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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 목사 "최고의 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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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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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세상 법은 죄질에 따라 중범죄, 경범죄를 구별합니다. 물론 구약의 율법도 죄의 경중을 따라 처벌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오면 죄의 경중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근본적인 재해석이 주어집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야보고서 2장 10절입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이 말씀은 죄의 경중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나 세상 어디에도 법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나 해석은 없습니다. 구약 성경은 여러 율법 중 하나를 범하면 하나를 범한 것으로 엄격하게 규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은 죄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유명한 동태복수법,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을 사랑이 없는 가혹한 처벌법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는 죄인에게 지은 죄 이상의 가혹한 처벌을 못 하도록 금하신 자비와 사랑의 법입니다. 율법에 대한 재해석은 시대에 따라 율법이 달라진다는 뜻이 아니고 율법의 본래 의미와 목적을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지만, 그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인간이 불완전하여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하여도 그 결과는 율법이 목적하는 것과는 반대의 결과에 도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후 300~700년에 북아프리카 지방의 주교였던 도나투스는 로마 교회의 부패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공공연하게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여 불법한 자들을 옹호하고 정의와 자비와 윤리와 도덕에 대하여는 가르치지도 않았고 설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자 개인뿐 아니라 교회가 정의를 추구해야 할 책임의 토대를 허무는 교리를 만들기까지 하였습니다. 교회는 부유한 지주들을 옹호하였고 땅이 없는 가난한 토착민들도 권력자와 부자를 옹호하였습니다. 도나투스는 그러한 로마 교회를 비판하였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이 도나투스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도나투스파 교회는 그렇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교회를 배반했던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고, 성경적 교회를 세우려고 로마 교회와 싸웠습니다. 도나투스파 교회로 불린 그들은 교회회원의 성결, 교회훈련과 치리(Church Discipline)의 엄수, 지역교회의 자치 독립, 문제의 여지가 있는 세례에 관하여는 재 세례를 시행하였습니다. 철저하게 바른 신앙을 부르짖던 그들이 로마 교회의 박해를 당하자 그때 마침 일어났던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율법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황에 대한 바른 이해와 판단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상황에 대한 오해나 왜곡된 정보를 믿거나 확산시키는 행위는 이웃에게 가하는 범죄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하여 교회는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거의 전제 독재 국가와 같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바른 판단도 하지 못하고 덩달아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러시아가 공산주의 국가이고 푸틴이 공산주의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러시아보다 지금의 미국 정부가 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가의 정체성은 미국이 러시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더 자유민주주의 적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바이든 정부는 많은 정책에서 사회주의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이름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지 실제로는 전제주의 독재 국가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세상 정치에 대한 몰이해는 핑계 할 수 없는 무지의 죄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별천지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자신이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현실 정부와 정책에 실제로 많은 영향을 받고 또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영적 직무를 유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물론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안의 신마르크스주의적 정책을 표방하는 진보좌파들은 거의 모든 좋은 사회적 문제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 인종 문제, 경제 문제, 환경 문제, 교육 문제, 에너지, 식량, 외교, 문화, 전쟁, 개인의 총기 소유 등 중요한 사회 문제를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기들만 그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듯한 코스프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총기 사고만 나면 총기 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마치 총기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개인의 총기 소유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총은 스스로 살인을 저지르지 못합니다. 총기 사고는 아무 데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쏠 수도 있고 계획적으로 쏠 수도 있고 정신질환자가 사고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헌법은 개인의 총기 소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그 법을 바꾸려고 합니다. 특별한 대형 총기 사고는 특정 지역과 상관없이 어디서나 일어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일반적인 총기 사고는 민주당이 주도적인 주와 도시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5일간에 시카고에서는 70여 건의 총격 사건이 일어나서 최소 11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쳤습니다. 전쟁터에서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장, 주지사,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반응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어떤 주간에는 한 주간에 50명이 총기 사고로 죽기도 하였습니다. 총기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총기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이들이 실제로 총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아니면 단지 정치적 이슈로만 이용하는지를 잘 살펴서 바르게 판단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후나 환경 문제는 거짓과 왜곡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사이비처럼 취급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름으로 정직하고 성실한 다수의 사람이 거짓 된 정보에 세뇌되어서 거짓이 참처럼 보입니다. 