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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나 염세주의적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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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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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종교적인 발전의 목표는 역사적인 신앙을 순수한 이성의 신앙으로 해소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고 도덕적인 원리를 인격화한 이념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계시나 은총, 기적 등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계시나 은총이나 기적을 믿는 것을 이성과 자유를 마비시카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믿으면 공포와 희망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되어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종교를 완전히 도덕으로 환원시켜 버렸습니다. 그에 의하면 종교는 윤리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종교는 오로지 윤리를 증진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물론 기독교도 도덕이나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또한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으로 종교가 단순히 도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가 아무리 대 철학자라고 하더라도 총체적인 인간 이해에 있어서 지나치게 나이브하고 빈곤한 생각입니다. 대철학자의 사유가 이성과 합리에 고립된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칸트 이후의 철학자는 그 누구도 칸트를 비껴서는 철학을 할 수 없다고 할만큼 큰 영향을 끼친 그였지만 그는 종교와 관련된 역사적인 측면, 신비, 의례, 상징 등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칸트는 종교의 본질은 도덕이며, 또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 그에 의하면 종교인은 성인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의인은 없다는 성경에 의하면 완전한 인간인 성인군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종교는 '의지의 부정'을 구현해야 하며, 그리스도는 이러한 의지 부정의 '화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불교의 부처와 같은 인물입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에게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한 사신(死神) 철학자로 유명한 니체는 19세기 동시대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고 그의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의 작품을 읽고 연구했으니 신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신 철학자 니이체까지도 쇼펜하우어의 비극적인 철학과 비관적인 세계관을 비판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특징 짓는 이야기는 아마도 인간의 욕망과 성취에 대한 그의 주장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인간은 무엇을 얻기 위한 욕망과 그 욕망이 성취되었을 때 찾아오는 권태 사이를 시계추와같이 끊임없이 오가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욕망과 성취는 쇼펜하우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의 철학은 대체로 비관적이며, 인간의 삶을 욕망과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것의 무의미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은 욕망인 "의지(Will)"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었고, 이 의지를 욕망과 탐욕의 원천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또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과 결과적인 성취가 불만족과 고통을 초래한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욕망을 형성하며 이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고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성취되었을 때 찾아오는 행복은 일시적이며 영원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성취된 욕망은 곧 사람을 지치고 허망과 권태를 느끼게 하며,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면 다시 불만족이 시작된다고 설명하여 영원한 행복이란 불가능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이런 욕망과 불만족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 철학, 묵상 등의 활동을 통해 "자기 부재의 해소"를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그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쇼펜하우어도 행복해지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하였습니다. 인간의 운명이 세 가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하였는데, 인간을 이루는 인격, 인간이 지닌 재산과 소유물,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행복론에 대한 그의 아포리즘을 풀어 놓고 있습니다. 아포리즘(Aphorism)은 간결하고 의미심장한 문장 또는 짧은 글로,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이거나 또는 통찰적인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형식입니다. 아포리즘은 주로 글쓰기에서 사용되며, 한 문장 또는 짧은 단락으로 중요한 아이디어나 관찰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니이체와 쇼펜하우어가 즐겨 사용하였고 사람들은 아포리즘의 매력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성경적 인간관으로 보아도 자연 상태의 인간은 염세적이거나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신론 철학자들의 아포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전도서 기자가 인생을 반복적으로 헛되다고 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결여되었을 때의 인간 존재에 대한 전체 성경의 전제를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기독교인이라고 하여도 자신을 비롯하여 인생 일반에 대하여 전도서 기자처럼 느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일 수밖에 없는 인생에 일대 반전을 일으키고 경험하게 합니다. 흔히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여도 참 행복은 내세에서 누리도록 약속된 것이고 현실은 허무주의나 염세주의가 지배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신비는 종말에 얻게 될 그 생명과 행복을 현재의 삶에서 앞당겨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허무주의나 염세주의가 될 수 없는 것은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신비 때문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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