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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터가 흔들리고 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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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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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가정과 교회와 국가의 터를 허무는 사상과 정책이 직접 그것들을 공격하지 않고 명분이 있는 어젠다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다수의 국민은 그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수자 인권 보호 운동이 가정을 허물고 문화 지우기가 교회를 허물고 글로벌리즘이 국경을 허물어 일반인들이 상상도 못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와 다양한 젠더 인정 그리고 여권운동은 결국 전통 가정을 부정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문화 지우기는 온갖 그럴듯한 이론과 주장을 내세우며 교회와 기독교를 제거해야 할 문화로 지목하고 있고 글로벌리즘은 자국 중심이나 애국을 비판하며 국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가서 사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일찍이 유럽은 다른 종교를 다른 문화로 받아들이기 위해 국경을 활짝 열어 수많은 모슬렘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유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서구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문화가 아닌, 결코 타 문화와 상생할 수 없는 극단적인 종교의 특징으로 그들을 받아들인 국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여 그들의 방식으로 배타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기들을 받아들인 나라들을 힘들게 하자 뒤늦게 그들을 문화로 받아들인 나라들이 화들짝 놀라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동성애 문제나 여성 인권문제가 이미 60~70년대에 끝난 문제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동성애와 여성 인권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미국의 동성애와 젠더 그리고 여권 문제가 유럽보다 더 기괴하고 극단적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남녀 성을 구별하는 용어와 명칭까지 없애려는 해괴망측하고 극단적인 행태가 일찍이 역사상 어떤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치 질서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수의 미국인은 그동안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매력에 매몰되어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고 있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지금 유럽인들이 문제로 취급하지도 않는 이러한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는 미국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2022년 중간 선거도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는 입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깨어있는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무신론 사상과 정책들을 대항하여 싸운 결과 공화당이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원리에서 승리는 권력을 쟁취하거나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편에 서는 것입니다. 진리 편은 곧 하나님 편입니다. 문제는 온갖 명분 있는 어젠다를 무신론자들이 선점하여 그들 특유의 열정과 투쟁으로 여론을 압도하고 있고 정치계 언론계 그리고 학자들과 사회 각층의 기득권 세력들이 합세하고 있어서 다수의 국민이 바른 분별과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인들이 진정 국민과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지도자가 많이 선출되도록 기도하고 국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지금은 누구라도 기독교의 가치와 전통적인 가치 질서를 강조하면 비민주주의라고 비난받고 지도자가 전통 가치를 존중하거나 강조하면 독재자로 매도당합니다. 이번 미국의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책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만큼 경제와 외교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전략은 전직 대통령 클린턴과 오바마까지 나서서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가 공화당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근거도 뿌리도 없는 주장으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전략으로 선거를 치렀고 아직도 그런 뜬구름 잡는 듯한 주장에 설득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워싱턴의 기득권 세력 중에는 공화당, 민주당 구별할 것 없이 주고받는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들에게 정의와 법치와 나라와 국민을 위한 바른 생각과 선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국민이 올바른 가치와 진실을 분별하게 되면 정치적 야합을 위한 이합집산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세계 각국의 지도자 중에 기독교적 가치나 전통 가치를 강조하는 지도자는 거의 예외 없이 모두 서방 국가들과 언론들에 의해 독재자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헝가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헝가리에서 개신교 신자인 오르반 빅토르가 4번에 걸쳐 총리가 되어 헝가리를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기독교 가치와 전통 가치를 강조하는 나라로 세워가고 있습니다. 헝가리의 현대사를 보면 공산주의 인민공화국에서 공화국으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지금의 헝가리로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 8월에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막을 내리고, 1989년 10월 23일에는 신헌법(헝가리공화국헌법)의 시행으로, 다당제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국호를 헝가리 공화국으로 변경하였습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헝가리는 서유럽 국가들과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며 1996년에는 OECD에, 199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2004년 5월 1일에는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와 함께 유럽연합에 가입하였습니다. 