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권 독재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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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하ㆍ2020-01-25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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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가 국가의 의지를 위해 개인을 경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극우가 되고, 진보주의가 민중의 의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딛고 가면 극좌가 됩니다. 보수주의가 되었건 진보주의가 되었건 극단적 경향을 드러내게 되면 이는 곧 독재의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독재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어떤 정당성에서 비롯된 인간 독재라도 거기에는 반인권 독재 통치의 함정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독재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통치는 인권을 위한 최상의 통치가 되지만 인간의 절대 권력과 통치는 결코 이상적 통치가 될 수 없습니다.
플라톤은 성군의 독재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였고 그 성군은 곧 철인 왕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그릇된 인간관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플라톤이 성군이라고 한 철인 왕은 가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상상에 불과합니다. 만약 인간이 철학과 인격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될 수 있다면 플라톤의 그 이론이 실현 가능했겠지만 그가 말한 철인 왕 성군은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그 이론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다스리던 때를 태평성대라 하지만 이들은 실제 인물이 아닌 신화에 불과합니다. 세 황(皇)은 복희, 신농, 황제 헌원이고, 오제는 황제의 뒤를 이은 다섯 자손인 소호 금천, 전욱 고양, 제곡 고신, 제요 도당, 제순 유우 다섯 명입니다. 오제 중 뒤의 두 명을 따로 떼어 성군을 칭송할 때 관용적으로 요순임금이라고 부릅니다. 소호 금천 황제가 승천한 후 왕위에 올랐을 때 봉황이 날아들어 소호의 정치를 도왔다고 합니다. 삼황오제는 근대 이전의 중국에서 역사적 사실로 오랜 기간 추앙되었고, 특히 황제와 요, 순은 중국의 이상적인 성천자로 전해 내려오다가 청나라 말기에 역사 연구에 의해 역사성이 부정되고 종교적 영향으로 꾸며진 신화임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중국의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강화되면서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중국 역사의 기원을 상향 조정하고 신화 속 제왕들의 연대를 고쳐 삼황오제를 비롯한 신화 속의 인물들을 실존 인물이라 주장하는 각종 공정을 진행하고 있어 국제 학계의 우려를 사고 있습니다.
평화를 명분으로 제시하지 않는 전쟁이 없듯이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 않는 독재도 없습니다. 독재나 독재정(獨裁政)은 일인 또는 일정한 집단에 권력을 강압적으로 집중시키거나 일부를 배척하면서 지배하는 권위적인 정치를 말합니다. 독재의 뜻은 “혼자(獨) 재단(裁)한다”는 뜻으로 “일인, 또는 일정한 집단”이 마음대로 가위질하듯 지배한다는 뜻입니다. 독재 정치는 개인에 의한 일인 독재, 군인들에 의한 군사 독재, 민간인에 의한 문민 독재, 그리고 민중 등 계급에 의한 계급 독재, 다수에 의한 대중 독재가 있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독재도 있고 국민 다수에 의한 독재 그리고 국민 대중의 지지를 받는 독재도 있습니다.
