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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평등의 문제4-히브리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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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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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지도자의 덕목 중 '섬김'이라는 개념은 성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지배와 통치의 개념 역시 하나님 형상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지배와 통치는 단순히 자기의 이익을 위해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를 돌보고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 아브라함은 스스로를 종이라고 하였고 겸손과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분명히 특정한 종류의 봉사, 즉 노예의 봉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을 위한 봉사에 예속된 존재입니다. 구약 성경은 외국인 노예와 히브리 노예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노예 노동이나 노예제 폐지를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정복한 성읍의 포로를 노예로 삼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신 20:10-11). 이는 이스라엘 이외의 국가 간의 일반적인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전쟁에 패하여 정복된 사람이 노예가 되는 것은 자비로운 혜택이었습니다. 고대에는 일반적으로 전쟁에 패하여 정복된 나라의 백성은 몰살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몰살당하는 것에 비하여 노예가 되는 것은 자비로운 혜택을 입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 정복 전쟁에서도 정복된 이들은 모두 죽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죽어야 할 형편에서 노예로 섬길 기회를 얻는 것은 실로 자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아이러니이지만 노예 노동과 노예제 허용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노예 노동과 노예제를 허용하시면서 노예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예제가 구약 신정 시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20:11-14절의 노예는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승리의 결과입니다. 노예는 정복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정복의 수단인 군대를 가능한 한 적게 유지하도록 하라고 하심으로서 그 정복이 초자연적으로 된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조치를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늘날은 그 어떤 나라도 고대 이스라엘의 언약적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근대 어느 국가에도 고대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승리를 약속하지 않으셨고 그 승리에 근거하여 노예를 취하는 것을 승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은 노예제를 금하라고 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은 성경 어느 곳에도 노예제를 지지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 폐지를 옹호하는 수많은 성경적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히브리 노예들은 언약의 구성원들 안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 여러 곳에 종에 관한 율법이 있습니다. 출 21:1-11, 레 25:39-55, 신 15:12-18이 히브리 종에 관한 법이지만 히브리 종과 주인의 관계를 단순한 노예 관계로 볼 수 없습니다. 비록 히브리 종을 팔고 살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레 25:39-40은 이 관계에서 주인이 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한 개인이 자신을 노예로 팔 수 있으며 또는 주인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히브리 종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개인이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을 팔 수 있고 가족을 부양하기에 너무 힘들면 스스로를 팔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주인은 히브리 종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팔고 살 수 있다는 면에서 히브리 종도 분명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위기는 히브리 종이 해야 할 봉사는 외국인 노예와 동일하지 않고 고용된 종과 같은 차원의 봉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히브리 종은 종으로 봉사해야 할 일정한 기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히브리 종은 여섯 해 동안 주인을 섬기다가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자유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출 21:2, 신 12:15). 히브리 종의 봉사할 기간이 끝나는 때는 안식년이나 희년입니다. 따라서 히브리 노예는 외국인 노예와 달리 해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그가 생산한 것까지 주인의 것이 되므로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가 길에서 노예 한 명의 값보다 비싼 금덩어리를 주워도 노예가 주운 금덩어리는 주인의 것이기 때문에 그 금으로 자신을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노예는 율법으로 봉사의 기간을 명하고 있으므로 영속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주인은 히브리 노예를 안식년이나 희년에 자유롭도록 놓아주어야 할 뿐 아니라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명령은 노예제를 실제적으로 극복하는 원리이고 노예 해방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는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입니다. 

 

사람이 가난하게 되는 것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불가항력적인 원인 때문일 수 있지만 게으름이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게으름이나 무책임 때문에 종이나 노예가 되었다면 노예로 봉사하는 그 기간은 도제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도제(Apprenticeship 徒弟)는 상인과 장인의 직업 교육 제도이며 젊은 세대를 업무에 종사시키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도제훈련을 통해 제자도 경력을 구축할 수 있고, 공공 기술 인증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도제는 고용주와 계약한 기간 지속적인 노동에 종사하여 그 대가로 기술을 배우는 것입니다. 영국의 도제 역사는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당시에는 14-19세의 젊은이가 5-9년간 도제에 종사하였습니다. 19세기에 들어 The City Ant's Guilds of London Institute의 전신인 Imperial College Engineering School에서는 도제 제도를 통한 직업 교육을 제공하여 기본적인 제작 기술(기계, 미용사, 요리사, 배관, 목공 일, 벽돌 쌓기 등)의 범위에 대한 인증 자격을 발급하였는데 그 자격은 대학 석사 및 학사 수준 이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한국도 지난 2014년 도제 제도를 도입한 후  1만 6천 개 기업에서 10만 명의 학습근로자가 참여한‘한국형 도제 제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중세 도제훈련의 전통이 남아 있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의 독일어권 국가들에서 직업훈련제도의 근간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유럽 국가들 외에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및 캐나다에서도 도제훈련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국가별로 서로 다른 다양한 형태의 도제훈련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산업화 이전 도제 제도가 도입되기 전 가난했던 때는 어느 사회든지 도제 제도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월급을 받지 않고 기술을 배우는 것으로 보상을 대신에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도 노예 노동과 비슷한 수준의 강제적인 통제 아래에서 일하였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그러한 곳으로 기꺼이 보내 일하게 하였고 자신들도 그 힘든 노동을 도제라고 여기며 참았고 그 결과는 더 나은 삶을 약속하였습니다. 

 

구약의 종이나 노예 제도를 도제 제도와 직접 대비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양립할 수 없는 노예제와 형제 사랑의 신비로운 조화의 차원을 생각하게 됩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강제된 노동을 통해 창조 명령인 경건한 노동의 훈련을 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이 노예제나 노예 노동을 무조건 폐지하도록 강제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신명기 15장에서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노예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노예제 안에서 기존의 이루어진 가족은 나눠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한 남자가 그 아내와 함께 노예가 되었을 경우 나중에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자유 하도록 놓여야 합니다. 하지만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잔인하게 들릴 수 있으나 그녀 역시 갚아야 할 빚이 있고 마쳐야 할 노예 기간이 있어서 6년을 봉사한 후에 자유롭게 되어 남편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히브리 노예는 가난에 대한 구제책이며 삶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회입니다. 이런 히브리 노예제는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 즉 이스라엘의 제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노예제를 계속해도 된다는 정당성은 없습니다. 굳이 현대에 있어서 히브리 노예제와 같은 것을 말하자면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파산이라는 제도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탕감제는 단지 빚을 탕감하는 것이고 다시는 빚이 없는 삶을 살도록 경건한 훈련을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현대의 빚 탕감을 노예제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노예제 또한 가난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성경의 노예제는 빚 구제와 가난 해결과 새로운 삶을 위한 새 출발이라는 맥락에서 도제훈련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런 훈련을 노예제와 구분합니다. 이런 훈련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제공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예제 같은 것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지만 과거의 노예제를 현대적 기준에 의해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예제를 통해 생명이 보존되고 가난에서 탈피하기도 하였고 더 나은 삶으로 진보하기도 하였습니다. 창조의 원리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은 어떤 제도나 조건 아래서도 섬김과 돌봄과 사랑의 대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레 25:39-40)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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