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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의 좌절과 후유증, 이것도 은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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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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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인간의 타락은 모든 불일치와 갈등과 분쟁과 전쟁과 나아가 인간을 불안하고 두렵게 하며 불행하게 하는 원인인데, 이런 것들은 인간을 타락으로부터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절정에서 노아 홍수 심판을 받게 되었으며, 홍수 후에 노아의 후손에게서도 죄가 심화되는 경향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을 대항하여 성과 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교만과 사악함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하는 죄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하시고 노아 홍수 같은 심판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므로 성과 탑을 쌓지 못하게 막으셨고 온 지면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것도 징계인 것은 사실이지만 노아 홍수와 같은 심판은 아닙니다. 바벨탑의 좌절과 그 후유증은 인간으로 하여금 또 다시 노아 홍수와 같은 심판에 이르지 않도록 막으신 하나님의 예방 조치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의 창조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자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셔서 창조의 명령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생명의 길이고 불순종 하는 것은 멸망의 길인데, 바벨탑의 좌절과 후유증으로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어, 비록 자발적이지는 않지만 창조 명령을 따르게 되었으니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특별하신 은혜의 조치로 인하여 인간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도 결코 제2의 바벨탑을 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통일과 일치를 이룰 수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조치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겹고 불행하게 하는 후유증으로 작용하지만 제2의 바벨탑을 쌓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는 것을 막아주는 유익하고 감사한 은혜의 조치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 어떤 인간 제국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예방 조치 때문입니다.

다니엘 4장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꾼 꿈을 다니엘이 해석하고 그 꿈이 느브갓네살 왕에게 그대로 이루어진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국의 왕인 느브갓네살이 엄청난 제국의 영광을 자기가 이룬 것으로 자랑하며 교만할 때 그렇지 않고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 그로 정신 이상자가 되어 소처럼 불을 뜯어 먹으며 들짐승처럼 7년을 지나게 하셨고 그가 제 정신이 돌아와서 겸손히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비록 이방의 왕이지만 아무리 강력하고 위대한 제국의 왕이라도 스스로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교만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바벨탑을 쌓는 행위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성과 탑을 쌓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에 편승하여 교만하게 되어 교묘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8:11)고 하셨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나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나 유대의 헤롯 왕은 이와 같은 말씀들이 적용된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에도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나는 세계시민(cosmopolites) 이며, 세상이 내 도시(국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도시도 없고(apolis) 집도 없고(aoikos) 조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우주에 있는 국가를 진정한 국가로 여기고자 하는 태도를 내포합니다. 근대 철학자 칸트 역시 야만으로 부터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듯이 국가들 사이의 자연적 자유상태인 전쟁상태로부터 평화상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계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인류를 이성적 국가 밑에 포섭하려는 보편적 인류공동체 사상입니다. 세계시민주의(世界市民主義, Cosmopolitanism) 또는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는 이성을 공유하는 것으로서, 전 인류를 동포로 보는 입장입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국가적 이기심 또는 종교적 차별을 버리고 인류 전체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온 인류가 서로 평등하게 사랑하여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키니코스 학파는 당시의 국가 대립, 인종 귀천의 차별 등의 불합리한 습관에 대하여 만인은 똑같이 영지의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스토아 학파에서도 존재의 본질은 인간 이성이고 인간은 이성에서 평등하고 이성의 법칙에 따르고 동일한 권리의무를 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세계시민주의는 국민주의에 대한 것으로서, 현존하는 여러 국가가 해소 혹은 개혁되어서 국가 간의 대립항쟁이 없어지고, 유일한 세계연방이 실현되어 전 인류가 그 시민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주의입니다.

