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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찾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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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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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성 브렌던의 여행’이라는 중세 전설이 있습니다. 수도사 성 브렌던(Saint Brendan of Clonfert)은 484년에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러 명의 젊은 수도사들을 이끌고 항해에 나섰습니다. 그가 찾는 곳은 '약속의 땅' 혹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그분의 뜻으로 태초의 낙원에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하나님의 뜻' 뿐이었습니다. 그는 코라클(coracle)이라고 불리는 버드나무 껍질과 소가죽으로 만든 아일랜드 호수에서 타는 전통 배에 의지해 망망한 대해 북대서양으로 항해를 떠났습니다. 부활절 아침이었습니다. 부활절 미사를 드리기 위해, 브렌던과 수도사들은 메스(mass)라고 불리는 버려진 섬에 상륙하였습니다. 브렌던은 섬에 상륙하자마자 제단을 쌓고 기도를 드렸고, 나머지 수도사들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불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요동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놀란 브렌던과 수도사들은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코라클로 달려갔고, 코라클에 뛰어오른 찰라 섬은 부스럭거리며 바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그건 섬이 아니었습니다. 수도사들은 섬이 일으킨 파도로 출렁거리는 코라클 안에서, 요동치는 섬은 육지가 아니라 거대한 고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래는 수평선으로 가물가물 사라졌습니다. 고래 위로는 그들이 땐 장작의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브렌던은 고래를 멀리 하고 또 다른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섬이었습니다. 섬은 '새들의 천국(Paradise of birds)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말하는 새가 있었습니다. 브렌던이 그날 겪은 일을 말하는 새에게 이야기하자, 그 새는 그들이 다시 그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브렌던 일행은 다시 배에 올라 노를 저었습니다. 고래는 멀리 가지 않았습니다. 친절하게도 고래는 그들에게 등을 내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고래 등에 상륙했고 미사를 드리고 아침식사를 마쳤습니다. 그 고래의 이름은 재스코니어스(Jasconjus)였습니다. 재스콘은 억겁의 시간 동안 높은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러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자기의 꼬리를 물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형벌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재스콘은 착한 고래였습니다. 브렌던 일행은 여행의 막바지에 그들을 공격하는 고래들과 힘겹게 싸워야만 했습니다. 브렌던의 항해가 유명해진 것은, 11세기에 나온 그의 항해에 관한 여러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배를 탄 기독교도들의 '믿음의 조상'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그가 역경을 딛고 낙원을 찾아 항해하는 모습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배를 탄 청교도들에게 일종의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청교도들이 살았던 마을인 미국 뉴잉글랜드의 포경선 선원들도 성 브렌던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 브렌던이 일찍이 아메리카에 닿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최초의 대서양 탐험가였을 것입니다. 성 브렌던은 아일랜드 교회에서 성자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브렌던의 항해는 유럽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약속의 땅'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인식이 그 후 수 세기에 걸쳐서 사람들 마음속에서 희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 의해 수없이 각색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브렌던은 성인들이 살고 있다는 약속의 땅 낙원을 찾아 여행을 떠나 7년 동안 거친 바다를 항해하였지만 끝내 그곳을 찾지 못한 채 바다를 맴돌다가 문득 내면의 눈을 뜨게 됩니다. 비로소 그는 약속의 땅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주위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 땅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이 바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 역시 후대인들이 덧붙이고 해석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경험이나 하나님 나라는 이 땅 어딘가에 있는 에덴과 같은 낙원을 발견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내면의 깨달음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벨기에 작가 메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의 동화 파랑새(L’Oiseau Bleu)의 주인공처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몽상을 하면서 현재할 일에 정열을 느끼지 못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인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인 파랑새 증후군 같은 것이 아닙니다. 파랑새 증후군은 직장인이 겪는 노이로제의 일종으로 신경증을 말하며 욕구불만, 갈등,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긴장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울증의 증상으로도 나타나는데, 모든 일이 허무하게 느껴져 권태를 느끼며 무기력해지고 자책하며 자살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증세에 빠지면 가정이나 직장을 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떠나는 사람들은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어딘가에 파랑새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은 동화 속의 주인공이 결국 집에 돌아왔을 때 바로 집 안의 새장 속에 파랑새가 있었다는 사실, 즉 파랑새는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파랑새는 행복의 상징이고 파랑새의 꿈은 행복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성경이 가르치는 삶의 의미와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는 이 땅 어딘가에 있을 낙원을 발견하므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파랑새 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발견하는 내면의 행복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경험은 은폐된 사물의 의미를 발견하는 시인의 깨달음처럼 이해되고 경험되기도 하지만 관념적이거나 단순한 내면의 깨달음이 아니라 구체적 역사와 신비롭게 융합되어 있습니다.

흔히 기독교를 설명할 때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자연종교와 계시의 종교인 기독교가 출발이 다름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자연종교는 인간에게서 출발하는 것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인간에게서 출발한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는 기독교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수 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존재라고 가르치면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는 데서 우리는 매우 당황스러움과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논리적 모순에 대해 아무런 부담이나 거리낌도 갖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는 논리와 합리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계시는 이해의 대상이기 이전에 믿음의 대상이지만 그런데도 믿는 자에게 이해를 촉구합니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그대로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참 신앙은 이 땅 어딘가에 있는 낙원을 찾는 순례도 아니고 실존주의적 내면의 발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 찾는 일을 게을리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처럼 성실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시 14:2, 롬 3:11).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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