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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AI가 자신과 같아질까 두려워하는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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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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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인간이 만든 컴퓨터는 인간에게 과히 혁신적인 편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일반인들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편리의 1,000분의 일1도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일반인뿐만이 아니라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컴퓨터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들조차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녹음기나 카메라가 있는 집은 많지 않았습니다. 굳이 '컴퓨터나 카메라가 있는 집'이라고 한 것은, 당시 그런 것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 집안에 하나를 마련하는 것도 특권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소풍이라도 가게 되면 나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친척이나 친구 집의 카메라를 빌려야 했는데, 당시 카메라는 고가품이라서 빌려달라고 하기가 여간 미안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라디오 전축 텔레비전 녹음기 같은 것이 다 희귀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하였습니다. 그때 논문이나 리포트를 쓰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가 고서나 빛바랜 신문철을 뒤적였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손바닥만 한 핸드폰 하나 가진 것이 그 당시 라디오 카메라 녹음기 전축을 다 가진 사람보다 부자입니다. 핸드폰 하나는 카메라나 녹음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서관이나 방송국을 소유한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진 셈입니다. 핸드폰 안에 수많은 번역본 성경이 들어 있고 고전을 비롯한 지금의 베스트셀러는 물론 분야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논문과 글들이 들어 있고 세계 석학들의 육성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동영상을 볼 수도 있습니다. 철학 역사 문학 음악 예술 영화 등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여러 분야의 탐구와 학술적 연구 논문과 결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핸드폰으로 침대에 누워서 또는 자동차 안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설교를 준비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가든에서 채소를 가꾸고 꽃들을 돌보며 뉴스와 음악과 강의를 듣기도 합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하고 고마운 컴퓨터를 개발하여 그 이기(利器)를 누리면서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컴퓨터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을 가축처럼 인공 자궁(인큐베이터)에서 재배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끔찍한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AI에 의해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한 인간은, 매트릭스 프로그램에 따라 평생 1999년의 가상 현실을 살아가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프로그램 안에 있는 동안 인간의 뇌는 AI의 철저한 통제를 받습니다. 인간이 보고 느끼는 것들은 항상 그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어 있고, 인간의 기억 또한 그들에 의해 입력되고 삭제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현실 속에서 진정한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매트릭스 밖은 가상 현실의 꿈에서 깨어난 유일한 인간들이 생존해 있는 곳입니다. 또한, AI의 인큐베이터에서 탈출해 인류의 구원자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모피스(Morpheus)를 리더로 한 일단의 해커들, 그들은 광케이블을 통해 매트릭스에 침투하고 매트릭스 프로그램을 응용해 자신들의 뇌세포에 각종 데이터를 입력합니다. 그들의 당면 목표는 인류를 구원할 영웅을 찾아내는 것인데, 그들은 AI 통제 요원들의 삼엄한 검색 망을 뚫고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 드디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그'를 발견합니다. '그'는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토머스 앤더슨(Thomas Anderson)으로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지만, 밤마다 네오(Neo)라는 이름으로 컴퓨터 해킹에 나서는 그는 모피스와 그의 동료인 매혹적인 여인 트리니티(Trinity)에게서 조심스레 매트릭스에 대한 단서를 얻습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매트릭스의 실체를 추적해 나가는 네오는 마침내 또 다른 숨겨진 세계, 매트릭스 밖의 우주를 만나 가상 현실의 꿈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AI에게 양육되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확인하고 매트릭스를 탈출한 네오는 모피스의 도움으로 컴퓨터 프로그램 훈련을 통해 사이버 전사로 거듭납니다. 한편, 모피스의 동료 중 사이퍼(Cypher)는 끊임없는 기계들의 위협과 공격으로 인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매트릭스 안의 가상 현실로 들어가기 위해 동료들을 배신합니다. 네오와 모피스 일행이 매트릭스 안에 잠입한 사이, 사이퍼는 광케이블을 교란해 그들이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올 출구를 봉쇄해 버리자, 네오 일행은 엄청난 괴력을 지닌 해커 제거반과 사투를 벌입니다.

