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날 창시자의 두 얼굴
페이지 정보
조명환ㆍ2017-05-12관련링크
본문
‘어머니 날(Mother''s Day)은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에서 유래되었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그래프턴(Grafton)이란 마을에 살던 안나 자비스(Anna Jarvis)가 어머니가 죽은 후 그 죽음을 추모하던 끝에 매년 어머니의 기일에 즈음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어머니의 사랑과 노고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것이 그 유래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어머니 날의 창시자를 안나 자비스로 공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1914년 윌슨 대통령 때 안나 자비스의 어머니를 기리는 정신을 높이 평가해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국가적 공휴일인 ‘어머니 날’로 선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럼 어머니 날의 창시자인 안나 자비스야말로 모든 어머니들의 ‘모범답안’처럼 정숙하고 희생적인 현모양처였을까?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우선 안나 자비스는 자식이 없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 날의 창시자가 사실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는 남성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냥 싫은 정도를 넘어 증오수준이었다. 그래서 어느 남자로부터 결혼해 달라고 청혼을 받아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에게서 완고한 청교도 여성상이 느껴진다.
자비스가 이처럼 남성을 증오한 이유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집에서 밥이나 하고 희생적으로 가족들을 돌보는 게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평생 결혼한 적이 없이 노처녀로 살다간 여자, 그래서 어머니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여자, 남자를 증오하여 한 번도 청혼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여자, 그런 여자가 사실은 우리가 지키는 어머니 날의 창시자라면 조금은 이상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또 있다. 어머니 날을 창시한 장본인이 정작 어머니 날이 미 전역으로 확대되어 시행되자 오히려 어머니 날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는 것은 더욱 이상하지 않은가?
이유는 있다. 어머니 날이 너무 상업적으로 흘러간다는 점 때문이었다. 우선 어머니 날이 되면 하얀 카네이션 물결을 이뤘다. 어머니 무덤에 하얀 카네이션을 헌화한 후에 자비스가 그 꽃을 가슴에 달고 다니면서 하얀 카네이션은 어머니 날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어머니 날은 꽃장수가 대목을 챙기는 날이었다. 화훼시장에선 하얀 카네이션이 동이 나자 빨간 카네이션도 끼워 팔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카네이션의 품귀현상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들은 하얀 카네이션, 그리고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건 순전히 장사속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안나 자비스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지 딸랑 꽃을 달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주장이었다. 드디어 어머니 날에 꽃이 배달되는 것을 막으려다가 물리적 충돌 사고가 벌어져 몇 차례 구속되기도 했던 안나 자비스.
그녀는 더구나 어머니 날에 인쇄된 카드를 보내는 일에 더욱 분노했다. 지금 어머니 날을 앞두고 홀마크 카드점은 물론이고 반스나 랄프스 마켓에도 어머니 날 카드는 차고 넘친다. 지금같지는 않았겠지만 100년 전에 이미 인쇄된 어머니 날 카드가 유행하기 시작했나 보다. 자비스는 인쇄된 카드는 어머니 은혜에 조금도 보답할 줄 모르는 막돼먹은 불효행위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사랑의 마음을 손으로 써서 전달해야 진정한 어머니날 카드라고 보았다. 그래서 인쇄되어 팔려나가는 어머니날 카드도 절대 반대.
이러다 보니 어머니 날 창시자가 나중엔 어머니 날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칼 한 일이 벌어진 것인가?
어머니 날의 창시자라면 착하고 선한 이미지가 그려지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머니 날이 시작될 때의 자비스와 어머니 날의 상업성을 비판하며 어머니 날 반대 캠페인을 벌이던 자비스는 서로 상반된 두 개의 얼굴이었다. 완고하고 고집 센 여자로 변해 버린 안나 자비스를 두고 우리도 생각해 볼 점은 있다.
우리들의 어머니 날도 너무 상업적으로, 즉석 이벤트로, 때로는 마지못해 하는 요식행위로 끝나지 않나 하는 반성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일년내내 어머니 은혜, 부모님 은혜는 적당히 잊고 살다가도 어머니 날에 큰 돈 들여 선물해드리고 엄청 비싼 식당에 예약하여 저녁 한끼 잘 사드리면 어머니 은혜는 그런대로 갚아 드렸다고 ‘면피용’으로 활용되는 날이라면 어머니의 날이 오히려 불효자의 날로 변질될 수도 있다.
안나 자비스가 상업적으로 흘러버리는 어머니 날 반대 캠페인을 벌인 아이러니를 두고 우리도 생각해 보자. 진정한 감사와 사랑이 실종된 한낮 상업주의에 편승된 어머니 날을 맞고 있지는 않은지. . .
ⓒ 크리스천위클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