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스부르크와 베들레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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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8-12-1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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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스부르크에 가면 이 도시에서 왜 천재음악가 모짤트가 탄생했는지 짐작이 간다. 뮤지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왜 이 도시에서 탄생했는지도 이해가 된다. 한마디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호엔짤스부르크 성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아름다운 것은 모두 모아 놓은 것 같은 미라벨 궁전. 미라벨 궁전에서 호엔짤스부르크 성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는 한 폭의 세계적인 그림이요, 일생 잊지 못할 치유의 순간으로 간주될 만한 곳이다.
그 음악의 도시 짤스부르크에서 탄생한 것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초등학교 어린시절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내가 다니던 시골교회는 축제분위기였다. 의자도 없는 마루바닥 교회당에 전기도 없는 깡촌이었다. 방석을 깔고 앉아 석유램프를 키고 예배 보던 때였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교인들은 한없이 즐거웠다. 주일학교 성탄연극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들고 아기 예수께 예물을 바치는 게 단골주제였다. 연극이 끝나면 교인들은 캐롤을 함께 부르고 선물교환을 했다. 선물교환에 등장하는 것은 예수님 얼굴 사진 혹은 ‘기도하는 사무엘’이 든 사진각구가 대부분이었다. 택시 운전사들이 ‘오늘도 무사히’라고 써서 운전석 유리창에 붙이고 다니던 바로 그 사진. 예물교환이 끝나면 대충 떡국을 먹고 새벽송을 돌기 시작했다. 그때 교인들의 초가집 대문 앞에서 부르던 새벽송 최고의 애창곡은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이 곡은 짤스부르크에서 북쪽으로 10마일 정도 떨어진 인구 3,000명의 작은 마을 오베른도르프(Oberndorf)에서 181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탄생되었다. 금년 이 곡은 탄생 200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가 처음 불려진 성당은 성 니콜라우스 성당이었고 지금 이 성당은 ‘고요한 밤 성당(Silent Night Chapel)’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이 니콜라우스 성당의 조세프 모어(Joseph Mohr) 신부였다. 모어는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와 홀어미니 밑에서 성장하여 23세에 사제가 된 사람이다. 작곡자는 이 교회 성가대 지휘자인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 이들이 이 교회 성탄음악회에 올린 이 노래는 당시 나폴레옹 전쟁으로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희망의 선물이었다. 2011년 유네스코는 이 캐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렇게 ‘고요한 밤’이 탄생한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짤스부르크와는 달리 캐롤의 진짜 배경이 된 예수님의 탄생현장 베들레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때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변했다.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보다 많은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무슬림들이 더 많은 도시다. 그나마 베들레헴 시 조례는 시장과 부시장은 반드시 기독교인이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캐톨릭이 시장을 하면 정교회가 부시장, 정교회가 시장을 하면 캐톨릭이 부시장을 맡는다.
이 베들레헴에는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 기념교회가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말구유 자리에 있는 14개 꼭지점을 가진 은색별에 순례객들은 입을 맞추고 이마나 손을 부빈다. 예수님을 흠모하는 마음의 충만함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한 콘슨탄틴 황제의 믿음 좋은 어머니 세인트 헬레나가 성지순례차 베들레헴에 왔다가 예수님의 탄생지에 아도니스 신전이 들어선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기념성당을 지으라고 해서 탄생된 것이 바로 이 교회당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당이기도 하다.
아랍의 무법자들이 메시아 탄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을 몰고 이 탄생기념 교회당에 쳐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십자군 시대에 아예 문을 1.2미터 높이로 낮춰서 돌기둥을 세움으로 누구든지 곱추처럼 허리를 바짝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교회당이 되었다. 그 문을 ‘겸손의 문’이라고 부른다. 이 탄생기념교회 부속성당인 세인트 캐서린 채플은 캐톨릭교회 소속으로서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예배의 모습이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곳이다.
‘떡집’이란 의미의 이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자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약의 성지다.
