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이루는 하나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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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ㆍ2019-01-06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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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의 의미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었지만 우리의 삶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시작한다. 우리의 삶은 일상의 반복이다. 이렇듯 일상생활은 언뜻 보면 매우 단조롭고 반복되는 삶이고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가까이서 매일 접촉하는 것은 신비롭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자기 고향에서 위인은 없다”는 속담처럼, 위대한 사람은 언제나 멀리 있어야 빛이 나고 아우라를 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너무나 친숙한 것이어서 그다지 신비로울 것도 없고 범상하고 진부해서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나 체계는 사실은 이러한 일상의 삶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성은 개인의 생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소집단은 물론이고 거대한 조직, 나아가 국가에서도 일상적 업무 수행은 매일같이 되풀이된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환자들을 다루는 응급실의 모습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상황으로 비치지만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에게는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바로 그러한 일상이 개인과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바탕이 된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영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일상생활은 인간이 사회적 실재를 형성하기 위해 어떻게 창조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사회학에서는 구조와 행위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딜레마로 본다. 사회의 실재를 이루는 데에서 구조라는 거시적 관점과 행위라는 미시적 관점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조는 개인들을 강제하기 때문에 구조를 강조하게 되면 개개의 인간은 구조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구조는 결국 개인들의 사회 행위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들이 얼마나 이러한 행위들을 창조적으로 해나가느냐에 따라 거대한 구조를 돌파하고 변혁시킬 수도 있다. 지난 2016년 촛불 집회를 통해 이루어낸 우리 사회의 커다란 변화가 그 대표적인 보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우리들의 일상
그러나 이러한 일상이 이제까지는 학문의 영역에서조차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기존 학문들의 연구는 주로 거대한 사회구조와 사회변동, 사회 제도와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소홀히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일상은 새로운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사조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넓은 의미에서는 서구의 새로운 예술 양식뿐만 아니라 이런 양식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 일반 및 사회적 실천에서의 변모된 다양한 양상을 포괄하는 일종의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 또는 시대정신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것이 일상에 대한 관심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근대의 유물론과 실증과학이 종래의 주술이나 미신들을 몰아내는 바탕이 된 것처럼 근래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은 모더니즘의 과학주의가 현실을 포착하는 데 결정적인 한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강조하는 일상생활은 서구의 지성들이 한 결 같이 식상해하고 있고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통감하고 있는 ‘합리성’과 ‘경계’를 뛰어넘는 무수한 실천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 반종교적이고 특히 반기독교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 진리나 보편적인 원칙을 주장하기보다는 진리를 상대화시키고 권위를 해체시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일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기독교에 반드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의 기독교 교리와 신앙 안에 내재되어 있던 제국주의적 특성이나 강자 중심의 논리가 해체되고 보다 다양한 관점이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창한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주체들의 소소한 목소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그동안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무시되어 온 우리들의 일상이 주목을 받고 그 중요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할 무대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막혀 있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도 제약되고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끊임없이 변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의존하고 있는 도덕 질서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면서 이러한 상황은 일상생활 속에서 의미의 부재 현상을 낳고 있다고 설파하였다. 공동체로서의 규범이 살아 있고 이웃을 배려하던 생활세계는 사회의 체계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당하고 조정되고 있다. 개인들의 공간인 생활세계가 사회 체계에 의해 지배되어 일상의 원만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고 이것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 공간인 시민사회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위기는 일상의 정치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시민단체나 정당에 속하지 않고도 개인이 생활 속 작은 부분부터 바꿔나가는 게 생활 정치에 대한 참여가 필요한 시대이다. 최근에 벌어진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태는 도덕 질서가 파괴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깨뜨려버린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데에는 여러 가지 거시적 차원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 모두가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잃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시대에는 우리들의 일상을 스스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식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이렇게 일상생활은 사회 각 분야의 실천 활동에서도 어김없이 고려되는 새로운 시각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현실화하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상생활은 더 이상 진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된다.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데에서 세속에서의 삶을 단절하거나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만 소망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생활이 영위되는 ‘바로 지금 여기’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하나님나라가 임할 곳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처럼 일상생활은 오늘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바탕이다. 