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선사’와 105세 할머니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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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ㆍ2019-06-2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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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만 65세가 될 경우 ‘지공선사’란 자격증을 준다. 운전면허증과 같이 굳이 “쯩”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흰머리와 얼굴 주름살만 보고도 즉석판정 가능한 “쯩”이라고는 할 수 있다.
지공선사란 “지하철 공짜로 타고 경노석에 앉아서 지긋이 눈감고 참선하라”는 자격증이라고 한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세계에서 65세가 되었다고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라는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 뿐 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생긴 제도인지 모르지만 나라 곳간은 거덜 나던 말던 거둔 세금으로 우선 퍼주고 표나 받자는 식의 포퓰리즘이 대세라고 하니 그 덕에 나도 한국에 가면 지공선사 자격증은 따놓은 당상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주에서 메디칼을 받는 어른신들에겐 마켓 갈 때 쓰라고 택시티켓도 나오고 버스표도 나온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난 받아본 적이 없다.
아무튼 지공선사 자격증은 저절로 주는 자격이고 남녀, 학벌, 경력, 재산에 구애받지 않는다.
지공선사에겐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고 한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라, 젊은이 좌석에 앉지마라, 눈을 감고 도를 닦는 것처럼 앉아 있어라, 젊은이들처럼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지 말라 등등이다. 그런데 좀 비참하게 느껴지는 수칙도 있다. 노인네 티를 내기 위해 모자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모자를 쓰면 10년은 젊어 보일 수 있으니 ‘속알머리’나 ‘주변머리’ 없는 성성한 백발이나 대머리를 부끄럼 없이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젊은 것들이 지공선사 특혜를 없애자고 청와대에 인터넷 청원운동이라도 펼치면 큰 일이라는 염려를 의식해서라고 한다.
지공선사가 다니는 여러 개의 대학이 있는데 하바드 대학은 하루종일 바쁘게 드나드는 대학, 동경대학은 동네 경노당 다니는 대학, 하와이대학은 하루 종일 와이프와 이리저리 다니는 대학, 동아대학은 동네 아줌마와 다니는 대학, 시드니대학은 시들시들 시들면서 다니는 대학이라고 한다. 누군가 웃자고 만들어낸 조크 일테지만 얼마 있어 내가 다닐 대학이라고 생각하니 혼자 쓴 웃음이 나왔다.
일부러 늙게 보여서라도 나라가 주는 공짜 혜택이나 누리며 편하게 살겠다는 지공선사 라이프 스타일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며칠 전 한 영문판 인터넷신문에 소개된 금년 105세 현직 목사님의 기사를 읽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지공선사보다는 저런 모습으로 살다 죽는 게 주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이야!
텍사스 템플에 사는 ‘해디 매 알렌’이란 할머니 목사님은 금년 105세로 그레잇-그레잇-그랜마더다. 그 나이에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는 것만도 경이롭다. 그런데 지금도 매주일 설교하고 있는 그는 금년이 ‘성역’ 57년째다.
교회이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그냥 “지저스”다. 학력을 물으면 학위는 전혀 없다고 말하면서 Ph.D는 받았다고 한다. 신학대학교에서 주는 학위가 아니라 자기가 갖고 있는 Ph.D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마음의 갈망(Pure Heart’s Desire)’이라고 말했다.
그 할머니 목사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순종과 거룩한 삶이라고 강조한다. 설교의 기승전결이나 강해설교, 제목설교 같은 거 따질 필요 없이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지저스 퍼스트(Jesus First)’를 강조할 뿐이다.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지금도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 동반자는 늘 “나와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105세 할머니 목사님에게서 느껴지는 라이프 스타일은 죽을 때까지 주님을 위해 살다 죽는 것이다.
교회가 제도권에 묶여 있다 보니 담임목사를 보고 위에서 은퇴하라면 은퇴하는 게 교단법이다. 교회가 점점 줄어들고 교인수도 줄어들고 있다. 거의 모든 교단들의 공통된 시대상황이다. 이러다가 기독교는 그냥 소수종교로 전락할 것이란 예견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 멀쩡하게 목회에 열중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조기은퇴 하라고 뒤에서 떠민다. 교단 살림이 쪼그라들면서 어쩔수 없는 자구책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어느 때는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에 따라 주의 일을 행함에 있어 그리스도인에게 은퇴는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누구하나 조기은퇴는 고사하고 정년은퇴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목숨이 붙어있는 순간까지 주님을 섬기다가 대부분은 순교한 분들이었다. 때가 되어 은퇴를 강요하는 교단이나 교회에서 은퇴는 할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방법이 달라질 뿐 사실 그분을 섬기는 일에 무슨 변화가 있을 수 있으랴!
지공선사처럼 시들시들 시들면서 다니는 ‘시드니 대학생’으로 죽는 것 보다 105세 알렌 목사님처럼 목숨이 붙어 있는 그 순간까지 설교하고 가르치고 이웃을 섬기는 일을 하면서 그 분의 부르심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늙어가는 일이 체념이 아니라 존엄이 넘치는 생애의 절정이 되게 하려면 피동적으로 늙어가는 노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105세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길 때 가능한 그런 ‘활력노후인생’을 꿈꿔 보자.
조명환 목사(발행인)
ⓒ 크리스천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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