헝가리 제3공화국의 국기에는, 파시즘과 나치즘 체제를 펼쳤던 화살십자당의 화살십자가 문장과 공산당 시대의 붉은 별의 문장이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나치 독일, 화살십자당,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일당독재에 의한 압제의 반발로서, 낫과 망치, 붉은 별의 사용이, 1993년의 개정헌법에 따라 금지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는 나치의 압력으로 추축국에 가담하기도 하였고 그 후 소련의 점령으로 공산주의 인민공화국의 폐단도 겪었으며 소련의 붕괴 이후에 급격히 친서방 노선으로 이행하면서 서유럽의 진보적인 정치와 문화에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르반 빅토르는 1998년에 총리가 되어 기독교 민족주의와 보수적 정책들로 헝가리를 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독교와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국가로 세워가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언론들 그리고 학자들까지 오르반 총리를 러시아의 푸틴과 함께 권위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정치 지도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상과 이념과 가치관의 말할 수 없는 혼란을 겪어온 국민을 기독교 민족주의와 보수적 철학에 기반한 정책으로 통치하는 과정에서 오르반의 정책들은 불가피하게 과도기적 강제와 독재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통치 방식이 권위주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러나 오르반을 일반적 의미의 독재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야당 세력을 무력화시키지도 않았고 다당제 자유 선거도 보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좌 편향된 민주주의 지수에서는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헝가리는 유럽의 어느 국가보다도 건강한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르반의 헝가리에서는 대학 내 젠더 학문에 관한 연구를 금지하여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인구 감소에 대한 정책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출산을 장려하여 아이 넷 이상을 둔 어머니의 소득세를 전액 면제하였습니다. 2021년 6월, 헝가리 의회는 미성년자들에게 동성애 묘사를 보여주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오르반의 정책에 대해 EU측은 “유럽의 수치”라며 비판하였습니다.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는 유럽연합에 이제 헝가리의 자리는 없다며 맹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헝가리 의회는 미디어법도 개정하여 ‘균형 잡히지 않고 혐오스러운’ 보도를 하는 방송, 신문, 온라인 미디어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진실성, 객관성, 균형성, 혐오성에 대한 판단은 감독기관이 하기 때문에 이 법은 사실상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악법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르반은 선거구를 조정하여 386명의 국회의원 수를 199석으로 줄여 정치와 재정의 낭비를 동시에 줄였습니다. 가치 질서와 국가 정체성을 허무는 어떤 이론이나 운동도 무분별하게 설쳐대지 못하도록 법으로 억제하고 있습니다. 미국처럼 정치인과 기업과 언론이 서로 봐주고 이익을 나누어 먹는 이익집단이 기생할 수 없는 정치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르반 총리의 정책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 지도자들에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어서 서방의 기득권층은 입에 거품을 물고 오르반을 반민주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독재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이나 국가의 정체성을 해치는 방종에 가까운 자유는 통제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과 가정과 국가를 해치는 자유가 되어선 안 될 뿐 아니라 자신과 가정과 국가를 세우는 자유여야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진정한 자유가 인간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을 통해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것을 통해 얻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지난 5월 오르반 총리 정부에서 가족부 장관을 하던 카탈린 노박이 헝가리 최초로 여성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1977년생으로 올해 45세인 그녀는 경제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해 헝가리어와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합니다. 2001년 헝가리 외무부에 들어가 EU와 유럽 문제를 전문으로 담당했고, 2017년부터 4년간 피데스 부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르반 총리의 상당한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 자녀를 둔 어머니로, 남편은 헝가리 국립은행(MNB)의 경제학자이며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고, 동성애 결혼에 반대합니다. 그녀가 가족부 장관을 지낸 10년 전만 해도 헝가리 인구는 감소 추세였습니다. 출산 건수보다 낙태 건수가 많았던 해도 있었습니다. 이혼율도 높았습니다. 노박이 시행한 정책들은 가정이 많은 자녀를 갖도록 장려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녀 네 명이 되면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게 했고, 양육 휴가로 3년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신혼부부 주택 구매를 위한 무이자 대출로 3만 달러를 받을 수 있게 했고, 아이가 늘어날수록 상환 액수가 줄어들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결혼이 83%증가했고 이혼은 69년만에 최저가 되고 낙태율도 떨어졌습니다. 가족 친화적, 가족 지향적 정책을 펼친 10년 동안 그녀는 꾸준히 생명의 가치를 강조하는 일에 힘써왔습니다. 그런 정책들이 헝가리 헌법에 추가되었습니다. 미국의 바이든이 임명한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이런 정책들을 반대합니다. 노박 대통령은 어머니는 여자이어야 하고 아버지는 남자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녀 성교육에 대해서는 부모가 더 많은 발언권을 갖도록 법을 개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플로리다주 주지사 드산티스나 트럼프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노박은 확실히 기독교 친화적이고 가족 친화적입니다. 헝가리의 이와 같은 변화는 유럽연합을 화나게 했고 바이든의 미국도 화나게 했습니다. 노박은 LGBTQ에 반대합니다. 이런 변화 때문에 유럽연합과 미국은 헝가리를 제재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 노박은 국제적 관심을 끌거나 다른 나라에 훈수를 둘 생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소위 미덕을 과시하려(virtue signaling)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헝가리가 유럽의 모범국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국가에 최선이 되는 일과 국민이 시킨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구 감소와 낙태 증가 추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결과 헝가리는 더 가족 친화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토대입니다. 이러한 헝가리를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이 비판하고 있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헝가리의 총리 오르반 빅토르와 카탈린 노박 대통령을 비난하고 비판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국가 경영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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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T님의 댓글

