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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와 역사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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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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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d81a9612451ef397ba58a5eb9c4f861_1489420213_44.jpg자동차를 몰고 잘 알지 못하는 길을 갈 때 반드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가야 합니다. 동쪽으로 가고 있는지 서쪽이나 북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바른 길을 찾아가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만약 방향을 몰라서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목적지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땅이 넓어 방향을 잃어 조난당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서 요즘 자동차에는 가고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나는 그 방향 지시 사인을 요긴하게 활용합니다. 

     

나는 지금 자동차 여행 상식을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고 사상과 이념과 시대정신의 방향을 감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최근 나는 자주 사상과 이념의 세계적 흐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실 불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사상과 이념과 시대적 가치와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성경은 역사와 시대를 분별할 것을 매우 강조합니다. 역사와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내가 그 동안 써 왔던 글 중에 몇 편을 모아 책을 만들었습니다. 책 제목을 “계시와 역사의 길에서”라고 붙였습니다. 이 번 노회에서 선배 목사님이 책 제목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정통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점진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점진적이라는 말은 역사적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구체적 역사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점점 밝히 드러나고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계시를 드러내시고 이루어 가실 때 그 일에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하나님의 계시가 오늘의 역사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성취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의 역사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행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순종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나는 이런 관점에서 설교하고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지나치게 사적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음을 나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복 받고, 우리 가정이 복 받고, 우리 가족이 잘 되고, 우리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공공의 영역에 대한 인식도 없고 책임감도 별로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만 사랑하고 돌보시지 않으시고 민족과 국가와 사회와 사상과 이념과 시대정신과 과학문명과 정치와 경제와 온갖 학문과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선인과 악인의 밭에 동일하게 비를 내리시고 빛을 비춰주십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관심과 섭리와 사랑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계시와 역사의 길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지금은 사상과 이념이 우 선회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대륙이나 특정 나라별로 좌익적 혹은 우익적 성향을 보였지만 지금은 우익적 성향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대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과 남미는 좌 편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미나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러시아나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까지 우 편향적입니다.

     