이런 성경의 역사로 가득 찬 지금의 베들레헴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 도시다. 모어 신부의 ‘거룩한 밤’과 더불어 연상되는 동화같이 아름답고 고요한 정경은 전혀 기대할 수 도 없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 때문에 거대한 감옥처럼 보인다. 8~9미터 높이의 이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이스라엘에선 테러 방지용 ‘안보 울타리’라고 하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차별과 억압의 울타리다. 억울한 마음에 베들레헴 아랍인들이 툭하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덤벼들다 총을 맞거나 감옥에 갇히는 곳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배경답지 않게 정치적으로 언제나 불안과 긴장이 맴도는 아기 예수 탄생의 땅 베들레헴. . 세계 제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벨기에에서 영국과 독일 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독일군 병사 한명이 ‘고요한 밤’을 불렀다고 한다. 갑자기 영국 군사들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환호하자 노래를 마친 양쪽의 장교들이 서로 악수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를 유명한 ‘크리스마스 정전’이라 부른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도시 베들레헴에도 세인트 캐서린 채플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질 때 마침내 이스라엘과 아랍인들 사이에도 그 옛날 ‘크리스마스 정전’이 가능해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자.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그 음악의 도시 짤스부르크에서 탄생한 것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초등학교 어린시절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내가 다니던 시골교회는 축제분위기였다. 의자도 없는 마루바닥 교회당에 전기도 없는 깡촌이었다. 방석을 깔고 앉아 석유램프를 키고 예배 보던 때였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교인들은 한없이 즐거웠다. 주일학교 성탄연극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들고 아기 예수께 예물을 바치는 게 단골주제였다. 연극이 끝나면 교인들은 캐롤을 함께 부르고 선물교환을 했다. 선물교환에 등장하는 것은 예수님 얼굴 사진 혹은 ‘기도하는 사무엘’이 든 사진각구가 대부분이었다. 택시 운전사들이 ‘오늘도 무사히’라고 써서 운전석 유리창에 붙이고 다니던 바로 그 사진. 예물교환이 끝나면 대충 떡국을 먹고 새벽송을 돌기 시작했다. 그때 교인들의 초가집 대문 앞에서 부르던 새벽송 최고의 애창곡은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었다.
이 곡은 짤스부르크에서 북쪽으로 10마일 정도 떨어진 인구 3,000명의 작은 마을 오베른도르프(Oberndorf)에서 181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탄생되었다. 금년 이 곡은 탄생 200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가 처음 불려진 성당은 성 니콜라우스 성당이었고 지금 이 성당은 ‘고요한 밤 성당(Silent Night Chapel)’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이 니콜라우스 성당의 조세프 모어(Joseph Mohr) 신부였다. 모어는 사생아로 태어나 할머니와 홀어미니 밑에서 성장하여 23세에 사제가 된 사람이다. 작곡자는 이 교회 성가대 지휘자인 프란츠 그루버(Franz Gruber). 이들이 이 교회 성탄음악회에 올린 이 노래는 당시 나폴레옹 전쟁으로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희망의 선물이었다. 2011년 유네스코는 이 캐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렇게 ‘고요한 밤’이 탄생한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짤스부르크와는 달리 캐롤의 진짜 배경이 된 예수님의 탄생현장 베들레헴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한때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변했다.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보다 많은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무슬림들이 더 많은 도시다. 그나마 베들레헴 시 조례는 시장과 부시장은 반드시 기독교인이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캐톨릭이 시장을 하면 정교회가 부시장, 정교회가 시장을 하면 캐톨릭이 부시장을 맡는다.
이 베들레헴에는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 기념교회가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말구유 자리에 있는 14개 꼭지점을 가진 은색별에 순례객들은 입을 맞추고 이마나 손을 부빈다. 예수님을 흠모하는 마음의 충만함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한 콘슨탄틴 황제의 믿음 좋은 어머니 세인트 헬레나가 성지순례차 베들레헴에 왔다가 예수님의 탄생지에 아도니스 신전이 들어선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기념성당을 지으라고 해서 탄생된 것이 바로 이 교회당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당이기도 하다.
아랍의 무법자들이 메시아 탄생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을 몰고 이 탄생기념 교회당에 쳐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십자군 시대에 아예 문을 1.2미터 높이로 낮춰서 돌기둥을 세움으로 누구든지 곱추처럼 허리를 바짝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교회당이 되었다. 그 문을 ‘겸손의 문’이라고 부른다. 이 탄생기념교회 부속성당인 세인트 캐서린 채플은 캐톨릭교회 소속으로서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예배의 모습이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곳이다.
‘떡집’이란 의미의 이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자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구약의 성지다.
이런 성경의 역사로 가득 찬 지금의 베들레헴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 도시다. 모어 신부의 ‘거룩한 밤’과 더불어 연상되는 동화같이 아름답고 고요한 정경은 전혀 기대할 수 도 없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 때문에 거대한 감옥처럼 보인다. 8~9미터 높이의 이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이스라엘에선 테러 방지용 ‘안보 울타리’라고 하지만 아랍인들에게는 차별과 억압의 울타리다. 억울한 마음에 베들레헴 아랍인들이 툭하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덤벼들다 총을 맞거나 감옥에 갇히는 곳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배경답지 않게 정치적으로 언제나 불안과 긴장이 맴도는 아기 예수 탄생의 땅 베들레헴. . 세계 제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벨기에에서 영국과 독일 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독일군 병사 한명이 ‘고요한 밤’을 불렀다고 한다. 갑자기 영국 군사들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환호하자 노래를 마친 양쪽의 장교들이 서로 악수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를 유명한 ‘크리스마스 정전’이라 부른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도시 베들레헴에도 세인트 캐서린 채플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질 때 마침내 이스라엘과 아랍인들 사이에도 그 옛날 ‘크리스마스 정전’이 가능해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자.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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