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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이방 종교와 기독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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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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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고대 로마에서는 황제를 신으로 섬겼는데, 황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공인하게 되자 고대 로마의 이교 문화의 각종 관습이 기독교 안으로 물밀 듯이 들어왔습니다. 외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진 고난과 핍박을 받던 위치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기독교 신앙은 합법화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그때부터 로마 제국 안에서 기독교는 유대교나 그 어떤 이교보다도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위상은 최초의 기독교 황제인 콘스탄틴이 전 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가 된 위상과 깊이 연계되어 상승하였습니다. 이런 변화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보았고 콘스탄틴은 그들을 구출하러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라고 생각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이는 곧 황제의 위상과 로마 제국의 위상이 기독교의 위상이 된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안으로는 교회 본연의 모습인 친밀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운 의식과 권위가 강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가 형제요 자매인 친밀하고 열린 교제는 사라지고 회중은 화려하고 엄숙하고 권위적인 제의적 예배와 그 예배를 주도하는 구별된 성직자들을 바라보는 관람자로 변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교회는 끊임없이 권위와 구별과 거룩함을 강조하고 상징하는 제도와 물건들을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높이는데 교회 건물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거대한 규모와 신비스러운 상징물로 채워진 교회 건물은 외적 위압감과 종교적 신비감으로 회중을 압도하였습니다.

인류 문명은 마치 바벨탑의 선례를 따르기라도 하듯이 하늘 높이 탑을 쌓고 뾰족한 꼭대기가 달린 건물 구조를 선호하였습니다. 바벨론과 이집트 사람들은 불멸을 지향하는 신앙을 반영하는 오벨리스크(ὀβελίσκος)나 피라미드를 세웠습니다. 오벨리스크에는 전승을 기념하거나 왕의 위업을 과시하는 문장이나 모양을 새겼는데, 이는 태양 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태양신이나 태양 여신은 태양이 종교적 숭배와 신앙의 대상으로 신격화되어 형성된 신으로 인간이 사는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대개 태양신은 인간이 경외감을 느낀 태양의 힘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개기일식처럼 태양이 사라졌을 때에 대한 신화 또는 전설이 많은 문화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탑을 하늘 높이 쌓는 것은 신과 가까워진다는 종교적 의미와 그와 같은 종교심을 권위의 토대로 하여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지배적 절대 권위를 행사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 철학과 문화에 오게 되어 건축양식의 방향이 위를 향한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철학과 사상이 민주주의와 인간 평등을 강조하는 것과 깊은 관련성의 특징을 갖게 됩니다. 종교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문화에 의해 종교가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의 문화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등장과 함께 건물 위에 뾰족한 꼭대기를 얹는 관습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비잔틴 시대가 저물어갈 즈음 가톨릭 교황들은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에서 영감을 얻어 로마의 모든 대성당의 외부와 모퉁이에 뾰족한 꼭대기를 얹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건축양식의 선이 가진 특징은 그리스 건축양식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힘써 올라가는 것을 암시하는 수직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딕 건축가들은 수직에 강조점을 두고 모든 탑에 뾰족한 끝을 첨가하였습니다. 그러한 건축양식이 창조주와 연합하려는 인간의 열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탑들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중세 교회 건물의 뾰족탑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 교회들의 특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후에 청교도들은 그들의 선배인 가톨릭과 성공회보다 훨씬 더 단순한 교회 건물을 지었지만, 뾰족탑은 그대로 보존하고 그것을 신대륙으로 가져왔습니다. 뽀족탑의 메시지는 신약 성경의 메시지와 모순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늘로 높이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지금 여기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임마누엘이 성취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그를 믿는 우리는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뽀족탑의 메시지는 이런 복음의 실체에 역행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전에 없던 건축양식을 교회에 도입하면서 지도자들은 교회 건물의 뽀족탑 메시지가 성경과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뾰족탑 안에 사람들을 예배로 부르기 위한 종을 달아 놓았습니다. 이 탑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을 상징하며 창조주와 연합하려는 인간의 열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의미 부여를 하였기 때문에 그 후 수 세기 동안 탑들은 더 높아지기 위해 더 홀쭉해졌습니다. 교회당 전면의 탑의 수도 쌍둥이 탑에서 영국의 교회들은 한 개의 탑으로 바꾸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그들의 관리하에 들어온 수많은 예배당의 형식과 구조물과 장식들을 다 제거하거나 개혁하지 못하였습니다.

