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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구사회에 드리운 전체주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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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2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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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전체주의(Totalitarianism)는 공동체나 국가나 이념을 개인보다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을 의미합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0년대 초에 이탈리아의 새로운 파시즘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토탈리타리오’(Totalitario)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고,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조반니 아멘돌라(Giovanni Amendola)가 무솔리니와 그의 추종자들의 정치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최초로 ‘토탈리타리스모’(Totalitarismo)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전체주의에 관한 학문적 연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루어졌는데, 그 정의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흔히, 공산주의를 전체주의 일부라고 분류하기도 합니다. 공산주의 외에 복지 제도, 루소의 사회 계약, 환경 규제, 국유화, 집산 경제 그리고 총기 소지 권리 규제도 전체주의가 선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체주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학술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서구사회에는 소비에트 연방 체제가 소극적인 의미에서 전체주의 성격을 보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그 이후 냉전 시기 제1세계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주로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 제국의 정체(政體)와 더불어,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전체주의를 사용하였습니다. 반면 공산권에서 전체주의는 파시즘과 동의어로 쓰였으며, 대중적으로 쓰이는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전체주의를 정치철학 및 인식 이론 관점에서 최초로 파악한 서적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입니다.

영국의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그 책에서 전체주의의 핵심을 역사주의(Historicism)와 독단주의(Dogmatism)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역사주의와 독단주의의 씨앗이 되는 학자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이라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처음으로 스승 소크라테스를 비판하였는데,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전체주의를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경멸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 철학 전반을 살펴보게 되면 소크라테스는 전체주의와 거리가 먼 학자라는 것이 칼 포퍼의 주장입니다. 또한 플라톤은 현상계(Phenomenal World)와 절대계(Noumenal World)를 분리하여 사고할 것을 적극적으로 설파하였는데, 이는 독단주의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감각을 초월한 특수한 인식이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성적 사고는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스스로 판단하는 주체의 주관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관을 절대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이것에 따른 전체 구조의 변혁을 주장했던 자가 전체주의 철학자 플라톤이라는 것이 칼 포퍼의 주장입니다. 중세에 오면 플라톤 철학은 기독교의 도구로 변하여 온전한 형태로 발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시 근대에 불러와서 부활시킨 자가 헤겔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헤겔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실천을 하도록 하지는 못하였고 인간 세계 외부에 존재하는 추상의 영역에서 플라톤의 그것들을 설파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헤겔의 교의를 인간 세계 내부로까지 확장시켜서 직접적인 실천의 정당성을 부여한 학자가 칼 마르크스라고 하였습니다. 칼 포퍼는 마르크스가 근대 전체주의 사고의 태두이기 때문에 정교한 전체주의는 모두 마르크스의 이론을 통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의 철학을 숭배하는 소비에트 연방이 가장 강력한 전체주의 정권이라고 보았으며,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도 역시 전체주의 국가였지만, 그들 국가의 전체주의는 이론적 토대가 부족한 채로 무분별하게 전체주의를 가져다 사용한 정권이라고 하였습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핵심이 되는 주제는, 인간은 본래 완벽하지 않은 동물이며, 인식 이론의 개념으로 볼 때 인간의 인식 능력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동물이기에 사회를 지속해서 변화시킬 힘도 지녔다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부류의 사람들은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일상생활에서의 소소한 행복을 중시하거나 상대적으로 개혁하기 쉬운 영역을 최대한 비폭력적인 조정을 통하여 이룰 것이지만, 극소수의 ‘특출한’ 부류는 소소한 행복 추구나 느린 개혁의 추구만으로는 전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으며, 그것은 특정한 법칙에 따라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완벽주의에 빠진 소수의 부류는 ‘영원히 작동할 수 있는 완벽한 사회 구축’이라는 꿈을 꾸게 되고, 그 결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론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교의와 역사는 이러한 인식론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 따라 발전한다는 ‘역사주의’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스스로가 가진 ‘완벽한 인간’, ‘새로운 인간’의 구현을 위하여 사회를 재조직하려고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한 사회가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뭉쳐져 있다면 그 사회를 ‘닫힌 사회’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반대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관점을 열어놓는 사회를 ‘열린 사회’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나치 정권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체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신들 집단의 이념에 맞게 고치려고 했으나, 그것은 다분히 감정적이었고, 철학적 토대가 매우 약했다고 지적합니다. 칼 포퍼의 지적은 나치 독일이 전체주의 정권이 맞지만 정교한 이론적 토대가 부족하며, 일관적이지 못한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소비에트 연방은 플라톤의 전체주의 철학을 최종적으로 계승한 마르크스의 교의를 엄격히 고수하는 정권이며, 그 이론적 정교함 또한 가장 뛰어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칼 포퍼는 진심으로 전체주의적 열망을 가진 정권은 소비에트 연방뿐이라고 하였습니다.

