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로 만난 '철봉전투'의 두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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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ㆍ2017-02-0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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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첫 번째 일대일 전투에서 처절하게 패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일명 철봉 놀이터 전투였는데 한방 맞고 코피가 터졌습니다. 당시에는 코피가 나면 지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권투계에서 챔피언까지 했던 저력이 있었지만 한 방에 지고 말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것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의 추억은 쓸쓸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에 대한 생각도 잊은 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독교 서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던 그 친구가 책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바로 기독교 서점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초등학교를 생각하면 항상 한편에 남아 있는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한 순간에 쑥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여기 왜 왔냐고 묻는 것입니다. 책 사러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너는 여기 왜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도 책 사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인이면 으레 하는 질문, "무슨 일하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목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나도 목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서로에게 “너도 목사야”라고 말했습니다. 철봉전투의 승자와 패자가 목사가 돼서 만난 것입니다.
서로에게 “너도 목사야”라는 소리를 들을 때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습니다. 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친구가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이 친구가 3대째 모태신앙 집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3대째 모태신앙의 집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한 반에 있으면서도 그 친구 집이 3대째 예수를 믿는 가정인지 몰랐고, 저도 몰랐던 것입니다. 제가 그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교회 다니는 것을 서로 알지 못했던 목사의 모습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을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역사라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철봉 전투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 앞에 우리의 모습은 숨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도 다 동일합니다. 역사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면 파멸의 자리에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적인 신앙고백이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철봉 전투에서 서로의 신앙을 알고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너무나 비약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다 그렇게 싸우면서 크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저 친구는 결코 신앙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했습니다. 아마 친구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어떻게 행동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 있었을 것입니다. 철봉전투장에는 하나님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주일의 신앙과 월요일의 신앙이 다른 이원론적 모습을 의미합니다.
종종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마도 사회생활에 보탬이 될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사회생활에는 도움이 별로 되지 않고 단지 개인의 삶과 자녀교육에 조금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칫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오히려 덕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예 공적인 영역에서 믿음을 고백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씁쓸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은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적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인격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말씀하시고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의 현장에서 예수를 고백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당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자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게 살고자 분투할 때 교회가 자랑되어집니다. 공적인 신앙고백이 흔들리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교회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사적인 영역에 묻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영역에서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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