기원전 502년부터 시작된 로마 공화정의 독재관(dictator)은 국가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원로원에 의해서 강력한 권한을 위임받은 임시직이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독재관제는 사실상 폐지되었고 복수제인 집정관과 호민관의 권한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82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는 독재관을 부활시켰고, 기원전 44년 카이사르는 종신독재관이 되어 사실상 전제군주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누리게 되었으며 이러한 권력의 집중은 결국 기원전 1세기부터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등의 등장으로 결국 공화정의 붕괴를 가져왔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독재는 전제정치와 달리 주민 투표 등 어떤 형태로든 대중 지지의 기초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의 자코뱅당,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 독일의 히틀러,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김일성 등의 독재가 모두 인민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눈 여겨 보아야 하는 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이 등장 등장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던 계급 독재 또는 인민의 지지를 받는 독재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입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는 무산계급 독재는 실제 정치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정치를 비판하면서 내세운 정치 이념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정부가 민주주의를 표방한다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즉 유산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부르주아 독재”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부르주아에게서 권력을 빼앗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한 주장에 따르면 혁명 이후의 권력은 결과적으로 부르주아를 권력에서 배제하게 되므로 부르주아 독재에 대비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창하였습니다. 그러나 레닌과 볼셰비키의 소비에트 혁명 이후 역사상에 실제로 등장한 현실 공산주의 국가는 마르크스의 개념과는 다르게 공산당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일당 독재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냉전이 한창이던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스탈린이나 마오쩌둥과 같은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일인 독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현대 중국의 경우는 일당 독재가 어떤 원인이나 이유에서 허약하게 되면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인 독재로 전환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일인 독재나 일당 독재나 독재 정치 아래에서는 인간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기 어렵고 또한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독재라도 개인의 자유와 인권 보장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경제 발전의 근본적 인프라는 “자유 시장”인데 독재자는 시장의 자유까지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에 독재와 경제 발전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시장의 자유를 빼앗거나 제한하는 국가나 정부는 결코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국가나 사회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지만 현세에서의 개인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경제 발전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거나 빼앗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제도나 정치는 하나님 나라에 역행하기 때문에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현실 정치에서 불법과 독재에 합법적으로 저항하고 싸워야 합니다. 독재자나 독재 권력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고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에 역행하고 일반은총을 해치는 것이며 그 결과 하나님 나라 백성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에게 치명적 해악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다수에 의해 지지를 받는 독재 권력이라도 동조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될 이유를 하나님 나라 지평에서 논의하고 찾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하나님이 그들의 통치자가 되신다고 하셨지만 하나님의 신정 통치의 제도는 모세와 선지자와 사사 시대를 거치는 오랫동안 보류되었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이르러 신정 왕국의 건설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왕을 구하는 백성들의 요구가 신정정치에 어긋나는 자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도 그들의 요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초대 왕 사울이 왕의 직분을 그릇되게 수행하는 일을 통해 참 신정 왕국의 개념을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사사 시대를 거치는 오랫동안 왕국 제도가 보류되었던 것도 그러한 점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왕을 보류하셨다가 그 다음에는 그릇된 왕을 허락하시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을 세워 신정정치의 합당한 왕의 이상이 어떤지를 가르치신 다음 영구한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구한 종말론적 왕정의 정점에까지 닿아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신정 왕국의 확립을 위한 첨병들이었고 수호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정 왕국이 확립되어가는 과정 내내 하나님께서 그릇된 왕을 허락하시던 때 우려하셨던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였고 그 일을 위해 목숨까지 담보하며 독재자로 변질되어 가는 왕들과 대립하였습니다. 초대 왕 사울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신체적 조건과 겸손한 인격의 덕목까지 겸비하였고 선지자들의 무리와 함께 예언하는 영적 은사까지 받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사울은 왕이 될 만한 조건의 스펙을 나무랄 데 없이 두루 갖추어서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앞서 언급하였던 백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독재의 씨가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의 지지를 그 자신이 무엇을 해도 괜찮을 무소불위 권력 위임이라고 오해하였습니다. 그가 영적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선지자의 지적을 받았지만 이미 귀가 어두워졌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 그릇된 판단과 행위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은 겸손했던 초기의 모습과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분별력을 잃은 사울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독재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초기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의 대조가 자꾸만 오버랩 되어 어른거립니다. “나에게는 간절한 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는 꿈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권위와 고통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리고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 청사로 옮기겠습니다. 공무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토론하고, 퇴근길에는 남대문 시장에 들려 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는 서민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대구 서문시장에서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국민들과 막걸리 잔 기울이며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의 24시간을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 되는대로 지금의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 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대 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습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습니다. 그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하겠습니다. 낮은 자세로 일하겠습니다.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청와대와 정부의 고위 공직자부터 깨끗해야 합니다. 반칙으로 특권을 누려온 인사는 고위공직에 앉는 일이 없도록 원천적으로 배제하겠습니다.....”이 외에 그가 한 수많은 좋은 말과 다짐과 결심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순간부터 그의 의도와 국민들의 기대에 맞지 않게 빗나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불법과 거짓을 멀리하고 법과 자유를 지키고 경제를 살리는 것입니다.
왕 사울에게 중요한 것은 외적인 스펙이나 백성의 지지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등사하여 곁에 두고 읽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 하는 신정 통치는 백성을 존중하여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스펙이나 대중의 지지는 하나님 나라 통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반인권의 독재 통치로 변질될 함정이 될 뿐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 17:18,19)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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