T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셨네요. 빅터 오르반을 진정한 크리스쳔 리더라고 빨아대는거,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 있죠 터커 칼슨이라고.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을 애국자들이라고 칭송하는데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아무리 공화당 하원장악이라고 빨아대도 바이든 삽질함에도 불구하고 상원 못 먹고 하원도 별 차이 없고 주지사 선거들은 민주당이 이긴건 바로 당신이 빨아대는 트럼프와 딸랑이들 때문에 함량미달 후보들 올려놓고 진건 알고 싶지도 않겠죠?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ㅂㄷㄱ 세번째깨달음: 먼저 저의 간증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저희 교회의 영상실을 맡아서 예배시간에 화면에 찬양 가사나 성경 구절을 띄워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예배당 맨 뒤에 있는, 2층은 아니지만 약간 높고 앞이 트여서 서면 예배당이 내려다 보이지만, 앉으면 아무도 저를 못보는 그런 구조입니다. 어느 주일 날, 예배시간에 저는 여느 때와 같이 영상실에 앉아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지난 한 주간의 저의 경건하지 못했던 삶과 더러운 죄악들 때문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사실 참 음란한 사람입니다…… 저같은 인간이 예배의 한 역할을 맡아서 그것도 설교 말씀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죄송스러웠고 예배가 저때문에 더럽혀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더이상 영상실 일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점차 고령화되가는 이 교회에서 이 일을 대신 맡아 할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마음이 너무도 무거웠습니다. 또 그 때,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따를지니” 하신 성경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더러운 죄들을 지으며 살았으니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내가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지도 헷갈렸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도 없고, 나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도 할 수 없으니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는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큰 슬픔과 혼란란이 저의 마음을 감쌌습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은혜들, 내 교회생활과 배운 것들 다 허사인건가 하는 어떤 절망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강단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그 한마디에 저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때 “저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도 없는거군요” 하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자, 제가 그동안 교회에서 했던 일들이 생각났고, 또 예전에 다니던 교회가 어려울때 평신도로서 끝까지 교회에 남았다가 결국엔 제 손으로 교회 물건들을 다 처분하고 마지막으로 슬프게 교회 문을 닫고 떠났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교회와 관련된 수많은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울컥하는 마음으로로 저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님이 아십니다. 제가 비록 더러운 죄인이고 음란한 인간이지만, 그래서 예수님 앞에 설 수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제가 자신있게 말씀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럼 이제 저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요? 저 예수님 사랑하는 것 맞지요?” 저는 아무도 안보는 영상실에서 혼자 울며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영상실 일을 내려놓으려 했던 제 기도는 “비록 제가 더러운 인간이지만 영상실 일은 계속 하게 해 달라”고 비는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가르침과 그 타이밍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제가 마침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없다고 슬퍼하고 있는 바로 그 때에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교말씀을 통해 대답하셨으니까요. 또 그 한마디 가르침으로 인해 저는 하나님이 제가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해주시고 위로해주신다고 느꼈고 또 자격없는 제가 그 은혜와 사랑으로 여전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또 교회 일을 하나 둘 내려놓으려 했던 저를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셨으니, 설교 중에 나온 단 한마디 말로 단번에 제 안의 많은 것들을 해결해주신 정말 위대하고 놀라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어쨌든, 저의 세번째 큰 깨달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ㅂㄷㄱ님의 댓글