현대 학자 중에는 칼 포퍼의 비판이 전체주의 현상에 대한 인식론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탁월하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얕은 이해와 몰이해에 기초한 비판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들 또한 근본적인 면에서는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경제철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전체주의 경제 구조의 형태와 그 역할을 서술하였습니다. 하이에크는 이 저서에서 미국은 물론, 유럽 사회가 정치적으로는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집산주의를 점차 채택하여 정치적 자유까지 없애려고 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집산주의가 일반적이 된다면, 그러한 집산주의에서 드러나는 경제적 오류와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는 다시 급진적인 집산주의 정책을 실행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 경제 구조의 붕괴로 이어진 국가는 경제적 풍요로움을 대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심어주고, 대중을 정치적 또는 경제적 불구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경제 영역에서 집산주의는 정치적 자유까지 소멸하게 하는 위험한 전체주의 관념이라는 것이 하이에크의 주요 논지입니다. 또한, 하이에크는 집산주의 국가의 계획 경제 정책이 갖는 필연적인 비민주성을 지적하였습니다. 계획 경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생산 수단을 정부와 그 정부를 이끄는 특정한 집단에 의해 집산화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의 재산권이 박탈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재산권 박탈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평등’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복지 사회’를 건설하려는 방편으로 선전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이것이 그저 전체주의적 선동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평등의 가치는 오로지 자유라는 가치와 병행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어느 한쪽을 배제하거나, 편취 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이며 유기적인 결합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시에 하이에크는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근본적인 인프라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제시합니다. 경제사나 정치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자유와 평등의 유기적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로운 경쟁에 기초한 시장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 재원을 통하여서만 평등을 꾀해야 하며,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평등’이란 가치의 제일 기본적인 전제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이에크는 집산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전(全) 사회적인 이데올로기화가 이루어진 국가를 ‘사회주의 국가’라고 정의하고 그들은 본래의 목적인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국가 스스로가 평등을 위하여 인권을 무참히 파괴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인권이나 인명을 경시하는 것과 같은 철학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평등’이라는 관념적인 가치를 언제든지 파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주의 정부는 자유도, 평등도 이룰 수 없으며, 남는 것은 빈곤, 억압, 폭력과 그들 스스로가 자기 세뇌를 통해 믿는 ‘이데올로기’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데올로기도 또한 거짓에 기초한 망상에 불과하기에 사회주의 국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이에크는 단도직입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전체주의 국가라고 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등장한 나치 정권은 전체주의 정권인데, 전체주의 정권은 예외 없이 경제 영역을 통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나치 정권도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가 갖는 여러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첫째, 대중의 열의를 쉬운 개념으로 묶어서 간단하게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도 표어로 만들어 대중을 동원한다. 둘째, 자신들의 집단이 유일하며, 특수한 역사적 사명감을 지녔으며, 대중이 '커다란 사건'에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셋째, 생활의 모든 부분을 통제할 수 있는 유능한 비밀경찰을 운용한다. 넷째, 대중이 주도하는 폭력적 사고와 직접 행위가 일상적인 것이 되며, 정부가 이것을 장려한다." 이 상태에서 대중은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민주적 주체가 아닌, 거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지는 도구가 되며, 스스로가 이러한 도구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전체주의가 갖는 세 가지 특징이 근대 이후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고 전근대에도 있었던 것으로서 대중의 열의 및 정치 지도자들의 행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렌트는 파시스트 이탈리아, 나치 독일, 볼셰비키 정권들이 그러한 특징을 갖춘 정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는 현저하게 이념적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경제나 언론이나 교육과 대학을 비롯하여 지식 집단이나 문화 예술이나 그 외 거의 모든 사회 집단과 활동들이 국민들을 이념적으로 줄을 세워 전체주의로 떠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전체주의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한 성경의 가르침임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분별력을 잃고 전체주의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 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막 4:11-12)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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