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종교사회를 살아가는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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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7-03-0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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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미국대로 트럼프 대통령과 언론과의 전투(?) 때문에 시끄럽고, 한국은 한국대로 대통령 탄핵한다고 시끄럽고, 유럽은 유럽대로 영국은 브렉시트한다고, 프랑스는 새 대통령 뽑는다고 시끄럽다. 이 세상에 평화와 고요는 없다. 오직 함성과 구호가 판치는 어지러운 세상 중에 어찌 살아가야 할지 마음 가눌 길이 없다.
그런데 이번엔 공동묘지에 서 있던 묘비까지도 앞뒤로 우르르 넘어지는 묘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시끄러운 세상만사가 묘지까지 번져가는 모양새다. 지난주 세인트루이스 서부지역에 있는 ‘유니버시티 시티’란 도시의 공동묘지에서 200여개의 묘비가 고의로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망자의 이름, 그리고 그의 탄생과 죽음의 시간을 간직한 채 세월을 잊은 듯 무심코 하늘을 향해 서있는 묘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거기다대고 해코지를 했을까? 참 기막힌 반달리즘이랄 수 있지 않은가?
공동묘지는 이 지역의 유태인 공동묘지로서 벌써 124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묘지였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 11개의 유태인 커뮤니티 센터가 폭탄 테러위협 전화를 받고 잠정 문을 닫았다. 벌써 금년들어 27개주에 있는 54개의 유태인 커뮤니티 센터가 테러위협 전화를 받았다는 통계가 나왔다. 대학캠퍼스나 뉴욕의 지하철에도 인종혐오 낙서나 옛 독일 나치의 어금꺾쇠 십자표지가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유태인 혐오 반달리즘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슬람 7개국 반이민 행정명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포착되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유태인공동묘지의 묘비를 쓰러트린 파손행위가 무슬림의 도발이란 증거도 없고 어느 극우단체의 소행으로 밝혀지지도 않았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이후 슬그머니 인종 증오범죄가 증가세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느껴진다. 인류 역사를 통해 종교 간의 전쟁은 국가와 민족 간의 전쟁 못지않게 치열하고 파괴적이었다. 그래서 미국에선 정교분리원칙이 도입되고 종교간의 대화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운동이 지구촌에서 지속적으로 제창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들려온 굿뉴스가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 아메리칸들이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그 파손된 유태인 묘비를 복원시켜 주기 위한 기금모금 캠페인이었다. 캠페인을 시작한지 첫 24시간 만에 무려 8만 달러가 모아졌다. 미 전역에서 1,500여명의 무슬림들이 이 모금행사에 동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금은 유태인 묘비 복원에 전액 사용되고 그래도 남는 돈은 피해를 입은 유태인 커뮤니티 센터의 수리를 위해 전달될 예정이란다.
우리는 무슬림 하면 덮어놓고 테러분자를 떠 올린다. 유태인 묘지복원 캠페인에 참가한 1천5백여 명이 보여주는 익명의 얼굴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테러가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희망하는 얼굴들이다. 무슬림은 모두 테러리스트요, 기독교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단순무식형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타일러주는 사건인 셈이다.
우리는 불교하면 막연하고 표현할 수 없는 적대감정을 깔고 살아왔다. 그게 지나치면 불상의 목을 자르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사건이 여러 번 발생했지만 지난해 1월엔 한 개신교인이 경북 김천 개운사 법당에 난입해 불상을 훼손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서울기독대학교 손원영 교수는 그 개신교인을 대신하여 사과하고 불상 재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자 이 대학교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그리스도의교회 신앙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은 언행”이었다며 손 교수 징계를 결의했고 이사회는 이를 받아들여 금년 2월 그를 파면 조치했다. 그러자 교계에선 손 교수를 놓고 “상 받을 자인가? 벌 받을 자인가?”란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는 중이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동문 240명은 성명을 내고 “손 교수의 행위는 오히려 타종교를 존중하고 성숙한 신앙을 지향하는 기독교인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 것으로,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라면서 파면결정 철회를 요구했다
이쯤해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훼손된 유태인들의 묘비를 복원하기 위해 모금운동에 참여한 무슬림들은 이슬람교를 배반한 가짜 무슬림들일까? 또 훼손된 불상을 건립해 주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인 신학교 교수는 우상숭배자요, 거짓 그리스도인인가?
내 종교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종교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우리를 두고 ‘개독교’, ‘먹사’라고 비아냥대면 모멸감을 느끼듯이 스님을 ‘땡중’ 이라고 비하하면 그쪽도 열 받지 않겠는가?
미국과 같은 다인종, 다종교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타종교에 대한 품위있는 매너에 익숙해 져야 한다. 이를 위해 내 종교를 비하하자는 말은 아니다. 타종교에 대한 성숙한 매너는 그리스도인들의 성숙한 믿음생활의 산물이다.
엊그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선적인 그리스도인보다 무신론자가 낫다”는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대개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폭력적으로 행사함으로 자기 종교의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위선을 보게 된다. 종교의 경계 따위를 거침없이 초월하는 사랑이야말로 그래서 위대한 것 아닌가?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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