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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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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201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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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십계명 중 둘째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금지 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다른 신, 즉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신을 인간이 섬긴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둘째는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무 형상이든지”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고 또 다른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 형상의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금령의 경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우상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하나님 형상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고 또한 우상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든 것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에 대한 왜곡이고 어리석음이고 무지함이고 거짓이고 교만이고 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를 통해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둘째 계명에서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라는 전제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만드는 것은 우상이고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도 우상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을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은 하나님은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 임재 하시던 날에도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실 때 거기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인가를 모세가 엄히 경계하여 말하기를“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신 4:15)고 하였습니다.

계시란 드러내 보여준다는 뜻인데,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겨야 하는 인간에게는 여간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2계명은 적극적으로는 참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지만 소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는 답답함과 어려움이 올무가 될 위험에 대한 경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염려하시고 경계하신 것은 반드시 인간에 의해서 저질러진다는 사실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제국의 왕들은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되면 자신을 신격화 하여 자신의 상을 세우게 하고 거기에 경배하게 합니다. 제2계명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연이나 영적 존재나 그 어떤 피조물도 경배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피조물을 경배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금하였지만 하나님의 상을 만드는 것도 금하였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길 위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도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금송아지 상으로 만들어 경배하였고,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는 우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신약 시대에 오면 예수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하신 것으로 보아 재물이 우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인간에게 재물의 위력은 하나님의 권위를 넘볼 위험이 있습니다.

구약의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인데, 하나님께서 좌정하신 곳은 “두 그룹 사이”입니다. 두 그룹 사이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두 그룹 사이 공간에 임재하신다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보이는 아무 형상도 없으신 분이심을 증명해 보여 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화’하는 큰 범죄입니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차이점 중의 하나는, 서방교회당 안에는 온갖 성상들이 많지만 동방교회 안에는 성상대신 성화들이 있습니다. 동방교회는 “아무 형상이든지”를 문자대로 받아들여 어떤 상을 만드는 것도 죄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아무 형상이든지”를 문자대로 믿어서 어떤 상이라도 만드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것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이 아닌 섬김의 대상으로 무엇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금한 것이지 어떤 상이라도 만들지 말라고 금한 것은 아닙니다. 반면에 서방교회는 성상을 만들어 놓고, 비록 하나님께 예배하듯 성상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성상에게 기도를 하거나 예를 올리는 것을 정당화 합니다. 하지만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는 금령의 참 뜻에 그런 설명은 변명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상이나 하나님의 상을 만들어 놓고 그 상에게 기도하거나 예를 올리면서 그 상에게가 아니고 그 상이 가리키는 분에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제2계명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러한 설명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 상을 섬기는 것을 금한 것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어떤 상으로 만들었을 때 일어나게 될 부작용까지를 경계하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이 우상이었고,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의 가족에게는 장신구가 우상이었고, 시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는 금송아지 뿐 아니라 단장품이 우상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물질이 우상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권력이 우상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종교생활의 규범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예배당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목회의 프로그램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큰 업적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배우고 증거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길에 하나님을 형상화 하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유혹이고 위험인지를 사려 깊게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제2계명에서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한 3가지 동사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점층적으로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들지 말라는 것은 우상을 만들기 위해 힘과 물질과 기술과 시간과 모든 노력을 투자하고 쏟는 관심까지를 금하신 것입니다. 절하지 말라는 것은 우상을 눈으로 보거나 보는 것을 통해 상상하는 것으로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바른 종교심으로 오해하여 절하는 것을 금하고, 그릇된 종교심으로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경배를 한낱 물질에게 드리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섬기지 말라는 것은 경배하거나 숭배하지 말라는 뜻으로, 자유의지를 상실하고 우상에게 완전히 노예가 되어 지속적으로 섬기도록 요구 받는 상태, 즉 종교적 경배나 제사 또는 입을 맞추는 것이나 물건을 봉헌하는 것이나 우상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 복종하는 모든 행위를 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통치하시고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구원하시는 분으로 우리가 마땅히 경배 드려야 할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은 부분적이지만 그 부분적 지식이 하나님을 섬기기에는 충분하지만 더 잘 섬기기 위해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형식에 치우칠 수가 있고 또한 반대로 인위적 상상과 정성으로 하나님 섬기는 방법을 고안할 수도 있습니다. 형식에 치우친 예배나 인위적 방법이나 극단적 헌신과 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우상화 할 수 있습니다.

제2계명 가운데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질투”는 부정적인 의미로는 모욕당한 사랑에 대한 분노이지만 긍정적인 의미로는 한 대상에게 집중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마치 부부 관계와 같다는 전제에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 곳곳에서는 우상숭배를 영적 간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상적인 부부 관계에서 부부는 서로에 대한 지식이 많아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감성과 진정성만으로도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부부는 결혼의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는 의무와 서로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를 통해 사랑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감정과 기교와 좋은 방법들이 적용되면 금상첨화지만 그 순서가 뒤바뀌면 이는 마차가 말을 끄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마치 부부 관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른 의무와 사려 깊은 배려가 깃든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그분의 뜻을 충분히 잘 몰라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실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드리신 기도를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확실하게 계시하여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지만 성경은 그 예수님을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순종하여 사신 모습은 그를 믿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9,10)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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