존재하는 것을 참고,
바르게 조율되어진 악기가 정확한 소리를
내어 조화롭고 아름답게 연주되어질
수 있듯 하나님의 사람들도 각기 엉뚱한 소리를
내지 않고 엉망으로 연주되어지지 않도록
성령으로 성경말씀을 통해 마음과 행동이
바르게 조율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율사는 조율하기 전에 물론 수리도 하구요.
 9/10 01:23
 24.xxx.199
 
  교제 
정답을 아신다고 여기면 넷상에서 혀로 질문하지
말고 입으로 말 섞고 장난하는 듯한 변론 중지하시고
tm님이 생각하신 정답대로 몸으로 아멘넷 밖에서
행하시면 되는데 왜 머리로 아는 그것을 가슴으로
행동으로 실천을 못하시는지요.
tm님의 믿음으로 행하는 표본이 바로 여기서
입으로, 혀로, 말로 "행동하는 신앙" 주창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님의 논리대로라면
그것은 실천하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 신학 ,
자기 입장,자기 주장이 맞다고 변론,논쟁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씀드렸는데..
물심양면적,실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주변에서 보면 말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변론하지 않고 일단 내가 가진 것으로 내
할 수 있는데까지 도아주고 살고자 하니
tm님도 그리하시면 됩니다.  9/11 23:10
 24.xxx.199
 
thomas 
2010-09-08 22:12
 72.xxx.16
 "번영신학"이란 말에서 prosperity는 C^^ 목사님과 관련되어 있음이 옳습니다. 그래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삼박자구원"에 근거가 되는 말씀을 그가 얼마나 그릇되게 이용했는가를 알아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1:2)
 <Beloved, I pray that in all respects you may prosper and be in good health, just as your soul prospers.> (NASB)

아래 교제님이 퍼주신 대담에서, 요즘에는 시대의 유행에 맞도록 "삼중구원" 또는 "전인구원"이라 한다고 강변하는 K** 목사님의 설명도 있습니다.

우선 교제님이 지적하신 대로 "prosper"라는 말은 신약성서에 세 곳에서 나옵니다. 요삼1:2 <잘됨; 잘 되고> 롬1:10 <좋은 (길)> 고전16:2 <수입에 따라 as [God] hath prospered him (KJV)>입니다.

아래 대담을 나누신 다른 분이 "영혼구원"이 먼저고 그 다음에 이런 "복"들은 따라오는 것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하신 반면, K^^ 목사님은 "삼중" 또는 "전인"적 구원이니까 구원이란 말엔 그 "복"도 함께 굴러들어온다...뭐 그런 뜻이라 합니다.

 (1) 우선 그 "삼박자" 또는 "삼중"이란 말은 틀린 말입니다.

영문성서에도 그 구절의 구조가 보이고, 헬라어 원문을 보면 쉼표까지 찍어줘서 "2박자" 거시기임이 분명합니다.

그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에서 두가지가 쓰여있지 않느냐고 누가 반문하신다면 대답은 이렇습니다.

 (ㄱ) 유대인들은 반복으로 말하기와 과장되게 말하는게 그들의 문화입니다. 히브리어에 built-in되어 있습니다.

반복으로 말하기에 관하여는, 우리말도 그렇지만, 히브리어 표현에는 비교급과 최상급 같은 표현이 따로 없고 같은 말이나 내용을 반복하는 회수로 강조합니다. 두 번 반복하면 비교급이 되고 세 번 반복하면 최상급이라는 뜻이 됩니다.

히브리어에 영어의 비교급과 동일한 비교급이 있다는게 아니고 굳이 비교급을 말하자면 그렇다 이겁니다. 우리(전통)말에 어디 비교급이 있습니까? 춘향뎐을 읽으면 이도령이 <최고>로 좋아용~하는 말이 있을까요? 한문에도 잘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강조할 때 쓰이는 어조사는 여럿 있어서 그런걸 활용해야 합니다. (전 공자-맹자의 글을 말하고 있지 현대 중국어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요삼1:2의 말씀에 비교급이 사용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반복이 잘 나타난 성경말씀의 예는 시편18장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말을 좀 과격하거나 과장하여 표현하기를 즐깁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차라리 외눈박이로 천국가는게 낫다..