새해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신앙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관심을 가져보길 소망한다.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 데일리굿뉴스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었지만 우리의 삶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시작한다. 우리의 삶은 일상의 반복이다. 이렇듯 일상생활은 언뜻 보면 매우 단조롭고 반복되는 삶이고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가까이서 매일 접촉하는 것은 신비롭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자기 고향에서 위인은 없다”는 속담처럼, 위대한 사람은 언제나 멀리 있어야 빛이 나고 아우라를 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너무나 친숙한 것이어서 그다지 신비로울 것도 없고 범상하고 진부해서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나 체계는 사실은 이러한 일상의 삶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상성은 개인의 생활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소집단은 물론이고 거대한 조직, 나아가 국가에서도 일상적 업무 수행은 매일같이 되풀이된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환자들을 다루는 응급실의 모습은 대개의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상황으로 비치지만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에게는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바로 그러한 일상이 개인과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바탕이 된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영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일상생활은 인간이 사회적 실재를 형성하기 위해 어떻게 창조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사회학에서는 구조와 행위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딜레마로 본다. 사회의 실재를 이루는 데에서 구조라는 거시적 관점과 행위라는 미시적 관점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조는 개인들을 강제하기 때문에 구조를 강조하게 되면 개개의 인간은 구조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구조는 결국 개인들의 사회 행위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들이 얼마나 이러한 행위들을 창조적으로 해나가느냐에 따라 거대한 구조를 돌파하고 변혁시킬 수도 있다. 지난 2016년 촛불 집회를 통해 이루어낸 우리 사회의 커다란 변화가 그 대표적인 보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우리들의 일상
그러나 이러한 일상이 이제까지는 학문의 영역에서조차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기존 학문들의 연구는 주로 거대한 사회구조와 사회변동, 사회 제도와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소홀히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일상은 새로운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사조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넓은 의미에서는 서구의 새로운 예술 양식뿐만 아니라 이런 양식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 일반 및 사회적 실천에서의 변모된 다양한 양상을 포괄하는 일종의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 또는 시대정신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것이 일상에 대한 관심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근대의 유물론과 실증과학이 종래의 주술이나 미신들을 몰아내는 바탕이 된 것처럼 근래 유행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은 모더니즘의 과학주의가 현실을 포착하는 데 결정적인 한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강조하는 일상생활은 서구의 지성들이 한 결 같이 식상해하고 있고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고 통감하고 있는 ‘합리성’과 ‘경계’를 뛰어넘는 무수한 실천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이 반종교적이고 특히 반기독교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 진리나 보편적인 원칙을 주장하기보다는 진리를 상대화시키고 권위를 해체시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은 일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기독교에 반드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의 기독교 교리와 신앙 안에 내재되어 있던 제국주의적 특성이나 강자 중심의 논리가 해체되고 보다 다양한 관점이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창한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주체들의 소소한 목소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그동안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무시되어 온 우리들의 일상이 주목을 받고 그 중요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할 무대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막혀 있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도 제약되고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끊임없이 변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의존하고 있는 도덕 질서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면서 이러한 상황은 일상생활 속에서 의미의 부재 현상을 낳고 있다고 설파하였다. 공동체로서의 규범이 살아 있고 이웃을 배려하던 생활세계는 사회의 체계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당하고 조정되고 있다. 개인들의 공간인 생활세계가 사회 체계에 의해 지배되어 일상의 원만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고 이것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 공간인 시민사회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위기는 일상의 정치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시민단체나 정당에 속하지 않고도 개인이 생활 속 작은 부분부터 바꿔나가는 게 생활 정치에 대한 참여가 필요한 시대이다. 최근에 벌어진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태는 도덕 질서가 파괴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깨뜨려버린 대표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진 데에는 여러 가지 거시적 차원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 모두가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잃어버린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시대에는 우리들의 일상을 스스로 바꾸고자 노력하는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식의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
이렇게 일상생활은 사회 각 분야의 실천 활동에서도 어김없이 고려되는 새로운 시각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현실화하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일상생활은 더 이상 진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된다.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는 데에서 세속에서의 삶을 단절하거나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만 소망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생활이 영위되는 ‘바로 지금 여기’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하나님나라가 임할 곳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처럼 일상생활은 오늘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바탕이다. 새해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신앙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관심을 가져보길 소망한다.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 데일리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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