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의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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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ㆍ2017-09-01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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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어는 순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개혁의 때가 이르렀기에 생긴 것입니다. 종교개혁 전야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탐욕과 사제들의 타락이 분명 그 몫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도 칼빈도 교회가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세 로마 교회는 개혁자들의 요구를 받지 않았습니다.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회복하자는 소리에 권력과 핍박으로 응답하였습니다. 결국 로마 교회는 이들을 이단자로 내쳐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참된 교회를 세우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참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일에 가장 반대한 이들은 로마 교회 사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재산을 빼앗기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이 중요하였지 참된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제들의 태도였습니다. 사제들의 관심에는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이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갈급함도 적었고,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무지하였습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사제에 대한 소명은 관심이 없고 현세적 삶에 대한 탐심과 쾌락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중세 교회의 처절한 타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제들의 무지는 교회가 개혁되어야하는 당위성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종교개혁 후(1551년)에 시작된 후퍼 감독의 조사 보고서를 보면 사제들의 무지가 얼마나 심각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글로스터 교구에 있는 331명 성직자를 조사한 후퍼의 보고에 의하면 169명은 10계명을 암송하지 못하고, 9명은 그것들의 순서도 몰랐고 33명은 그것들이 성경의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또 10명은 신조들을 암송하지 못하고, 216명은 그 신조들에 대한 성경의 참고구절들을 몰랐으며, 10명은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못하고, 39명은 주기도문이 성경의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34명은 그 저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 성도들에게 점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대 놓고 말하기를 “사람들은 ‘무지한 교사들이 가르치는 잡종적 언어’보다 성경적 언어를 배우는데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 전야의 현실이었습니다. 사제들을 향하여 무지한 교사, 잡종적 언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이것은 후퍼의 보고서에 근거한다면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사제들의 영적인 권위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말씀은 사라지고 오직 무지한 말들만 교회 안에 난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은 달랐습니다.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인문주의 사상이 번져갔으며,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점점 사제들의 무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배경에는 말씀에 떠난 교회와 사제들의 행위에 대하여 성도들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와 교황과 사제들이 한 일들이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한 것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교회를 회복하는 길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중세 로마 교회는 참된 교회로의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회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탄압만 있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불복하는 이들에 대한 탄압은 참으로 매서웠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회개의 길에서 점점 멀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개혁의 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무지한 사제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 전야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도전을 줍니다. 개혁은 전조 증상이 긴 시간 주어진 후에 나타납니다. 교회와 목사가 말씀의 자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 수 록 개혁은 점점 가까이 옵니다. 성경이 우리의 신앙의 유일한 기준이 되지 못하면 온갖 잡설들이 난무하고 마침내 교회는 부패하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 가운데 여전히 반지성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신앙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 신앙합니다.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지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모든 뜻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바로 성경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목사로 부르신 것입니다. 목사의 소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고 목사가 있는 것은 바로 말씀을 바르게 해명하여 전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목사의 소명입니다. 목사의 소명이 교회를 크게 짓고, 성도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사의 소명이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고 가르치는 자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무엇보다도 열심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고 전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교회 직분자들 역시 동일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함께 묵상하여 함께 나누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목사의 무지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구분하는 것은 목사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교회의 표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거짓된 교회를 구분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공부하는 자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의 부패를 눈 앞에 보게 될 것입니다.
무지한 교회는 무지한 목사에 의하여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끝까지 공부하는 목사는 지혜롭고 분별력있는 신자를 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목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목사는 교회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공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귀찮아한다면 소명을 확인해야 합니다.
종교개혁 전야의 모습은 16세기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현장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목사들의 무지, 지도자들의 무지는 부끄러운 교회를 만들 것이고 마침내 교회개혁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들과 지도자들이 열심을 위하여 교회는 기도하고 도와야 합니다. 특별히 책을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 성경을 이해하는 일에 적극 협력하여야 합니다.
목사의 우선순위를 만들어 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회는 목사가 무지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 쓰고 기도하고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때에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다시 살리는 길입니다.
신동식 목사(빛과소금교회, 기윤실 정직윤리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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