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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好)시절과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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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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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지난해 말 미 동부지역에 사는 후배로부터 카톡이 날라 왔다. “선배님 잘 지내세요?” “어, 그런대로 . . 나 오늘 골프장인데 오랜만에 풀밭에서 공치고 있네 ” “아이고 선배님 , 호시절이네요 ?” 골프를 치고 있다고 했더니 호(好)시절이란다 . 호시절? 좋은 세월이란 말 아닌가?

주중에도 골프를 치고 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정말 내 인생은 지금 호시절인가 ?

이번 주 한국의 이어령 교수가 암 판정을 받아 투병중이란 기사를 중앙일보 본국 인터넷 판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읽었다. 한국 나이로 금년 87세 .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인 그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사람이 없는 대학 교수이자 소설가다. 그 뿐이 아니다. 작가 겸 저술가, 사회운동가, 정치가, 문학평론가, 시사평론가 등등으로 소개되는 만능박사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이요, 5,000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로 칭송 받고 있는 주인공이다.

오래전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살 때 가끔 이 분의 공개강좌가 열리면 찾아가서 강연을 듣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구라가 섞여 있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어떻게 저 정도에 이를 수 있을까? 나 같은 허접한 머리통 몇 백개를 합쳐야 저 분의 저 박식과 관찰의 수준에 범접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예 절망감에 빠져들곤 했던 바로 그 이어령 교수가 암이라니!!

그 분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 최고의 지성이 예수를 영접했다고? 세상은 또 한번 그 분 때문에 놀랐다. 그러나 이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란 ‘예수교 입문고백서’를 세상에 내놓으며 예수교 신자임을 천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한다고 한다. 또 ‘투병(鬪病)’이란 용어를 쓰지 않고 대신 ‘친병(親病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뷰 기사에서 이 교수는 “우리가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삶은 더욱 농밀해진다"고 말했다. 즉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 늘 ‘죽음을 기억하라’고 했다.

그 분 말을 직접 인용하면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너는 캔서야 .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그는 7년 전에 소천 한 딸 이민아 목사를 회상하며 “암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딸도 당황하지 않았다. 의사는 ‘수술하면 1년, 안 하면 석 달’이라고 했다. 딸은 웃었다. ‘석 달이나 1년이나’라며 수술 없이 암을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오히려 진단한 의사가 당황하더라. 그게 무슨 큰 도를 닦아서가 아니다. 애초부터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뉴스’가 아니다. 그냥 알고 있던 거다. 그때부터 딸은 책을 두 권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강연했다. 딸에게는 죽음보다 더 높고 큰 비전이 있었다. 그런 비전이 암을, 죽음을 뛰어넘게 했다. 나에게도 과연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의 비전이 있을까.” 그는 그게 두렵다고 했다.

그 인터뷰 기사를 읽은 후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메멘토 모리란 라틴어는 옛날 로마시대 원정에서 적을 무찌르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이 노예들을 시켜 행렬의 제일 뒤에서 크게 외치게 했다는 말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마라, 겸손하라,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할 때 삶은 더욱 농밀해 진다는 암과 친병중인 이어령 교수의 말이 올해 정초를 지나는 내 인생의 새해격문처럼 새겨지기 시작했다 .

지금껏 나는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건강 100세 시대 어쩌구 하면 나도 끄떡없이 그 나이까지는 살 수 있으려니 자만심에 빠져 살아오고 있었다. 지금 건강하면 춘삼월 호시절이라고 믿어 왔다. 공짜로 다가서는 매일 매일이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메멘토 모리는 없었다.

이 나이에 이르도록 난 너무 무식하게 살아온 것이다. 적당히 평화나 감사, 정의와 사랑이란 애매모호한 어휘들을 내 삶의 형용사로 도입하는 데는 그런대로 숙달되어 왔건만 정녕 메멘토 모리는 실종된 인생이었다.

내 인생이 호시절 플러스(+)알파가 되기 위해서라면 메멘토 모리를 인생의 주어부에 끼어 넣고 살아야겠다. 그러므로 내일은 꽃에게도 인사를 나누며 한없이 너그러운 하루가 될 것만 같다.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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