오리겐은 그 빼낼 눈 한쪽이 왼쪽 눈이냐 오른쪽 눈이냐 그런걸 축자적으로 따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Marcion파의 성경해석에 대한 경고). 그러니까 제 장모님 말씀처럼 "개떡같이 얘기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라는 뜻이지요?

요지는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에서 육체가 건강한 것은 범사에 잘되는 것에 포함해서 이해해도 되겠다는 말입니다. 그걸 <영혼이 잘됨> 같이 중차대한 사항과 동등하게 병행으로 고려할 것이 전혀 못됩니다.

 (ㄴ) 더우기 이게 인사말에 나오기 때문에, 범사에 잘되는게 돈 많이 버는 것이고 강건한 것은 몸이 건강함을 뜻한다고 굳이 둘로 나누어서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ㄷ) 요즘은 "삼중"이니 "전인"이니 하며 둘러대지만, 그 "삼박자"란 말만 보아도 C^^* 목사님의 鄙陋한 성경해석의 일단을 보는겁니다.

 (2) 구원에 <범사에 잘됨> <강건[건강]>이  동시적으로 따라온다는 말을 계속 주장하면 이는 크게 그릇된 행실입니다. 더우기 그걸 목사님으로서 줄기차게 강변하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구원이란 (1) 죄로부터 해방됨deliverance (2)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화해]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키며 (3) 우리에게 영광의 소망(골1:27)을 회복시키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됨에는 세가지 측면이 있는데, (1)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사실로부터 해방됨 (2)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됨 (3) 더러움과 부패함 그 자체인 죄의 본성으로부터의 해방됨을 뜻합니다. - 로이드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시밥에 불과한 웰빙을 마치 하나님의 구원 역사인냥 혼합시키는 언행은, 조나단 에드워드의 말대로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놓인 죄인들"의 처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일 것임을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이 말세에 그러한 속보이는 삼중축복이니 오중 축복이니 허튼
 소리말고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라고 하고, 이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굳은 믿음을 가지라고
 격려하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 것입니다."

번영신학-뉴에이지-신사도 운동하는 분파들(sect; heresy=who are "chosen" not to believe the correct belief [orthodox])이 한국에서 자기들이 여망하던 "부흥"하는 교회들을 실제로 보고는 그들의 "환상"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했을 겁니다.

이들이 1990년대에 풀러신학교에서 한국교회의 "번영"을 주제로 가진 회합에 여러 인사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자료가 방대한데 정리되는대로 계속 연원을 추적해 調律을 시도해보겠습니다.
 
 66.xxx.176
 
 Humble 
2010-09-08 17:37
 74.xxx.90
 홀리강 (홀리캥, HolyKang)님은 똑같이 계속 되풀이되는 스스로의 주장안에서 나오지 못하고있읍니다. 다 포옹하자는 주장아래 오히려 본인은 본이 되지 못하고있읍니다.

님이 여기저기서 계속 같은주장을 되풀이 안해도 많은독자들은 모두 님의 뜻을 이미 잘알고있읍니다.

이제는 그만 자제하시고 이글의 원래의 안주인님이신 사모님께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통한 진정한 대화를 계속 주도하시게 뒤로 물러나시는 것이 현명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홀리강  예 그렇게 하겠읍니다
죄송함니다 9/8 18:10
 173.xxx.249
 
 Humble  감사합니다. 9/8 18:13
 74.xxx.90
 
 thomas 
2010-09-08 13:11
 72.xxx.16
 NYT를 보다가 소위 "번영신학" 같은 기사를 읽게되었습니다.

 <The Gospel of Wealth>라는 제목으로 David Brooks라는 뉴욕타임즈 고정 칼럼니스트가 쓴 글입니다.

http://www.nytimes.com/2010/09/07/opinion/07brooks.html?src=me&ref=homepage

 "Americans have built themselves m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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