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방전도와 전도거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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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7-05-24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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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몬태나에서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조 목사님, 내가 지금 몬태나 빌링스(Billings)란 도시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노방전도하고 있는 중이에요. 혹시 빌링스에도 한인교회가 있는지 한번 전화번호 좀 찾아서 보내주세요!” 남가주에서 기도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L목사님이셨다.
나는 허겁지겁 인터넷을 뒤져 빌링스에 한인교회가 있는지 구글 검색에 매달렸다. 한인교회 3개가 떴는데 하나는 보즈맨(Bozeman)에 있는 교회였다. 빌링스에 있는 교회라고 생각되는 2개의 한인교회 전화번호를 부리나케 알려드렸다. 그 뒤론 전화가 없다.
L목사님은 와이오밍, 사우스다코다, 몬태나 등지를 손수 운전하여 다니며 친구 한명과 함께 지금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 한참 나이드신 노년의 여성 목사님이 서부지역을 자동차로 헤집고 다니시며 노방전도를 하고 있다니! 도대체 그 두둑한 배짱과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내가 빌링스라고 해서 깜짝 놀라 교회를 찾아드린 데는 이유가 있다. 빌링스는 깨끗한 산골도시지만 여행하다보면 한없이 외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지금부터 36년 전 쯤 난 미국에 처음도착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를 출발점으로 해서 대륙 횡단을 할 때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가기위해 빌링스를 지난 적이 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을 끌고 옐로스톤팍 웨스트게이트를 거처 미국 대통령 4명의 ‘큰 바위 얼굴’이 있는 사우스다코다의 마운트 러시모어를 가기위해 또 빌링스를 지난 적이 있다. 하루 종일 허허벌판 버팔로만 보이는 몬태나와 와이오밍 쪽을 여행하다 보면 한국 사람을 만날 때 반갑기 짝이 없다. 30여 년 전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몬태나 주 전체에 약 500여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외로움이 느껴지는 몬태나의 작은 도시들, 빌링스, 보즈맨 … 그 낯선 도시에 들어가 외로움은 고사하고 백인들이나 원주민들을 상대로 전도를 하고 있다니! 난 동양인들이 경험하는 그 낯선 도시의 고독을 잘 알고 있기에 L목사님이 한인교회를 찾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난 좀 황당한 인터넷 뉴스를 읽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가에 ‘전도, 노 댕큐!’카드가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였다.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등 전국 14개 대학에서 길거리 전도를 당할 시 거부 의사를 말 대신 전할 수 있게 하는 ‘전도, 노 땡큐!’ 이른바 전도거부카드가 이달 중 배포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 ‘전도거부카드’는 2013년 서울대학교 ‘프리싱커스(Freethinkers)’가 최초로 만들어 사용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는데 전도거부카드의 앞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저희는 종교가 없습니다. 세뇌로 얼룩진 울타리를 깨고 나와 세상을 둘러보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을 더 감동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어떤 믿음을 갖고 사는 것까지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빌링스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 L목사님이 자꾸 떠오르는 게 아닌가? 미국 벽촌을 누비고 다니며 예수를 전파하고 있는 그 여성 목사님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이 전도 거부카드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전도하면 “해도 안 되는 일”이란 막연한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다. 전도하겠다면 그건 ‘또라이 성도’ ‘무식한 크리스천’ ‘저급한 신앙생활자’ 등으로 낙인을 찍는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전도하겠다고 덤비느냐며 ‘촌놈’ 취급을 받는다.
전도는 옛날 "예수 천당!" 그런 방법으로는 No!, 요즘엔 수요자중심으로 변환되어야 한다느니 생활밀착형 전도가 되어야 한다느니 그럴듯한 연구형 주장들이 쏟아지고는 있지만 그 바람에 참신한 그리스도인들의 전도열정만 싸늘한 얼음장으로 굳어지게 만들고 있다. 사실 신학교 연구실에서 생산되는 전도학이란 게 교회성장을 가로막는 연막작전으로 악용되는지도 모르겠다.
전도가 조직신학도 아니고 헤겔의 정반합 이론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라도 된단 말인가? 단순하게 접근하고 선포하고 보여주는 것 아니던가?
교회에게 전도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가? 전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인가? 고상하고 실용적인 수많은 교회프로그램에 함몰되어 전도는 지금 폐기처분되고 있다. 이 세상은 전도거부카드까지 등장하는 교활함을 보이고 있지만 이 세대에 세뇌되어 전도와 같은 불편한 영적 노동 따위는 개점휴업 프로그램으로 문을 닫아버린다면 그 교회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때로는 공격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한이 있어도 전도는 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물어보자. 일 년에 단 한 영혼이라도 전도하여 우리 주님을 알게 한 적이 있는가? 몬태나를 누비고 다니며 백인들을 향해 “예수 믿으라”고 외치는 L목사님을 생각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한 주간을 보내고 있다.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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