기독교가 이러한 철학적 정치적 세계시민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종교 세계시민주의라고 분류하지만 이는 기독교를 일반종교로 이해한 데서 비롯되는 오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 국가, 혈통, 빈부의 차별을 넘어서 신 앞에 평등한 것으로서 세계시민주의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 학자들이 그렇게 설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신학자나 기독교인이 그렇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세계시민주의가 추구하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다만 기독교인은 세계시민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인간 이성이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도 세계시민주의가 추구하는 보편 가치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사상이나 이념을 존중하는 것은 그러한 이성적 노력으로 세계시민주의 같은 것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해야 할 보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사건에서 저지 된 인류의 통일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것이지 결코 인간의 지혜나 이성이나 사상이나 이념이나 제도나 물리적 규모를 통해서 이룰 수 없습니다. 인간이 선한 의도에서 인류의 통일을 도모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한 없이 위험한 일입니다. 인간이 성령의 도움으로 선한 일을 시작하여도 어느 순간에 악하게 변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인간의 선한 의도가 지속되도록 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통일과 일치를 제지하고 막으신 것은 인간 이성적 수준에서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의 차원에서 이루신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세계시민주의 같은 것이 성취되지 않는 것이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이 모여서 지혜와 힘을 모으게 되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잘 아십니다. 인간 모두가 모여 힘과 지혜를 합치면 이상적 세계시민주의를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스스로 상상하고 기대하지만 바벨탑을 비롯하여 인간이 세운 수많은 제국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나라와 천만리 먼 악의 나라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막으셨듯이 그러한 제국들을 막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나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라틴어를 배웠고 기독교가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아닌 라틴어 사용에 집착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뭔가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왜 기독교가 라틴어에 그토록 집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못하였습니다. 라틴어는 본래 현재의 이탈리아 중부 원주민들의 언어에 불과했으나 이들이 세운 도시국가 로마의 세력이 팽창함에 따라 사용 범위가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로마는 자신의 세력권에 대해서 라틴어 사용을 강제하지는 않았으나 정치, 법률, 상업, 예술 등 각 분야에서 라틴어가 사실상의 공용어로 사용되었고 자연스럽게 원주민의 언어와 결합하여 현재의 로망스계 언어의 원형을 이루었습니다. 지중해 전역이 로마의 세력권 하에서 활발히 교류하던 시기에는 원형에 가까운 라틴어가 지중해 전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쇠퇴하면서 상업과 교역도 후퇴하였고, 고립된 지역별로 라틴어의 방언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게다가 라틴어의 발생지인 로마 제국자체도 중심지가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나중에는 라틴어 대신 그리스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하게 됩니다. 현재의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루마니아와 같이 라틴어 사용자의 비중이 높았던 지역에서는 라틴어가 로망스어로 변화하여 살아남았고, 라틴어 사용자 비중이 적던 그리스, 터키,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라틴어가 사멸하고 현지어로 대체되었습니다. 유럽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 언어는 방언이 국가단위로 확대된 것입니다.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 때만해도 마르세유나 리옹 지역 대표의 발언을 파리 시민들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20세기 초까지 프랑스는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가르쳐도 집에서는 각 지방 고유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라틴어는 고대와 중세를 통하여 유럽의 대표 언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럽의 학술, 외교, 종교에서 기본 언어는 라틴어였습니다. 고대나 중세 유럽에서 지식인이란 바로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뜻했습니다. 특히 교회는 전례와 성경과 교회 음악에서 라틴어만 사용하였습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라틴어가 아닌 거의 모든 성경은 라틴어로만 번역되었습니다.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1000년의 중세 동안 교회가 지배적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에 교회가 사용한 라틴어는 언어의 귀족이었고 모든 학문까지 라틴어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라틴어가 로망스계 언어의 원형을 이루었고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카탈루냐어, 오크어, 로만슈어, 루마니아어가 파생되었습니다. 영어는 인도유럽어 중 게르만어군에 속하지만 그 어휘의 60~70%가 라틴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의 50%, 불어의 85%,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의 90%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을 정도로 라틴어는 서양언어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 라틴어는 예수님의 탄생을 전후한 시기에 전성기를 이룬 언어였습니다. 신약 성경 여러 곳에 라틴어 표기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가 예전과 성경 번역과 찬송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라틴어 한 언어만을 고집한 것은 수많은 지방 방언으로 인하여 한 나라 안에서 조차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바벨탑 사건의 부정적 후유증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교회가 라틴어 한 가지 언어만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얻게 된 유익도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라틴어 한 언어만을 고수하는 것으로 바벨탑의 좌절과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면 그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통일 제국도 하나님께서 막으셨지만 언어의 통일도 막으셨습니다. 불일치와 불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해야 하되 불일치와 불통 자체가 은혜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6-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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