나중에 청교도들은 그들의 선배인 가톨릭과 성공회보다 훨씬 더 단순한 교회 건물을 지었지만, 그러나 뾰족탑은 그대로 보존하고 신대륙으로 그것을 가져왔습니다. 하늘 높이 솟은 뽀족탑이 창조주 하나님과 연합하려는 인간의 열망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성경 계시의 방법이나 목적과도 모순됩니다. 기독교가 일반 종교와 다른 점은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일관되게 강조되는 계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은혜인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는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신 사건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별명이 임마누엘인데 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하늘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발상은 계시 의존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 외 하나님께 가까이 가거나 함께 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매개물도 불가하며 성경은 그런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틴 이후에 교회가 신화와 이교의 영향을 받게 된 부분들을 성경 계시와 복음으로 검증하고 개혁하는 것은 현대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의 왜곡된 문화는 신앙을 왜곡시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나 매개물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거나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은 성경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콘스탄틴 이후에 교회에 첨가된 온갖 제도나 형식이나 사람이나 날이나 상징적인 물건들은 모두 신화나 이교 문화에서 온 것입니다.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의 저자인 미국의 문명사학자 윌 듀란트(Will Durant)는 "넓어져 가는 기독교라는 바다에 이교의 섬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힘에 의존하게 되면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잃게 되고 본래의 순수함에서 비극적으로 변질하게 됩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제도에 역행하고 이교 문화와 동화되는 것을 피하였는데, 콘스탄틴의 통치 아래서 교회는 이교 신전을 예배당으로 접수하고 이교의 토지와 자금을 교회의 소유로 만들었으며 모든 교회 자산에 대해서는 면세가 보장되었습니다. 그 결과 신앙은 변질하고 교회 건물은 거룩한 사당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교회 건물에 성전의 개념을 첨가하여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장소에 존재한다는, 어떤 면에서는 구약적이고 또한 이교적인 사상을 흡수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구약 시대 율법을 통해 주어진 신성한 제사장, 신성한 건물, 신성한 의식, 그리고 신성한 도구들의 효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영원히 소멸하였고, 계급이 없고 예법이 없고 의식절차도 없는 '교회' 라고 불리는 유기적 생명체로 대체되었습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 23)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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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ㅂㄷㄱ: 왜 전목사가 이단인지 많이들 모르시는 것 같네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루시퍼도 원래 천사였는데 하나님보다 높아지고 싶어하다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고 느부갓네살도 자신의 "능력과 권세" 와 "내 위엄의 영광"을 말하다가 (단4:30) 하나님이 치셔서 여러해동안 짐승처럼 살게 됩니다. 전광훈 목사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위에 자신을 높였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자기 아래사람인양 하나님께 "까불지마"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이단이 아니라고요??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라는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높이는 사람이 어떻게 목사자리에 계속 있고 또 많은 성도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나요?

정치는 자유입니다. 진보정당을 믿던, 보수정당을 믿던 그게 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정치적 이유로 전목사같은 사람을 지지하고 그의 교만을 눈감아준다면 당신은 정치적(?) 이유로 신사참배를 한 교단, 목사들과 다를 바 없고, 심판의 날에 반드시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책망"이라고 가볍게 표현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배신자이기 때문입니다. 제발들 정신 차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왜 정치에 자기의 영혼을 겁니까? 보수정당 믿는 것 괜찮지만 전목사와는 끊으시고 다시 하나님을 찾기를 바랍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ㅂㄷㄱ:어느 집사나 장로가 "하나님, 나한테 꼼짝 못해. 하두 말을 안들어서 내가 기도로 꾸짖었더니 할 수 없이 들어주시더라고" 하며 으시댄다면 어떻겠어요? 누가 장로가 되어 안수를 받으면서 "봐요, 내가 기도를 했는데 지가 장로를 안줄 수 있나? 하나님, 나에게 못까불어요." 하고 소감을 밝힌다면? 이런 사람들은 멱살을 잡고 교회밖으로 끌어내려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전광훈 목사의 교회만 빼고 말입니다. 그 교회는 목사가 본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나와도 교인들은 웃고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목사"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추앙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에서 이런 사람을 위해 집회 기사를 써주고 또 거기에 사람들이 응원의 댓글을 다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충만하여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말장난님의 댓글

말장난

닉 바꿨습니다.님께 대하여서요.
눈 닫고 귀막고 보고 싶고 생각한것만 말하고 표현하는시대는 지나갔어요.
아무리 님이 그사람 욕해도 그를 추종하는 사람은 눈하나 꿈적하지 안할겁니다. 그건 반대로 님도 똑같고 이런말 하는 저도 똑같은거구요.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보고 달리기 하는것 처럼 말이죠.
바리새인의 회칠한 무덤에 우리는 안들어갈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가지 마세요. 님도 저도 충분히, 그것도 넘칠정도로 충분히 그렇게 살아가니까요.
오해하지 마세요 "난 아니니까,난 안 그러니까" 라구요.  아시겠어요?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댓글의 댓글

ㅂㄷㄱ:댓구를 하고 싶어도... 뭔뜻인지 알아야 하지요... 그냥 계속 그렇게 짖으세요. 저는 딴데 보고 짖을 테니까. 오늘도 좋은 하루!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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