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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이방 종교와 기독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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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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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초기 한국교회는 교회 건물을 예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도 시골에서는 교회 건물을 예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예배당을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산업화로 인한 이농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도시에 개척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면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배당을 교회라고 부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예배당”은 그 뉘앙스가 조금은 촌스럽다고 생각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예배당”이라는 명칭의 어감보다는 “교회”가 더 현대적 감각에 맞고 세련된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으로 추측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당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느낌과 호감에 따라 각자가 원하는 대로 불러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은 많은 기독교인이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무의식적으로 교회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교회 건물 즉 예배 처소에 대한 명칭을 ‘예배당’이라고 현판을 붙인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목회자와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라고 지적을 하면 구약적 의미의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라는 뜻으로 성전이라고 부른다고 궁색한 변명을 합니다. 심지어 예배하는 것을 제단을 쌓는다고 하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있습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당연히 예배하는 것도 제단 쌓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하고 예배하는 것을 제단을 쌓는다고 하는 이들은 심리적으로 그런 용어가 더 거룩한 것 같고 신령한 것 같고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요즘 로만 칼라 또는 클러지 칼라, 목회자 칼라라고도 부르는 소위 성직자 복장인 셔츠를 입는 목회자도 부쩍 눈에 띕니다. 갑자기 로만 칼라 셔츠를 입고 계면쩍은지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변명을 하기도 합니다. 다분히 구약 적이고 또한 이교적인 용어와 명칭들을 선호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의 진정한 깊이와 권위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도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영적 권위가 그런 외적인 것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익히 잘 알고 있었고 종교 개혁자들은 잘못된 용어와 비언어적 상징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성경 계시를 왜곡하는가를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일상적인 용어도 잘못 사용하면 사회적 소통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전문 용어를 잘못 사용하게 되면 그 전문 분야가 왜곡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기독교는 사회학적으로 말한다면 전문 분야 중에서도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 이성의 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절대자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 개념이나 용어 선택과 사용에 있어서 그 어떤 전문 분야보다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계시의 바른 용어 하나에 담겨 있는 내용은 너무나 엄청나고 심오하고 그 영향력이 지대하므로 잘못된 용어 하나가 일으키는 폐해 또한 심각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다 믿지만 '창조'를 '제조'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고 “생산”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창조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제조'이지만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창조를 '생산'으로 해석하고 믿어서 많은 폐해를 초래하였습니다. 창조가 제조라고 하면 목수가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목수와 책상은 존재가 상이하지만, 생산이라고 하게 되면 소가 송아지를 낳는 것과 같아서 소와 송아지가 동질이 됩니다. 창조를 생산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창조물과 창조주를 마치 소와 송아지의 관계처럼 동질로 이해하게 되어 하나님을 범신론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범신론(pantheism)은 창조 세계와 구별되는 인격신이 아닌 우주, 세계, 자연의 모든 것과 자연법칙을 신이라고 믿는 사상입니다. 그 사상에 따르면 신과 세계는 하나인데 세계 안에 신이 내재하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화적이고 이방 철학이며 세속적 종교관이자 예술적 세계관입니다. 이러한 사상과 이념을 만유신교, 또는 만유신론(萬有神論)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기독교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이러한 범신론적으로 이해하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그릇된 신관으로 자연을 신성시 하여 개발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였습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하나님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지적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유일한 신이기 때문에 복을 주시는 분이지 복을 비는 분이 아닌데 복을 빌어달라는 뜻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매우 이교적인 신관에서나 가능한 표현입니다. 희랍 신화나 다신교나 이방 종교에서는 그들의 신에게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위가 낮은 신은 높은 신에게 복을 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자는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기독교를 다신교로 변질시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이들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새 필기도구를 사용했을 만큼 주의하였던 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이름을 오해하거나 왜곡하거나 망령되게 부르고 사용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기복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그와 같은 용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것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된 하나님을 범신론적으로 이해하거나 우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이들은 바로 분별 없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입니다. 단어와 용어와 명칭이 곧 사상이고 이념이고 학문임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잘못 사용하는 비성경적인 용어나 명칭은 사소한 것이라도 주의하여 고치고 개혁해야 합니다. 범신론이 강한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신이기 때문에 마른 멸치도 신이고 하나님도 신이라는 면에서 마른 멸치와 하나님을 동격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언어와 용어는 사상과 철학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바른 용어와 명칭을 사용함에 있어서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말과 언어와 명칭은 행동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바른 진리와 바른 용어를 강조하여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바른 행동이 나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찍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하여 교회는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며, 하나님의 창조적인 의도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우주론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상반되는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태양 중심으로 공전하고 다른 행성들도 태양 주변에서 공전하고 있음을 제안한 지동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지동설을 1543년에 출판한 저서 "천구론"에서 밝혔지만, 당시에는 천문학계나 교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7세기에 와서 갈릴레오가 이 지동설을 지지하자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지동설이 기독교 교리와 상반되는 것으로 여기며,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천문학 모델을 지지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지동설을 이단론으로 판단하고 코페르니쿠스를 비난하였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교회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지동설이 기독교 교리와 상반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교회 내에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지지하면서 교회와의 학파적인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갈릴레오는 이단자로 판결받아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기독교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 천문학 모델을 기반으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며, 태양과 다른 천체들이 지구 주변에서 움직인다는 우주론을 따랐습니다. 따라서 갈릴레오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지지는 기독교의 교리와 상반되는 것으로 여겨져 교회와의 학파적인 논쟁을 겪게 되었으며, 결국 1633년에는 교회에 의해 이단자로 판결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지지받는 바가 되었으며, 1992년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에 대한 잘못된 대우에 대해 사과하였습니다. 교회는 359년 전에 "갈릴레오에 대한 잘못된 대우에 대해" 사과하였습니다. 교회가 하나님과 창조물에 대해 잘못된 지식과 생각을 하는 것이 하나님과 인류에 대해 얼마나 무서운 죄가 되는지를 알아야 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시 50:21,22)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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