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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묵상 (2) 일어나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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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순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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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묵상 10개 중 1-2개

 

ab46ded7f8ba7e6896f7a75cdd7d985b_1522055065_04.jpg나오미의 결단은 단단했다. 부끄러운 귀향길이지만 그 길만이 살 길임을 확신하는 그녀의 앞날에 서서히 서광의 빛이 비쳐오기 시작했다. 비록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가슴에 묻은 괴롭고 부끄러운 인생 행로였으나 그녀가 일단 고향으로 돌아 갈 결심을 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면 얼마든지 회복 될 수 있다는 담대한 발걸음을 옮기려든 때에 마침 들려오는 좋은 소식은 그녀의 결단을 더욱 더 재촉했다. 고향 베들레헴에도 하나님이 돌보셔서 풍년이 들어 풍족하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사실 흉년이 들었어도 하나님의 백성은 그 땅에서 도우심을 기다리며 머물러 있었어야 했을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약속하신 대로 그의 백성들을 잊지 않으시고 돌보시기 위하여 찾아와 주시니까. 나오미의 회복은 소식이 들려지기 시작할 때부터이다. 이렇게 들어야 할 말이 들려지는 것이 회복의 시작인 것이다. 그녀는 약속의 땅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았고 세상적인 소식들이 더 크게 들려 와 모압이라는 땅을 선택했던 것이다. 육신의 욕구를 따라 좀 더 잘 살아보자고 떠났든 길이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고 나서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 졌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 큰 은혜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감당키 어려운 고통이라는 메가폰을 사용하셔서 인생의 방향을 바꿔 그에게 돌아와야 할 자를 건지신다.

 

말씀이 들려져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 상태로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안 될 것이다. 일어나 돌아갈 때 회복 될 수 있다. 나오미 에게는 이 단계가 제일 힘들었을 성 싶다. 성공해서 보란 듯이 어깨를 펴고 돌아가야 할 귀향길에 초라하게 이방 며느리까지 데리고 가다니. 더구나 겨우 이삭줍기로 생명을 연장해야 할 가련한 두 여인의 삶을 위하여.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왔던 길을 멈추고 다시 일어나 돌아가는 것이다. 즉시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회복의 은혜를 베푸실 하나님을 바짝 쫓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나오미를 따라 온 룻은 나오미를 붓 쫓는 인생으로의 새 출발을 한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요,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된다.”고 절절히 고백하면서 시어머니를 따르기로 결심한 룻에게 주어진 크나큰 회복의 은혜는 놀라운 것이었다. 룻이 택한 시어머니 나오미의 인생에 깊이 엮어짐은 큰 축복의 키였다.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하면 이런 축복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성회에도 들어올 수 없었든 이방 모압 소녀가 이스라엘의 성회에 들어올 수 있음은 물론이고 예수의 족보에 드는 여인으로 극 부상 하리라는 예측을 어느 누구가 할 수 있었을까? 이쯤이면 신분 상승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깊이 연관되어 인생길을 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사람과 함께하면 복을 받는다. 과연 내 인생 안에 누가 들어 와 있는가? 매일 매일의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의 가치관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 함께 인생을 동반할 사람이 나에게 어떤 영향력이 있으며 반대로 나는 어떤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어서 서로에게 감사함이 넘친다면 이보다 더 한 축복이 없을 것이다.

 

(1) 그곳에 머물렀어야 하리라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아름다운 고부간의 이야기 나오미와 룻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이방 며느리를 자기의 딸처럼 사랑한 시어머니와 홀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른 며느리의 관계가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인간사에서 고부간의 갈등은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런 일 같은데 그 관계를 역전시켰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룻기서가 성경 중에서도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에 단순히 고부간 관계의 아름다움 면만을 소개함으로 롤 모델 정도의 교훈을 얻자는 의도였다면 그 진가를 다 모르는 일일 것이다. 이는 나오미나 룻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아스 에게만 초점을 맞춘 이야기도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인생여정 속에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더 깊은 의미를 두고 있다.

 

문학의 세계에서도 룻기서는 인류가 낳은 최고의 단편문학 작품 중의 하나라고 찬사를 받는가 하면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중요한 절기가 되면 룻기서를 읽을 만큼 그렇게 사랑받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이 대화중심이고 소설처럼 드라마틱해서 재미있고 감동적이면서 영감을 준다. 더구나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이유는 룻기에는 극적인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의 비극적인 사건을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하면서 역전승을 통한 기쁨과 통쾌함을 주고 있다. 룻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반전의 주인공 역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도 흉년이 들 때가 있다. 흉년을 피하여 이민 간 엘리멜렉 가정에 불어 닥친 인생의 폭풍우! 가장인 그와 두 아들이 죽고 남겨진 세 과부 여인들의 삶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연 약속의 땅 가나안에도 흉년이 들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다. 과연 인생길에서 만난 흉년의 때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어느 누구도 평탄하고 안전한 길만을 보장받은 사람 없고 또 항상 역풍만을 통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기쁨과 슬픔은 인간사에 교대로 씨줄 날줄처럼 엮어가면서 이뤄지곤 한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슬픔은 무엇일까? 그건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별이다. 살아남은 여인 나오미가 모조리 겪어야 할 삶의 과제였다. 죽은 남편 따라서 떠났든 베들레헴! 떠나지 말고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그 땅! 그러나 이미 놓쳐버린 선택의 기회였다. 그녀에겐 소망도 비젼도 모두 끊어져 버리고 암담하기만 했다. 눈물 흘리며 절망하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그 환란의 밤에 고향 떠난 야곱이 울부짖으며 기도했듯이 그녀 역시 잠 못 이루는 번민의 시간에 그리했을 것이다. 

 

언뜻 베들레헴에서 섬기든 하나님이 떠오르면서 신기하게도 소망의 작은 빛이 꺼질듯 말듯 하면서 그녀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때마침 고향 베들레헴에도 하나님께서 돌보셔서 풍년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 죽은 자는 죽었으나 산자는 살아야지.” 한 줄기 삶의 의욕 같은 것이 가슴을 뜨겁게 하면서 삶의 원동력으로 그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래, 가자. 누가 뭐래도 좋다. 내가 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오로지 이 길만이 살 길이다.”

 

나오미 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라도 인생의 흉년의 때를 맞이한다면 오직 그 길만이 살 길임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만이!

 

뉴욕영락교회 한세원 원로목사 부인 장혜순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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