아마도 이런 문제가 바로 잡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국민과 대중은 어리석습니다. 정치인들은 그 어리석은 국민과 대중의 생각을 마치 하늘의 뜻이나 되는 것처럼 국민의 뜻, 국민의 뜻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다 정치적 이슈를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국민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치는 국민이나 대중이 어리석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국민을 하늘처럼 높이 받드는 것처럼 하면서 온갖 거짓 정보와 왜곡으로 국민의 권리와 안녕을 해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러한 사실을 깨우칠 수 있을까요? 아무라도 바른 생각을 한다면 깨우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교회밖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는 교회 밖에 모르는 듯 처신하는 데, 교회 밖에 모르는 것은 교회를 모르는 것입니다.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활동했던 청교도들은 경건주의 운동에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경건이 오히려 인위적이 되었고 결국 세속화되고 말았습니다. 극단적인 경건 운동과 세속주의가 끝에 가면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게 되는 것도 사랑의 동기와 목적이 결여 된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인간의 한계는 독재자와 기독교가 손을 잡는 역사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손을 잡았던 것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죄를 경중으로 나눕니다. 중죄, 경죄로 나누고, 심지어 지옥도 몇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알고 지은 죄는 중죄이고 모르고 지은 죄는 경죄로 구별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죄에 대한 그러한 구별을 철폐하셨습니다. 죄의 치명성의 차원에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궁극적 목적으로 볼 때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도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기에 왜곡된 정죄를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은 내가 자신에 대해 짓는 죄이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하는 것은 남에 죄에 대한 태도로 짓는 죄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짓는 죄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마음이나 정신으로 짓는 죄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짓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남이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아무도 모르는 자기 마음으로 지은 죄에 대하여 너그러운 반면 남의 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합니다. 남이 죄를 지으면 너무나 쉽게 정죄합니다. 이 정도는 불신자도 잘 알기에 대인 춘풍 지기 추상이라고 교훈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마 19:19에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바울은 이 가르침이 곧 율법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 5:14). 야고보는 이것을 최고의 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야고보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바로 이 최고의 법을 범하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최고의 법이란 곧 왕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최고로 중요한 법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으뜸가는 법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보다 더 큰 법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법이고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모든 법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 법 하나를 잘 지키면 다른 법을 다 지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롬 13:9). 이 최고의 법은 다른 모든 법을 판단할 수 있는 법입니다.

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그 어떤 법도 최고의 법, 즉 사랑의 법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Royal Law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신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도 결국은 이 사랑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명령한 것입니다. 이 사랑의 법에 생명이 있고 질서가 있고 복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법입니다. 가장 높은 법이라기보다는 가장 좋은 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법이라는 의미 중에 또 하나 의미심장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최고의 법은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지켜야 할 법입니다. Royal Law이기 때문에 왕이 지켜야 할 법입니다. 이 말씀은 높은 사람이 지켜야 할 법이라는 뜻입니다. 야고보가 가르치려는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명심해야 하는 것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입니다.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을 차별할 수 없습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차별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최고의 법, 즉 왕의 법입니다. 즉 높은 사람의 법입니다. 가진 사람, 배운 사람, 건강한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지켜야 할 법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급하게 집무실을 나오다가 서류 하나를 미처 챙기지 못하였습니다. 링컨은 수위에게 자기 집무실에 가서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좀 가져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수위가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가지고 오니까 링컨이 수위의 집무 의자에 앉아서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수위가 놀라서 ‘각하! 아니, 각하께서 왜 이러십니까?’라고 하였더니 링컨이 씩 웃으며 ‘자네가 내 일을 하니까 내가 자네의 일을 하는데 뭐가 잘못되었는가?’라고 하였다는 일화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다음부터 그 수위는 자기의 일을 힘들지 않고 보람 있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은 것은 자리가 높아진 것이지 사람이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라고 다 존경받는 것은 아니고, 부자라고 다 존경받는 것도 아니고, 학자라고 다 존경받는 것도 아닙니다. 야고보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하며 강조한 것은 높은 사람, 배운 사람, 남보다 나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지켜야 할 법이 바로 최고의 법인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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