사람들은 트럼프가 어떤 사람이냐, 러시아의 푸틴이나 중국의 시진핑이나 일본의 아베나 필리핀의 두테르테나 영국의 테레사 메이가 어떤 인물이냐에 온통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학자들까지도 그런 측면에서 분석하고 평가하고 예측하고 전망합니다. 독일의 메르켈도 우 선회할 가능성이 높아가고 프랑스는 5월 대선에서 우파 후보인 피용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면에 흥미를 보입니다. 그런 지도자들의 개인적인 성향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나라 지도자들 개개인의 성향에 대한 관심보다도 사상과 철학과 이념의 역사적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지금의 세계는 우 선회 하게 되었을까요? 지금까지는 사상과 이념과 국가들의 정책들이 좌 편향적이었습니다. 좌 편향으로 기울기 시작한 역사적 시점은 1968년입니다. 소위 68혁명이라고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반전 반미 운동이 점점 극단적 좌 편향으로 기울어 그 운동을 주도하고 지지했던 철학자나 지도자들까지 그 운동에서 도태 되어가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극단적 좌 편향 사상은 인권과 여권과 환경운동과 동성애와 경제적 민주주의와 사회보장제와 평등을 줄기차게 주장하였습니다. 보수주의자들도 좌파들의 그러한 주장 자체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소위 68혁명의 사상과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소위 3M라고 하는 마르크스, 마르쿠제, 마우쩌둥이 있었고, 철학적으로는 상대주의가 좌 편향 운동가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상대주의는 엄격하게 말하면 역사적 상대주의인데, 이는 규범이나 가치와 같은 모든 것들이 역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식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나 논리적으로 나타난 것은 19세기경부터입니다. 역사적 상대주의란 규범과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역사적으로 제한된 상대적인 타당성을 갖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역사적 상대주의에 반발하여 실존주의가 발전하였지만 그 또한 큰 틀에서는 상대주의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과 철학과 시대가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 편향 사상은 거침없이 인권과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학문과 환경과 국제 관계에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온 것입니다. 이를테면 좋은 일(?)은 좌파들이 도맡아 해왔습니다. 그것이 마치 자기들만의 일 인양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도덕적이며 이상적이라는 인상의 고상한 포즈를 취하면서 영혼 없는 지식인들과 정치인들과 젊은 청년들의 정신을 훔치고 병들게 하였습니다. 보수진영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풍요를 만끽하는 데 취하여 영역을 점점 확대해 오는 좌파들을 대응할 의지도 이론도 능력도 열정도 지도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좌 편향 사상이 역사적으로 임상실험을 통해 그 부작용이 도저히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오늘의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트럼프를 개인 트럼프로만 보면 잘못 보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세계 지도자들이 우 편향적인 인물로 바뀌는 것을 이런 사상과 이념과 역사적 흐름에서 보아야 합니다. 기존의 기득권 정치권과 언론이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호들갑을 떨지만 그 호들갑은 거의가 왜곡이고 엄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한민국 상황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대통령 탄핵 법이 있다는 것은 대통령도 탄핵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은 또 바뀝니다. 보수 대통령이 잘못하면 진보 대통령이 선출되고, 진보 대통령이 잘못하면 보수 대통령이 선출됩니다. 법과 질서를 따라 한다면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을 운용하는 자들의 치명적 실수는 법으로 법을 범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대통령 탄핵도 그와 같은 범주가 아닐까 의심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걱정하는 것은 세계가 우 선회 하는데 대한민국만 좌 선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정치와 경제의 기적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지금은 역사와 국제 질서의 메인 스트림을 파악하지 못하고 정치권과 온 나라가 조선시대의 치졸한 당파분쟁 수준의 정쟁에 목숨을 걸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에서 좌로 바뀌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인 우선회의 흐름에 역행하면서 대한민국이 국제 질서에서 서바이브 할 수 있을 지가 걱정입니다. 우와 좌가 모두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는 한 공동체가 역사적 검증을 통하여 선택한 가치를 존중하는 쪽입니다. 좌라고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좌는 우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더 나은 가치와 제도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좌는 사회과학이라는 성능 좋은 도구를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언제나 메인 흐름에서 소외당하고 있다는 오해와 열등감으로 인하여 긍정적 역할보다는 극단으로 치우쳐서 엄청난 문제와 해악을 발생시켜왔습니다.

     

인간 존재와 역사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그 반역 사건이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역의 사건은 인간 역사의 초두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기록되어 그것을 읽게 된 1차 독자들은 바벨론 제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그 제국의 영향을 받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모든 시대 인들에게 주어진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계시의 말씀이지만 또한 당연히 그 시대의 역사적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여 기록된 것이기도 합니다.

     

천지와 인간 창조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나라 출발점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죄의 지배하여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죄 지은 인간을 구속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인간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 대신 인간의 나라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범죄한 인류는 물 심판을 받은 후에 거대한 인간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간의 시도를 막으셨습니다. 그 인간 나라가 바로 바벨론 제국입니다.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 당신의 나라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자신을 신격화 하려는 개인이나 국가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바벨론 제국처럼 자기를 신격화하려는 유혹과 시도에 대해 수 없이 경고를 하셨습니다. 고대 제국의 왕들은 모두 자신들을 신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스라엘의 왕들도 그들을 부러워하였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거대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그 교만한 시도를 막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강력한 제국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인간 제국은 하나님 나라를 대항하는 세력입니다. 고도의 토목기술과 엄청난 자원과 노동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항하던 바벨론 제국은 결국 주전 587년 가시적 하나님 나라인 유대와 예루살렘을 파괴시켰습니다. 인간 바벨론 제국은 하나님을 이겼다고 오만 방자하게 굴었지만 그들은 신생 제국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하였고 지리멸렬되었던 이스라엘은 되살아났습니다.

     

인간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인간 나라는 온갖 좋은 일을 표방하고 인간 능력을 과시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인간 나라 정신과 인간 나라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간파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세워 가시는 하나님 나라에 깨어 있는 의식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마 16:3, 롬 12:2)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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