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페이지 정보
조명환ㆍ2018-02-21관련링크
본문
어제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었다. 한 연합감리교 목사님과 점심약속을 하자고 했더니 재의 수요일 예배가 있어서 멀리 나갈 수가 없다고 사양했다. 연합감리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신교가 재의수요일, 혹은 성회수요일을 지키며 예배를 드린다.
이 재의 수요일에 관해 알아둬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이날부터 사순절(Lent)이 시작된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하여 부활주일에 이르는 40일(주일제외)을 말하는데 죄를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업그레이드하는 절기다. 그리스도인들의 주특기는 뭐니 뭐니 해도 회개를 잘하는 일이다. 일생에 한번 회개할 일도 있지만 매일 잔챙이 죄를 짓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와 친숙해야 성숙한 그리스도이 될 수 있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되는 재는 지난해 종려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 가지를 태워서 만든다.
재는 죽음을 상징한다. 재의 수요일엔 목사와 신자들이 머리에 재를 발라주며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라고 말한다. 이때 재를 받는 사람은 “아멘”으로 답한다. 이 말은 창세기 3장 19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하와를 향하여 하나님이 선포하신 고별사인 셈이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하염없이 불쌍한 인생임을 다시한번 되새김질하라는 뚯에서 이마에 재를 발라주는 것이다.
그럼 재의 수요일은 침울한 예배인가? 그렇지는 않다. 죄를 회개하라는 영적 기억장치인 셈이다. 사순절엔 기름진 고기나 술을 마시지 못하니까 팻 튜스데이(Fat Tuesday), 혹은 사순절을 앞두고 열리는 마디그라 축제 같은 세속적인 전통이 뒤따르기도 했다. 경건하고 금식을 자주해야 하는 사순절을 앞두고 팬케익이나 아주 달콤한 음식으로 배를 달래주는 것이다.
모든 교회들이 재의 수요일을 지키고 있는가? 카톨릭 교회에서 11세기 전후에 시작된 이 예배를 따르고 있는 교회가 개신교에도 많다. 우선 의식적인 교회들(liturgical churches)은 모두 지킨다.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회 등이다. 장로교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과 침례교회, 그리고 몰몬교는 이 예배가 없다.
재의 수요일 예배를 위해 예배당에 가야하는가? 가도 좋지만 요즘엔 재를 ‘투고’해 가기도 하고(ashes to go), 더 기막힌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번 주 오하이오에 있는 한 교회는 SNS를 통해 수요일 아무 때나 교회 파킹랏에 들어오면 차에 앉은 채로 이마에 재를 발라주는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처럼 ‘드라이브 스루 애쉬스’ 서비스도 해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바쁜 사람들에게 이렇게라도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제공을 하자는 이 교회의 헌신적인 아이디어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을 만 하다.
재의 수요일이란 말이 성경에 있는가? 여기에 이르면 성경과 전통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성경엔 재의 수요일이란 말이 없다. 아까 말했듯이 중세교회에서 생겨난 말이다. 그러나 구약에선 욥이 재와 티끌을 쓰고 회개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에스더,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 등 회개의 도사들이 회개할 때면 재와 흙이 등장하곤 했다.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마르틴 루터는 성경에 없는 재의 수요일? 그걸 왜 지켜야 해? 그리고 사순절이란 절기도 성경에 없으니 때려치우라고 선언한 루터 때문에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없어 지는가 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들은 꼭 성경에 없다고 해서 회개하자는데 뭐 잘못됐어? 그래가면서 하는 말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시면서 사탄과 전투를 벌이신 그 40일을 기념하는 사순절! 그렇게 사순절과 재의 수요일을 전통대로 밀어붙여 실행에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그게 꼭 비성서적이라고 비판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성경에 없으면 모두 비 성서적인가? 새벽예배가 성경에 없으니 누가 비성경적이라고 했다가는 뺨이 열 개라도 당할 자가 없으리라!
그럼 꼭 재를 이마에 발라야 하는가? 아니다. 손에 바르는 사람도 있다. 볼에 바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디에 바르던 재를 바른 후에 거리를 활보하며 나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인간이다, 그렇게 기뻐 죽겠다는 듯 즐거운 얼굴로 재를 바른 얼굴을 들고 활보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복음의 증인들이란 생각이 든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부질없는 인생임을 정직하게 깨달을 수 있다면 재의 수요일이 일 년에 한번이 아니라 한 달에 한번 있으면 어떠랴! 아무리 재를 얼굴에 바르고 또 개칠을 한다 해도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허무를 깨닫지 못하고 또 죄를 짓고 또 욕심을 부리고 또 잘난 척하는 구제불능 인생이라 할지라도 어찌하랴! 재의 수요일은 이미 지나갔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다시 회개하는 길 밖에는. . . 금년 사순절엔 마음에 재를 뿌리며 좀 더 철저하게 회개하자.
ⓒ 크리스천위클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