ㅂㄷㄱ

ㅂㄷㄱ: 말씀에 반대하는 분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십수년젼에 저는 뉴스앤조이 같은 곳에서 활동했었는데, 어느 분이 교회에 대해 안좋게 쓰셨길래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구절을 찾아서 올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분의 대답이, "저는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였습니다. 저는 그만 말문이 막혔습니다. 성경에 적힌 그대로를 썼는데 그거에 반대하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나요? 1+2를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1x2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다 믿는분들이라고 생각하던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잘못되거나 굳어버린 생각을 말씀에 비추어 바로잡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말씀을 자기 생각에 비틀어 맞추려는 시도들을 참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 전 글의 댓글공방에서도 "말주변"이라는 분은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들어오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는 물론 존재합니다. 그런데 제가 계시록 3장의 "...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라는 구절을 제시했을때 이분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 아니시라고 강하게 부정하셨습니다. 한가지만 알고 그 것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려는 안타까운 케이스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구절을 보고 '아, 하나님께 이런 모습이 있구나'하고 자기 생각을 고치고 조정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강압적인 분"이라는 부분적 진실에 꽃혀서 성경말씀까지 부인하는지...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말씀으로 "나"를 고칩시다. "나"를 위해 말씀을 왜곡하지 맙시다.

말주변님의 댓글

말주변

ㅂㄷㄱ님이 저를 언급해서 한 말씀드립니다.제가 계시록의 그  말씀이 님이
생각하시는 그뜻만이 아니라구요. 님같이 성경을 보시는분들이 성경을 일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기의 입맛에 맞게(자기 형편에 맞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해하려 함으로서 줄곧 동일하시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왜곡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언제나 어느곳에서나 성경은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의 주인되심만을 말하고 있지 일개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따뚯하게 녹여주는 그런 생활지침서가 아니란 말입니다.
'"나"를 위해 말씀을 왜곡하지 맙시다." 라고 하셨지요....

이말은 님 자신에게 더 해당하는 말인 것입니다.성경을 나의 관점에서 보니 이런일들이 발생되는것입니다.주종관계가 명확히 서 있지 않으니 이런 말을 할수 밖에요 ㅠ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들어 오시지 못하나요? 정말로요?

그럼 우리가 내어 놓는 잘못을, 그것을 용서해주시는 분을 어떻게 주인으로 모시게 될수 있나요? 용서해주신다는것을 우리 마음으로 어떻게 알수
있나요? 우리가 흔히하는 죄의 나열 말구요. 그리고 "부르심을 입어 순종케 하시나니"라는 말씀은 어떻게 읽으시는건가요?

음성을 듣는자만 문을 여는겁니다. 언뜻보면 내가 여는것 처럼 들리지만
음성을 듣는자만 열수 있는겁니다. 음성을 듣는자는 성령을 받음자만이 가능한겁니다.
그냥 일반화 시켜서 내가 꼭 문을 열어야먄 들어오신다고 하면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한낯 인간들의 정도로 낯추게 되는겁니다.우리가 문을 열지 않으면 못들어오신다면 나의 파워와 그분의 파워가 비슷, 혹은 위란 말입니다.
바로 "신인 협력설"을 거드는게 되는것입니다.
저기 사랑에 푹 찌들어버린 라오디게아 교회에 충고하시는 거라구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그런사람들에게 하는 말임을 명심하시란 말입니다.
자기 사랑에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받아들일 여력이 남아 있지 않는다구요.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 주어야하는 분이고 나는 주님의 충성된 종이라고  착각하지 마시라구요. 우린 무익한종 같은 상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는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연명해야하는 자들이라구요.
그런 우리에게 강압적으로 찾아오신( 우상 만들어 팔던 아브람에게,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기드온에게 찾아오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란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신다면 성경을 정말, 천천히 다시 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인간에게 주는 도덕 윤리,교훈인지 아니면 생명책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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