또한, 관객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의 이름이 주는 감춰진 의미가 자못 궁금합니다. 우선 다른 인물들과 달리 주인공은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이는 그가 가상 현실과 진짜 세계 사이에 걸쳐있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그가 앤더슨이라는 이름 대신 네오로 불러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네오(Neo)는 '새로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neos'에서 파생한 접두어로 그가 신기원을 가져올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접두어가 다른 어근과 결합해 의미를 낳는 것처럼, 그는 혼자서가 아니라 동료들의 지원에 힘입어 실력을 발휘합니다. 저항군 지도자 모퍼스(Morpheus)는 그리스 신화에서 꿈의 신입니다. 현실은 컴퓨터가 빚은 허상이고, 네오가 빠져든 꿈이 오히려 진실이라는 걸 함축하고 있습니다. 어원이 어둠을 뜻하는 그리스어 'morphnos'라는데 이르면, 왜 그가 주로 검정 옷을 입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기독교 삼위일체를 뜻하는 트리니티(Trinity)라는 데서는 주요 인물 셋이 힘을 합쳐 승리하리라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을 잡으려는 세 비밀요원은 스미스, 브라운, 존스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을 붙인 건 인간 대부분이 가상 현실에 매몰돼 있음을 드러내면서, 그 가상 현실 체제의 편재성을 은유한다고 합니다. 배신자 사이퍼(Cypher)는 숫자를 의미하는데, 그는 중반까지 가상체제에 맞서는 전사로 활약하지만, 결국 숫자 효율을 숭상하는 그 디지털 세계로 돌아갈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컴퓨터 AI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 영화는 합리와 초월 그리고 과학과 종교를 뒤섞어 인간 상상이 닿을 수 있는 모든 두려움을 현실과 가상 현실을 연동시켜 그려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컴퓨터와 인터넷도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의 측면을 지니고 있어서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유토피아론과 디스토피아론으로 나누어집니다. 인간 생존의 절대 필요조건인 물과 불이 유용성과 파괴력으로 활용될 수 있듯이 과학인 컴퓨터도 유토피아론과 디스토피아론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지만, 물이나 불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가치 중립적으로 다만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에 따라 감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경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듯이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치 중립적인 것을 이원론적으로 구별하는 것은 유치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사탄이 하나님 나라와 복음에 가장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것이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원론은 초대교회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사탄이 사용할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그리고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하여 마치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 밖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교회가 지닌 고치기 어려운 약점입니다.

2016년 바둑 천재 이세돌 9단이 AI 알파고에 패하자 사람들은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희망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 분야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과 데이터 산업을 제시하였습니다. AI는 사람들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생산성과 효율성과 창조성을 다양한 응용 분야에서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기대와는 반대로 AI가 초래할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가능한 모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슈퍼 AI는 인간을 능가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쯤 그렇게 될 것인가?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는 로봇이 인류를 파괴하는 세상이 곧 닥칠 것인가?' 등...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와 타계한 인류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같은 우려를 나타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AI 전문가는 이런 위험이 가까운 미래에 닥칠 것으로 예상하지 않고 있습니다. AI 디스토피아론은 지나친 기우이며, AI가 이끄는 미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토피아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연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도 사실은 믿을 대상은 아닙니다. AI는 말 그대로 인간이 만들어 낸 지능일 뿐입니다. AI가 만들어 내는 미래 모습은 인간이 어떤 AI를 만들어 낼지, 인간이 만든 AI를 어디에 적용하고 어떻게 운영할지에 달려있습니다. 매일 우리가 체험하는 AI는 개인의 관심 분야와 쇼핑 패턴을 분석하여 가장 적절한 광고를 검색 화면과 소셜미디어 광고창에 자동으로 띄어주거나, 아이폰의 시리(Siri)와 아마존의 알렉사(Alexa)와 같은 인공지능 개인비서는 오늘 날씨를 묻는 말에 바로 답을 주며, 교통 상황을 파악하고 예측하여 밀리지 않는 경로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런 편익 뒤에 가려진 AI가 가져올 수 있는 폐해는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살펴서 예방과 대책을 마련하여 대응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게을러서 AI가 가져올 폐해를 예방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AI는 실제로 우리를 디스토피아의 세상으로 인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AI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친 염려와 두려움도 금물입니다. 두려움은 범죄의 결과이지만 죄를 지은 인간일지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일지라도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두려움 없이 사는 길을 거부하고 두려움을 안고 사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선택한 그 길에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온갖 것을 성취하여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의 길을 거부한 인간 자신이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창 4:13-1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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