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본디오 빌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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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7-04-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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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이 다가서면 생각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당연히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예수님 말고 또 한사람을 꼽으라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최종결제 사인을 날린 본디오 빌라도다. 본디오는 누구고 빌라도는 누꼬? 기독교인이 그렇게 묻는다면 너무 심한 질문이다. 왜? 주일 예배 때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라면 적어도 일년에 52회 정도는 입으로 외우고 넘어가는 그 친근한(?) 이름을 모르겠다면 쓰겠는가?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라고 고백한다.
라틴어로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란 말이 본디오 빌라도로 번역이 된 것이다. 로마시대 유대지방을 다스리던 총독이었다.
예수님을 향해 ‘에케 호모(Ecce Homo)’란 말을 한 사람도 바로 빌라도다. 요한복음 19장 5장에서 성난 무리들 앞에서 채찍질 당한 예수님,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을 보라”고 외친 바로 그 사람이다.
그 빌라도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의 역사 가운데 ‘쓰임 받은 사람’이란 엉뚱한 평가도 있다. 사람은 괜찮은데 정치하다가 인생 망친 케이스란 평가도 있고 진리를 외면하고 잔머리를 굴리다 실패한 비겁쟁이란 시각도 있다.
식민지의 총독으로 파견된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환대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하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더욱 미움을 샀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선 유대인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로마깃발을 거룩한 도시에 가지고 들어왔다는 점이고 성전세를 모아서 제 맘대로 종교행사가 아닌 수로건설에 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결박해서 끌고 왔을 때 그의 첫 질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였다. 그때 예수님은 “네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명절에 죄수 하나를 석방하는 전례에 따라 유대인들이 죄수의 석방을 요구하자,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을 놓아 달라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예수님의 석방을 유도하는 질문이었지만 그는 이미 유대교 고위성직자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끌고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하자 “도대체 이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고 되묻기도 한다. 아내 프로쿨라(Procula)가 전갈을 보내,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소리도 빌라도는 들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광장의 함성, 유대인들의 요구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을 가져오라 하여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유대인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다”고 대답했다. 바로 마태복음의 이 기록 때문에 2차 대전 때 나치에 의한 600만 유대인 학살사건 ''홀로코스트''가 바로 그 대가라고 좀 과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한 멜 깁슨은 유대인의 폭력성을 아주 잔인하고 섬뜩하게 묘사하기도 했었다.
왜 그는 총독의 이름으로 죄 없는 예수에 대해 정의를 선포하지 못했을까? 뻔하다. 자기나 잘 살아보겠다는 무사안일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나면 로마 황제에게 목이 나갈 수도 있고 원로원에 찍히면 어디로 유배 될지도 모르는 불안 때문에 정의의 편에 서는 모험 따위는 아예 포기하고 눈치작전, 여론재판에 맡긴 것이다. 이 비겁한 본디오 빌라도!
광장의 소리, 군중의 소리, 여론의 뭇매에 맞아 정의를 바꿔치는 더러운 정치인 빌라도가 우리시대엔 존재하지 않는가? 양심도 팔아 치운 채 자신의 보위와 영화를 위해 광장과 횃불과 야합하고 군중과 타협하는 비굴한 재판관이 우리 주변엔 없는가?
빌라도는 사마리아 지방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려다 유대인들 몇 명을 죽인 게 화근이 되어 로마로 소환당한 후 총독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항상 예수님의 재판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로부터 수년 후에 칼리쿨라 황제 때 유배를 당하여 고심하다가 자살했다는 설도 있고 네로황제 때 참수형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총독의 옷을 벗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순교를 당했다는 말도 있다.
광장에서 들고 일어서면 스스로 먼저 들어 눕는 비겁한 정치인, 용기 없는 재판관 본디오 빌라도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신 예수님, 그 때 예수님의 딱 3일 후를 예견할 수 있었다면 그렇게 비겁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 . .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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